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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라 (요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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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라 (요 13:20)


은퇴하기까지 목회를 하면서 이것만은 나의 후손들에게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되겠다고 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결코 도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꼭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롬13:1-2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사 믿는 자에게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당신의 권위에 도전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들 구원자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죄는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경에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용납하시지 않는 사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민12:1-2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께서 차별하는 것을 느낀 겁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하나님께서 다르게 대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허물도 있는데 우리는 깨끗한데 하는 식이었습니다. 
여기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와 어떤 관계입니까? 누나와 형입니다.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했다는 것은 당시 문화와 정서로는 비난을 받을 일인지 몰라도 그 일이 모세와 그들의 위치에서 혼동을 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미리암과 아론이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즉시 하나님의 반응을 4절에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민12:4 
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부터 강림하사 모세를 옆에 세우시고 장막 문에 서셔서 아론과 미리암을 따로 부르시어 너희들과 모세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임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12:8-10 
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9.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차별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십니다. 모세와는 내가 대면하여 말하고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을 향해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고 호통을 치시고 떠나가십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미리암이 문둥병이 걸립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입니다. 나중에 회복을 시킵니다. 만 하나님께서 세운 하나님의 종 에게 도전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읽혀질까? 

삼상2:30下 
30下..............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 말씀을 여러분의 가슴에 잘 새기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존중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존중한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세운 종들 목사와 사역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말을 한다면 여기 성경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요 어릴 때부터 부흥회를 통해서 많이들은 말씀은 주의 종 잘 섬기면 복을 받는 다는 말이었습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그렇게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끼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구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데 꼭 주의 종 목사를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말이냐 기복신앙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생각은 주께서 세우신 종과 일반 평신도들을 동일시 한 잘못이었습니다. 

히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운 교회의 권위인 것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순종에 복종까지 하라고 합니다. 이유에 대해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그래서 즐거움으로 사역하도록 하라 결코 근심으로 사역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은 유익이 없으면 손해가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과연 하나님께서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스스로 진단 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사는 교회에 세워진 리더들과 서로 창의적인 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문제가 아니라면 최종 결정권은 주의 종에게 맡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주의 종은 평신도지도자들의 지혜를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면이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경윤과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가지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벧전2:9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차별하여 존중해야 합니까? 이것은 교회의 영적질서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러면 다 같은 가요? 
성경은 명료하게 하나님께서 교회에 영적질서를 위해 세운 권위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1:20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사도가 본 환상입니다. 네가 본 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환상입니다. 하늘 스크린을 펼치신 주님께서 듣게 한 것 만아니라 보게 하셨습니다. 오른 손에 일곱별을 잡고 계심을 그 일곱별의 비밀 일곱 금 촛대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세운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신학교의 난립으로 도무지 어디서 안수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목사들이 적지 않고 미주에서는 무인가 신학교에 설립자가 사기군! 이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혼란가운데서도 우리가 정립해야 할 주님의 교회의 사자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많은 교회에서 목회자를 고용인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동부와 서부에서 두 차례 목양장로 컴프런스를 했습니다. 그 컴프런스에서 목사와 장로의 본질을 다루면서 한가지로 목사와 장로가 목양이 최우선이라는 데 공감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운 목사는 특별한 위치라고 하는 사실에 성경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요13:20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에 이어 요한 사도에게도 같이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이 역시 존중으로 바꾸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러노니 내가 보낸자를 (존중)하는 자는 나를 (존중)하는 것이요 나는 (존중)하는 자는 내가 보낸 자를 (존중)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내가 보낸 자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존중이 재정적인 면에 대해서 순회 전도자인 존 비비어는 미주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살펴보고는 교역자들에게 교회가 성의를 다해 섬기는 교회 성도들은 한가지로 형통하고 복을 구체적으로 받고 있음을 확인했노라고 많은 실례를 들면서 기록 하고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는 영적인 부모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고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물론 비 진리를 가르치는 이단이야 용납할 수가 없지요 성경에 극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엘리야 시대에 큰 기근이 들어 많은 과부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과부는 준중의 원리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녀와 그 아들이게는 마지막 한 끼 먹을 밀가루와 기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먼저 자기가 먹을 빵부터 만들라고 합니다. 요즘 같으면 소살네트워크인 인트넷 매체 트윗드, 페이스 북 카카오톡 등에서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곧 굶어죽게 된 가난한 과부가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는가?󰡓 당신이 그 과부에게 줘야지 그가 선지자 맞아? 그러나 어떻게 되었나요? 그녀가 하나님의 종을 존중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녀를 존중해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을 우린 성경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볼 때 언제나 관점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빈궁한 중에도 하나님의 종을 존중한 것에 관점을 두어야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까?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흠이 없고 존경스러운 종에게야 누가 존중을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불의한 종에게도 존중해야 합니까? 
우린 다윗이 사울 왕을 존중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이기 때문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무슨 관계냐 하나님께 
서 세우셨다면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못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원합니다. 사울의 불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시험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시면서도 다윗 을 사울 밑에 두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14년 동안이나 사울을 피해 굴 광야 심지어 적국에 까지 가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유랑도 모든 위협도 끝낼 기회가 온 것 이였습니다.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의 군대는 엔게디 동굴입구에서 무장을 풀었고 사울은 뒤를 보려고 동굴에 들어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군대들이 완전무장한 채로 굴 안쪽에 숨어 있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부하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라고 강청합니다. 

삼상24:4 
4.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 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왕이 나가고 뒤 따라 다윗이 나가서 왕을 향해 외칩니다. 왕이여 이 옷자락이 누구의 옷자락입니까? 왕의 옷자락입니다. 내가 왕을 해한다고 하는 말을 믿지 마소서 왕을 해치라는 주위 사람들의 강청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내가 해할 수 없노라고 거절 했나이다 나의 마음을 받으소서. 라고 합니다. 그때 사울은 순간 참회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삼상24:17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그러나 그때뿐이었습니다. 사울은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또 다시 다윗을 해치려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사울을 처단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사울의 군대가 추격을 계속하다가 피곤해서 깊이 잠이 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충성스러운 부하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울이 깊이 잠든 것을 본 부하 아비새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삼상26:8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그러나 다윗은 생각을 합니다. 나의 불행 뿐 아니라 나의 부하들의 불행 또 이 민족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내 아내까지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준 비열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무죄를 입증해서 자기의 생명을 해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옷자락만 벤 일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 날 추격하는 이자를 진짜 끝낼까 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충성스러운 부하의 간청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듯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부하의 간청이 있습니다. 왕이여 왜 하나님께서 이 군대를 몽땅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보십니까? 우리들이 이악한 왕한테서 나라를 구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부하의 말은 한마디도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논리 정연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삼상26:11-12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하나님은 왜 사울의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을까요? 존 비비어라는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서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매우 공감이 가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다윗은 사울을 존중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가 세운 하나님의 종을 존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세의 아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했음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은 사울을 심판하셨습니다.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사울 뿐아니라 그의 아들 다윗에 절친한 친구 조나단과 함께 전사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한 다윗의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롬 12:19-21) 
롬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 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사랑하는 역할을 하고 난 심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성경에 요셉이란 사람의 고난과 역경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이복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죽음의 구등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갖히고 국무총리가 되고 형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선대하고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잘 알고 처신했음을 보게 됩니다. 

창50:15-17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이 목숨을 구걸하는 말을 할 때에 요셉이 울었다고 성경은 증언하면서 왜 울었을까요? 

창50:19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창50:20-21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인 것입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부로 비판하고 성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약속하신 말씀이 3절에 나옵니다. 

창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뿐 아니라. 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생애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홍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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