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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높이시는 하나님 (시 91:14-16, 약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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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높이시는 하나님 (시 91:14-16, 약 4:9-10)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구호는 “와보라”, “따라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말 없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를 때 한마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다나엘이라고 하는 바돌로매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보라”고 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예수님을 가장 낮춘 사람이 나다나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네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가장 낮춘 사람을 가장 높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간관계입니다. 자신을 가장 낮춘 제자를 가장 높여주신 것은 예수님의 본성입니다.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높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남을 높일 수 있는 분입니다. 
  
세상에는 남을 높이는 사람과 남을 낮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높이는 사람은 높은 사람입니다. 남을 낮추는 사람은 낮은 사람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가장 높여주고, 가장 존경하는 대상이 내 아내, 내 남편이어야 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이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높여주고, 사랑하면 자녀의 인격이 바로 세워지고, 자존감을 높이고, 신뢰감을 가지며, 자신감이 높아집니다. 
  
잠언 4:8에는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합니다. 성경적 논리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높이면 높임을 받는 것은 인간의 이치입니다.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은 높임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왜 우리를 높여주시는지 아십니까? 높여줄 줄 아는 분은 가장 높은 분이므로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높지 않으시다면 우리를 절대 높여주시지 못할 것입니다. 높지도 못한 신이라면 어떻게 높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자존감을 주시고, 세상사는 자신감을 주시고, 힘을 주시려고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최고로 높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이야 말로 가장 고등동물입니다. 
  
가끔은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마지막에 지으셨습니까? 가장 귀한 사람을 제일 먼저 만드는데 옳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제일 마지막에 만드신 첫째 이유는 가장 높게 지으려고 그랬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식물을 만드시고, 물고기를 만드시고, 동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도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날이 갈수록 고등동물로 만드셨는데 가장 고등동물로 사람을 만드셨고, 가장 높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높으신 분이시기에 당신의 형상을 주셔서 사람을 높게 만드셨습니다. 

둘째 이유는 모든 것을 예비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예비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셔서 미리 만드신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이레’는 창세 때 이미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모든 창조를 완벽하게 하신 다음 사람에게 다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낮추고 내가 높아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낮아지고 하나님을 높일 때 내가 높아집니다. 우리가 높아질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도 높아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아질 자가 없습니다. 
  
바닷물은 대조(한사리) 직전에 가장 많이 빠지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기 전에 가장 낮추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건지십니다. 

14절 상반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가는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이란 말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헌신의 의미합니다. 헌신이란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몸을 드려 죽는 일입니다. 그래서 헌신이란 참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 몸을 드릴만큼 사랑하면 하나님은 건지십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높이십니다. 이런 사람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순종에 기초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아쉬워서도 건지시고 높여주실 것입니다. 
  
시편 91:15에는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시겠다는 것은 자신의 친구처럼 대하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자칫 버릇없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목사가 교회에서 높은 사람인줄 알아서 버릇없이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성장하면 목사가 높은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목사 자녀가 망쳐지고, 교회를 떠나고, 교회를 욕하는 목사 자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사랑하고, 충성하고, 순종하는 자를 왜 건지십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므로 하나님은 알고 건지십니다. 시편 50:15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합니다.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오히려 다른 때보다 뛰어났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큰 신상을 만들고 만일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불풀무에 던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이 사실을 알고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맹렬히 타는 불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지실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절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확고한데 하나님께서 안 건지실까요? 세 사람을 풀무 속에 집어넣었는데 풀무 속에는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키던 자들이 말합니다.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나님이 그 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예레미야 42:11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주시는 건지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용기와, 자신을 가진 제자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을 베푸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밤새 풍랑으로 호수 한 가운데서 고생하고 있을 때 밤 4경에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하였고 베드로도 “만일 주님이시거든”이라고 하여 유령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 나다”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용감하게 물위를 걸어가다가 잠시 후 물결을 보고 물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급히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건지셨습니다. 그리고 “왜 의심하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먼저 건지셨습니다. 야단치기 전에 건지신 것입니다. 우선 건지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본능입니다. 간혹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듣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건지고 죽은 사건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본능인데 하나님은 이보다 더 본능적으로 자녀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한국교회의 큰 인물인 길선주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술꾼이었습니다. 한 번은 술에 취하여 화장실에 빠졌는데 사람들이 갈고리로 상투를 당겨서 화장실에서 건졌습니다. 그는 도교를 믿는 신자였는데 산에 올라가 득도하려고 하였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한 번은 산에서 내려오는데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 같은 일을 만났습니다. “길선주야,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 때 길선주는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늘에서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그 길로 길선주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길선주의 영혼을 건지셨습니다. 

길선주는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입니다. 졸업하던 해 장대현교회를 시무하였는데 1907년 1월2일부터 15일까지 예정이었던 부흥회를 하던 중 13일 주일 저녁에 너무 냉랭하고 은혜를 받지 못해 이길함선교사가 통성기도를 요청하였는데 그날 밤 600명이 남아 철야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길선주목사님은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돈을 정리하면서 얼마를 사취하였던 사실을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길선주목사님의 회개가 평양 대 부흥운동의 불을 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선주목사님을 통하여 한국을 건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는 것은 높임의 전 단계입니다. 깊은 늪에 빠져 있으면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우선 건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건지시고 그리고 때가 되면 그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먼저 건지심을 받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14절 하반절에는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높이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이유로 높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높이십니까?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곁에 두시면 자녀는 저절로 높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높은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 하나님의 곁은 얼마나 높은 곳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3:21에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 옆에 앉으면 하나님만큼 높아지는 법입니다. 하나님 옆에 앉는 것이 우리가 높아지는 비결입니다. 
  
대통령 옆에서 함께 사진만 찍어도 “야, 대단하다” 할지 모릅니다. 저도 그런 사진 몇 장 있습니다. 요즘에는 박근혜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이 값이 나가고, 안철수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인기가 있습니다. 이런 ‘인증샷’만 가지고도 효과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사기꾼들이 이런 사진을 잘 이용합니다. 자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갈보리의 사랑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십자가상에서 높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은 낮아지신 것이 아니라 높아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아 높이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면 살게 된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건지시고 그리고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이 보는 사람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분이신데 높은 하나님을 보는 자를 하나님은 높이고 살리십니다. 
  
야고보서 4:10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교만한 자가 높아지면 더 교만해기 때문에 높이지 않으십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져도 낮춥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한 자가 높아질 자격이 있습니다. 
  
에스더는 이스라엘 포로민의 후예로서 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포로민으로 당시 최강국인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녀의 삼촌 모르드개는 궁을 지키는 일을 하였는데 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모해하려고 하는 반역을 알고 에스더에게 알려 죽였습니다. 하만이라는 모든 대신 위에 있던 신하가 모든 사람이 급신거리며 절을 하는데 모르드개만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하만은 유대인을 말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통곡하였습니다. 

하루는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중일기를 보다가 모르드개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하만을 불러 ‘존귀하게 할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만은 자신이 존귀하게 할 사람인줄 알고 그에게는 왕복을 입히고, 왕의 말에 태우고, 왕관을 씌우고 사람들에게 ‘왕이 존귀케 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궁을 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은 자기가 그 대접을 받을 줄 알았지만 모르드개를 태우고 말고삐를 잡아 ‘왕이 존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성을 돌았습니다. 왕이 높이는 사람은 이런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6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을 보세요. 하늘 꼭대기까지 탑을 쌓아 하나님 같이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은 강제로 낮추십니다. 인간이 자기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낮추면 하나님은 징계하시고, 낮추시고, 흩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면 하늘만큼 높이십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를 관측한 결과 우주 탄생에는 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우주 가운데 손톱 끝만큼 안다고 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신의 과학을 높였습니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인빅터스’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는 “내 운명의 주인은 나다. 내 영혼의 선장도 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름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부하는 자는 낮아집니다. 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음부로 내려갑니다. 누가복음 10:15에는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부인하면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마치 잔치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같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3:12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합니다. 높은 잔치자리에 앉아 있으면 주인이 와서 내려와서 앉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우리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이 때 비로소 우리가 높아집니다. 

  
결론 

경주 최부잣집은 유명한 가문입니다. 최국선(1631-1682)으로부터 최준(1884-1970)까지 약 400년 동안 부를 누린 집안입니다. 흔히 만석꾼이라 부르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경주 최부잣집에는 다음과 같은 가훈 6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 시험은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둘째는 재산은 1만 석 이상은 지니지 말라. 셋째는 과객에게는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는 흉년 때는 땅을 사지 말라. 다섯째는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으라. 여섯째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12대 400년 동안 최씨 부잣집의 명성을 지켜온 원동력이 이 가훈에 있습니다. 최 부잣집은 많지만 가난한 집입니다. 높지만 낮아질 줄 아는 집입니다. 
  
이런 집안은 부자 될 자격이 있는 집안입니다. 높아질 자격이 있는 집안입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스스로를 낮추면 하나님은 누구나 높이십니다. 하나님이 높이셔서 하나님 곁, 하나님의 우편에 두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면서 절대 기죽지 마십시오. 위축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곁에 두실만큼 높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는데 높으신 우리 하나님을 우리도 높이며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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