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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시 14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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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시 146:1-10)
  

< 주변에 누구를 두십니까? >   

한 외국계 은행에 잘나가는 30대 지점장이 있었습니다. 그 은행에서 둘째로 큰 지점의 지점장을 30대에 되었으니 외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어느 날, 그가 이런 쪽지를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지난 12년 간 은행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배려해주십시오. 아이들아!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지 말라.” 그는 대학 졸업 후 모든 정열을 바쳐 은행을 위해 일했지만 뜻밖의 명예퇴직을 제의 받고 고민하다 자살한 것입니다.  

성공에 소망을 두면 그 성공이 손상될 때 인생도 같이 무너집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이 있습니다.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근처에서 사니까 매일 장례식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시장 근처로 옮기자 이번에는 매일 장사꾼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글방 근처로 옮기니까 매일 글 읽는 흉내를 내서 마침내 맹자는 대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누가 내 곁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변에 긍정적인 영혼이 포진하면 긍정적이 되고 부정적인 영혼이 포진하면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곁에 좋은 말을 해주는 좋은 사람을 두십시오. 멀리 있는 독재자나 강도를 자신이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은 주변 사람입니다. 멀리 있는 독재자를 없앨 수는 없어도 주변에 누구를 둘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과속 질주하는 차나 곡예운전을 하는 차가 있습니다. 그런 차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자신이 어떤 차를 따를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위험하게 운전하는 차를 따르면 죽을 확률이 커집니다. 그때 속도를 늦추고 과속하는 차로부터 떨어져 평화롭게 운전하는 차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주변에 좋은 사람을 잘 두도록 선택해야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누구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의지하면 인생이 후퇴될 때도 많습니다. 저는 노안 때문에 설명서나 리모컨의 글자가 안 보이니까 기계치 증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핸드폰 문자를 못하고, TV를 인터넷 TV로 전환시키는 법도 모릅니다. 그러면 딸들이 가끔 아빠의 학력을 의심합니다. 네트영어 없었으면 학력사기로 의심을 받을 뻔 했습니다.   

왜 기계치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사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TV로 전환할 때는 스스로 배우기보다 딸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컴퓨터나 오디오가 고장 나도 고장 난 부분을 알고 조치하려고 하기보다는 정재운 집사님에게 전화부터 합니다. 그러면 정 집사님이 밤 12시가 넘어도 불평 없이 와서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그러니까 기계치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면 발전이 더딥니다. 
  

<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  

어느 날, 미국 시골에 살던 한 자매가 도시로 이사 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고속도로에서 운전해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직장 동료 청년이 차를 태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운전하려고 하면 그가 말했습니다. “리사! 도시 운전은 아주 위험해.” 그러면 그 말을 믿고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매일 그 형제 신세를 졌습니다. 그 형제도 매일 그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해졌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습니다. “존! 이제 직접 차를 몰고 다닐게.” 존이 말했습니다. “안 돼!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그 말을 듣자 또 겁이 덜컥 나서 운전하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또 그의 신세를 졌습니다. 그렇게 매여 사는데 어느 날 한 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리사! 존이 운전을 못하게 할 때 그 호의를 거부해. 내가 아는 한 자매는 너보다 훨씬 재능이 없고, 운동신경도 없고, 눈도 나쁜데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다녀.”   

그 말을 듣고 리사는 청년에게 자신이 스스로 운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청년이 또 말했습니다. “리사! 고속도로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길을 잃으면 크게 고생해!” 그러나 그때는 단호히 혼자 차를 몰고 출근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고속도로 대신 작은 길로 일터로 갔습니다. 가는데 1시간 걸렸지만 한 달 후부터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시간도 30분이나 절약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존은 더 이상 주위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자신도 너무 편했습니다. 존은 리사가 직접 운전을 못하게 함으로 어떤 한계에 있게 해서 리사를 계속 소유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전진을 돕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 ‘전진을 막는 가짜 친구’입니다.   

이제 누군가 두려움을 심어주며 자신만 의지하게 하면 그 호의를 거부하십시오. 그는 가짜 친구입니다. 물론 “제가 운전해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친구는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당신은 혼자 운전할 수 있어요!”라고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진짜 아내를 위하는 남편은 아내의 고속도로 운전을 자꾸 막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를 격려하며 고속도로 운전에서 목숨 걸고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남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출애굽 협상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입을 뻣뻣해서 말을 못하니까 그 일을 못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론과 함께 바로와 출애굽 협상을 하지만 나중에는 점차 혼자 바로에게 말합니다. 그처럼 자신을 위해 평생 대신 말해주고 일해주고 운전해줄 친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미 준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남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어떤 성도는 기도까지 남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혼자 하라는 말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남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저는 청년 때 심리적 가리막 현상으로 남 앞에 서면 말을 더듬고 횡설수설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중 앞에서는 말을 못한다!” 사실 그런 말은 대개 사단이 꾸며낸 거짓말입니다. 그런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저도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결코 설교가가 될 수 없었지만 84년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성경을 파면서 은근히 설교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때마다 사단은 “꿈 깨! 너는 남 앞에서 말을 못해!”라고 조롱했습니다. 저도 그 조롱을 믿었지만 하나님이 거룩한 소원을 주실 때는 항상 능력도 주십니다. 그래서 지금 매주 설교하는데 사람들은 제가 옛날에 말을 더듬고 남 앞에서 전혀 말을 못했다는 사실을 거의 믿지 않습니다.  

그처럼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데 두려움 때문에 뒤로 내빼면 자신을 위해 준비된 축복의 길에서도 뒤처집니다. 살면서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신 말해주고 기도해주고 운전해줄 아론만 찾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구비되었음을 믿으십시오.   

상담도 너무 자주 다니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묻지 말고 상담 받을 준비가 된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물론 남의 충고도 경청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감동을 직접 받는 것입니다. 그런 직통라인을 버리고 간접통화만 시도하면 성공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이제 누군가의 충고는 참고하되 최종결정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말씀과 기도로 깊이 교제한 후에 내리십시오.   

요새 남에게 온 거짓 음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청년은 예쁜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이 요새 자매와 결혼하라는 음성을 주세요.” 그 말을 듣고 그 자매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냥 무시하세요. 청년들이 예쁜 자매만 보면 결혼하라는 음성을 듣는다고 착각해요. 그가 전하는 음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매가 직접 받는 음성과 감동이 중요해요.”
  
가끔 누군가 신령한 방언을 합니다. “우라 사카무라 시키야....” 그리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렇게 하래요.” 그러나 신령한 사람의 말보다 본인이 직접 받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과 감동이 중요합니다. 남만 의지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절반의 능력이 아닌 온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   

본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할렐루야 시편’은 처음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끝날 때도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편들로 시편 146편에서 150편까지 5편을 말합니다. 특히 시편 146편은 ‘희망의 시편’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을 보면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1. 찬양을 결단하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이 시편 기록자는 평생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결단합니다. 희망은 선한 결단의 열매입니다. 믿음이란 고통과 시련이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면 반드시 희망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송을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사람이 만든 모든 물건에는 그 물건을 만든 목적이 있듯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제일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송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멋지게 이루십시오.   

어떤 분야든지 성공하려면 원리를 잘 붙들어야 합니다. 위기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십시오. 변칙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하면 “지금 내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살피고, 본질을 강화하십시오. 요새 세미나가 홍수처럼 많고 교회도 마케팅 전략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방법이 아닌 기본을 강화시킬 때 희망이 커집니다. 그 기본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모든 축복의 기본 틀입니다.   

아브라함은 실수도 많았지만 가는 곳마다 언제나 먼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사를 봐도 하나님은 목숨 걸고 예배하는 자를 높이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하무덤인 카타콤으로 들어간 이유는 예배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생명을 건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 예배가 로마를 무너뜨린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예배의 성공은 인생의 성공입니다.  


2.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본문 2절에서 이 시편 기록자는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한 말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찬양과 감사는 다릅니다. 감사는 대개 어떤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지만 찬양은 하나님의 존재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본개념이 유사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도 기뻐지고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어느 날, 한 어린이 바이올린 콘서트 후에 지휘자가 말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잘하게 하려면 바른 자세나 활을 쓰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칭찬입니다.” 잘하게 하려면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십시오.  

하나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잘하셨습니다.”라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떤 시련을 만나도 감사와 찬양을 잃지 마십시오. 고대에는 왕의 반지에 허리를 숙이고 키스하며 왕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습니다. 찬양이란 ‘두 손을 들고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왕의 반지에 키스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크게 감동하고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상처를 입습니다. 또한 사람은 온전히 도울 힘도 없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방백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이 구절에서 ‘방백’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도지사급의 관리’로 ‘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힘들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진짜 복된 사람입니다(5절).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영원히 진실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6절). 둘째,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해 공의로 판단하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시고 악인을 물리치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7-9절). 셋째,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10절).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니까 소망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제 앞날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도의 앞길을 자동차의 GPS(지구 위치 탐지 체계, Global Positioning System)처럼 인도할 것입니다. 지구 밖의 11000마일 상공에서 24개의 인공위성이 돌면서 위치를 탐지해 알려주는 GPS처럼 하나님은 어둔 밤에도 성도의 길을 세세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길이 막히면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처럼 성도의 삶은 항상 지나고 나면 승리의 삶입니다.   

일본의 다하라 요네꼬는 18세 때 자살하려고 기차에 뛰어들었다가 두 다리와 한 팔을 잃은 후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후 믿음의 삶이 너무 기뻐서 “삶은 황홀하다.”고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같은 인생도 자녀로 삼아주시고 살 집과 좋은 남편과 자녀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때로 힘들어도 저의 섭섭함과 외로움과 약함과 처량함을 다 아시는 하나님만 붙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그런 피해의식이 커지면 사람들이 모이기만 해도 자기 얘기를 하는 줄 압니다. 얘기도 안하겠지만 얘기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그런 것에 신경을 씁니까? 이제 현재 모습이 부족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침착함과 여유를 잃지 말고 태연하십시오. 누가 조롱하면 더 즐거워하고 “너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라는 자신감으로 사십시오.   

누가 뭐래도 주일성수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최고로 알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줄을 잘 대서 출세하려고 하지만 진짜 축복의 지름길은 하나님께 줄을 대는 것입니다. 연줄과 돈줄이 끊어져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줄이 굳건하면 얼마든지 역전 인생이 가능합니다.
  

< 적시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  

요한복음 10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처지를 알고 우리의 아픔까지 다 압니다. 그런 주님과의 인격적인 친밀성이 소망의 원천입니다. 지금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십니까? 이제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시고 내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1997년 11월 23일, 주일 낮 예배 때 저는 인천에서 개척한 교회에서 새로 부임할 목사님 내외를 모시고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설교제목은 “주님만을 향하여”였는데, 설교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별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그때부터 행복해집니다. 환경이 감사를 만들지 않고 감사가 환경을 만듭니다. 지난 삶을 회고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실수 없이 우리를 인도해주셨고 앞으로도 최선의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제가 떠나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십시오.”  

설교할 때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도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배 후에 성도들과 꼭 포옹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새로 부임할 목사님과 한 달 동안 전 성도를 같이 심방하면서 “새로 오실 목사님을 최선을 다해 섬겨드리라.”고 강조했지만 그 날에도 또 새로 오실 목사님을 잘 섬겨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교회를 나섰습니다.   

교회를 나서면서 성전을 죽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피와 눈물과 땀의 흔적이 배여 있었습니다. 설악산 신혼여행 비용으로 33만원을 쓰고 나머지 결혼식 축의금을 비롯한 모든 재원을 인테리어 공사와 교회 물품 마련에 다 쏟아 부었기에 어느 것 하나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교회나 후임 목사님이 금전적인 사례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일체의 사례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수중에 남은 전 재산은 33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신혼여행도 갔는데 이사를 못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11월 26일 수요일, 새로운 사역 비전을 품고 분당으로 이사할 때 이사비용 28만원을 주면 5만원이 남기에 일주일은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이삿날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때 지도목사로 있던 MBC 신우회 예배가 매주 수요일 12시에 있었는데, 예배를 인도하러 여의도로 가면 아내 혼자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보다 꼭 1년 전인 1996년 11월 27일에는 둘째 딸을 수요일 10시 20분에 낳았는데 그때도 둘째 낳는 것을 보자마자 아내를 잠깐 위로하고 예배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그래서 이사까지 아내에게 혼자 맡기는 것이 미안했지만 그래도 아내의 양해를 구하고 예배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식사도 하지 않고 바로 분당으로 가는데 한 여집사님이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사에 보태세요.” 그리고 황급히 제 주머니에 흰 봉투를 넣고 순식간에 가버렸습니다.   

분당에 2시쯤 도착했습니다. 이삿짐을 거의 다 들여놓았는데 마지막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물 특성상 장롱을 계단으로 옮기기 힘들어 사다리차를 불러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7만원이 더 든다는 말에 아내가 장롱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정사정해서 2만원을 깎고 장롱을 들여놓으면 그날 저녁부터는 온 식구가 바로 굶어야 했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을 앞둔 상태에서 제가 백기사처럼 주머니 안의 봉투를 꺼내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봉투에는 당시 한 달 생활비가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전 과정을 미리 보시고 신비하게 예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적재적시에 역사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너무 행복했고, 또한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더욱 용기 있게 개척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한 길이 막히면 하나님은 반드시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 길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더 좋은 길입니다. 그런 은혜가 언제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믿고 감사하며 예배에 목숨을 걸 때 주어집니다. 이제 어떤 상황에 처해도 그 상황을 인생역전의 재료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더욱 예배에 목숨을 거심으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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