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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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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 20:7)


1. 십계명, 십계명, 십계명 …

성도 여러분, 아마 여러분은 ‘무슨 무슨 십계명’해서 십계명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예로, <결혼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계명,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말라. 제2계명, 집에 불이 났을 때를 제외하곤 고함치지 말라. 제3계명, 눈이 있어도 흠을 보지 말며, 입이 있어도 실수를 하지 말라. 제4계명, 아내나 남편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라. 제5계명, 아픈 곳을 긁지 말라. …’ 그런가 하면 남편의 십계명, 아내의 십계명, 부모 십계명 등도 있습니다. 

또 <직장인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1, 올바른 가치관과 자긍심을 지녀라. 2, 적성을 살리고 일을 즐겨라. 3,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길러라. 4, 함께 어울리는 사회성을 길러라. …’ 그런가 하면 <자취생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는데요. 최근 고액의 등록금과 치솟는 물가로 대학생들의 시름이 깊어지면서 자취생 십계명이 더욱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취생 제1계명, 자취생임을 만천하에 알려라. 자취생임을 알려야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제2계명, 학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휴지와 비누 등 기본 생활용품을 공수할 수 있고 쓰레기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제3계명, MT에 꼭 참가하라. MT에서 쓰다 남은 음식 재료 등을 챙겨오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 제4계명, 옆집 자취생과 함께 장을 봐라. 옆집 자취생과 함께 물건을 구입해 나누면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 제5계명, 룸메이트는 동갑보다는 언니나 형들로 선택하라. 친구들의 잦은 습격을 막아 주고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 제6계명, 헛된 명성을 탐내지 마라.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밥을 사다가 생활비를 탕진할 수 있다. 제7계명,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 제8계명, 가계부를 꼭 써라. 허튼 지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제9계명, 자취방 냄새를 잡아라. 제10계명, 군대를 다녀오라. 생존능력이 배가된다.’ 

여러분, 이렇게 ‘무슨 무슨 십계명’해서 십계명이라는 말이 붙은 것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즉 왜 이런 것에다 십계명이라는 말을 붙이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십계명이 삶이나 행동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이자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는 십계명은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원리이자 행동지침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십계명 중 몇 개나 기억하고 계십니까? 먼저 십계명을 순서대로 한 번 암송해 보시죠. 몇 개나 암송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순서대로 외워지십니까? 미국의 경우, 다섯 개 이상 기억하는 사람은 겨우 1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1988년 미국 갤럽조사). 만약 여러분이 십계명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또 순서도 뒤죽박죽이라면, 십계명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지키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은 그 기초가 없거나 무너져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계명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요. 오늘은 십계명 중에서 세 번째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망령되게 부르다

제3계명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목할 말씀은 “망령되게 부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망령되게”란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고, 다른 이상한 것이 지배하여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만, 히브리어 원어로는 “샤우”인데, 그 의미는 ‘텅 빔, 공허, 헛됨, 허무, 거짓’, 그리고 ‘물질적 혹은 도덕적으로 非實質的이고 非實際的이며 無價値한 어떤 것’을 지칭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 때문에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우상”이라는 말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망령되다는 것은 곧 실재가 아닌 헛된 것이요 가짜에 지나지 않는 우상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른다”는 말은 ‘들어 올리다(to lift up)’, ‘가져가다, 나르다(to bear, carry)’, ‘취하다(to take)’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들어 올리다’입니다. 이 의미는 문자적으로 뿐 아니라, 비유적으로도 여러 구절에서 사용되었는데, 주로 맹세할 때(신32:40, 겔20:5, 겔20:6, 겔20:15 등), 폭력을 행할 때(삼하18:28), 신호를 줄 때(사49:22), 형벌을 가할 때(시10:12), ‘손을 들어올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선포한다, 알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뜻에 따라 본문의 첫 문장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경솔하게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선포하지 말아라.’ 즉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가볍게, 경솔하게, 혹은 기계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그렇다면 이렇게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 되는 그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부모의 희망에 따라서 ‘기도 문구’나 ‘예언’의 의미로 지어졌습니다만,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그 자체가 하나의 뚜렷한 계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방법 등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가 제1계명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여러분, 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억나십니까? 

‘여호와’는 한 개 혹은 세 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이름입니다. 한 개의 단어라고 해도 ‘존재한다’는 뜻이고, 3개, 즉 ‘그는 존재할 것이다’는 뜻의 “여히”, ‘존재하고 있다’는 뜻의 “호베”, ‘그는 존재했다’는 뜻의 “하야”라고 해도 ‘존재한다’는 뜻이 그 중복적인 의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첫째는 ‘장차 계실 분이며, 지금 계시는 분이요, 이미 계셨던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순서를 바꾸면 ‘그 시작이 없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존재하시고, 앞으로도 끝없이 영원히 존재하실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의 두 번째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은 원래부터 존재하신 분, 스스로 존재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의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존재의 根源者’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 중에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이런 ‘광오한’ 이름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신도 이런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 이름 때문에 다른 신은 다 부정되고, 따라서 신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제3계명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 성호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점과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 성호를 통하여 하나님을 이해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과 직접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죄 없다 하지 아니 하리라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이런 뜻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사용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 이름의 의미와 의도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 이름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행적을 부정하거나, 그 이름 속에 내재된 의미와 의도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제3계명을 범하는 범죄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제3계명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죄 없다 하다”란 표현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습니다. 대신 “비우다”, “깨끗하다”, 혹은 “무죄로 하다”는 뜻의 “나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나카”의 ‘깨끗하다, 순수하다, 결점이 없다’는 의미가 히브리 성경에서 ‘면죄되다, 벌을 받지 않다’는 의미로 발전되어 쓰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7절에서의 의미는 ‘너는 결코 깨끗한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너는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절대로 형벌을 면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7절의 문자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그를 죄가 없다고 판결하지 아니하리라.” 즉 하나님의 이름을 그 의미를 생각지도 않은 채, 내용 없이, 실상 없이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은 엄중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가를 알려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되이 사용하느냐, 망령되이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뜻이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그 이름의 의미와 가치대로 제대로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가 의로운가 죄인인가가 결정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엄격하고 두려운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서 그 사람이 어떤지, 즉 깨끗한지 부정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 즉 하나님의 이름은 빼고 얘기하는 사람이 항상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늘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깨끗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3계명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 제3계명의 현대적 적용 

성도 여러분, 따져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정말 자주 부릅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성경 읽을 때, 성경 공부할 때,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 이것은 신앙이 좋아서라기보다 습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제3계명을 크게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음의 세 가지 경우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첫 번째 경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욕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간 TV 뉴스나 신문을 보셨지요? 요즘 청소년들이 입에 욕을 달고 삽니다. 한국교총과 EBS가 중학생 2명과 고등학생 2명에게 소형 녹음기를 지참시켜 등교 이후 점심시간까지 4시간 동안 주고받은 대화를 녹음했더니, 1명당 평균 75초에 한 번, 1시간에 49회의 욕설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대상 4명 중 2명은 평소 “욕을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난 학생이었지만, 나머지 2명은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올 초 여성가족부 보고서에서도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전체적으로 95%의 아이들이 욕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었습니다. 이렇게 요즘 청소년들은 욕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고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예전엔 ‘공부가 뒤떨어지거나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이 욕설을 더 한다’고 조사되었으나, 최근엔 욕설과 학업 성적, 혹은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 혹은 가정의 경제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그 욕설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사용하는 죄 역시 만연해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욕설 가운데 “천벌을 받을 놈”이라는 뜻의 “God damn you”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힘들게 하면 즉시 이 욕을 퍼붓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욕설에 들어가 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욕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욕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의 이름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➁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또 다른 형태가 우리 사회에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박스럽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 하나님에 관해 농담하는 것인데요. “아이고 하나님도 우스워서 배꼽을 잡으실거야!”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죄가 된다는 것이죠. 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백이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어찌 거짓말을 하겠느냐?” 이처럼 자신이나 자신의 말이 진실 되다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인데 이것은 잘못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 하거나 사실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는 정말 중요하며 따라서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유익이나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대하 18장). 

그때 거짓 선지자 400 명이 이스라엘 왕 여호사밧에게 예언하기를 ‘아람 왕과 전투를 벌인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니 믿고 싸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종종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려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는데…” 혹은 “내가 기도해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는 등의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의 마음대로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은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세시대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군대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었는지 모릅니다. 나치 정권 때 독일 교회들은 히틀러를 찬양하며 유태인 학살을 정당화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흑인들을 압제할 때 교회가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옹호했습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때 聖戰을 촉구하는 이라크의 후세인도 문제였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전쟁을 독려했던 부시 대통령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말하지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➂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세 번째 경우는 여러 유형 가운데 아주 교묘한 형태로서 제3계명을 가장 철저하게, 그리고 가장 끔찍하게 깨뜨리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한 신앙 고백대로 생활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입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하면서 그 삶에서 행실로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경우이지요. 사람 앞에서는 경건한 척하고 의로운 척 하나, 실제 삶에서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경우를 말합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기도, 즉 행함이 없는 기도는 불경한 짓입니다. 

신성 모독, 하나님을 모독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는 하지만, 찬양한 그 이후 하나님과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진정한 의미를 잃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 즉 하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찬송을 부르는 사람 역시 제3계명을 위반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부르는 찬양은 범죄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私慾을 품은 채 헌금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심판받기 딱 좋은 헌금 태도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웅변적 말솜씨와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경건한 태도로,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설교하고 기도하며 찬송할지라도,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계명들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긴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 같아도, 생활로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고백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나 혹은 공공연히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보다 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 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 행위나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우상숭배, 배교의 죄와 같다는 말입니다. 신약성경도 이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1장 16절,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삶이 따르지 않는 것은 노골적인 신성 모독자보다 더 자주, 더 무섭게 제3계명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6. 그 이름에 합당한 마음과 태도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게도 이름이 있고 여러분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것이고,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3계명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되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 죄를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죄 값을 물을 것이라고 제3계명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악하게 사용하지 말 것이며, 자기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서도 안 되며, 거짓되게 쓰지 말 것이요, 의미 없이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가치 없이 함부로 불러도 안 됩니다. 만일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부르거나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 값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이름을 아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성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건 그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때와 장소를 가려 가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인격과 생활이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과 자신의 인격과 생활이 다른 것이야말로 가장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만드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입니다. 즉 성도는 예배하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시편 113편 1절부터 4절 말씀,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서 그 이름을 부르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그리고 온 땅에서 경배 받아야 할 거룩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의 위대하심과 통치하심을 세상과 사람들에게 드러낼 때 그 이름을 부르거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찬양을 올리고, 그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아무리 성도라고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경솔하게,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감히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영광되고 높은 이름, 그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사용함으로서 그것이 여러분에게 화가 되기보다 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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