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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고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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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 : 5 - 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소망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가족입니다. 우리영생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가족입니다.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가 있듯이 교회에서도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돌보아주는 영적 부모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을 ‘믿음신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분명하게 믿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원하는 큰 믿음(太信者)의 사람입니다.

믿음신자는 두 가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것은 ‘전도’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를 믿음신자를 기준으로 소망신자라고 합니다. 이를 태신자(胎信者) 또는 예비신자라고 부릅니다. 믿음신자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전도는 안 된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정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구원하신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으로 영혼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신자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관심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제’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등록한 사람에게도,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도, 사람을 바라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에게도, 교회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전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섬김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도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나눌 때에라야 진정한 가족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을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요즘, 교회가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시점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살펴볼 때 발견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허약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모습입니다. 사랑을 전혀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워주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외부로 전도와 함께 내부로 교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세상으로 향하는 선교적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세우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해피데이 520’에서는 교회 밖의 ‘소망신자’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랑신자’에 대한 관심을 함께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교제가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하나의 가족으로 더욱 굳건하게 세워갈 것입니다.   

믿음신자, 영적 아비로써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기며 교제하여야 합니까?  

I. 우리는  

어떤 일을 탁월하게 잘 하기 위하여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산업현장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신앙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에게 전도하고 교회 안의 사람과 교제하여야 할 우리는 누구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따라서 아볼로파라고 바울파라고 주장하며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도대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하기를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아볼로나 바울이나 주님께서 각각 맡겨주신 일을 한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자[diavkono"/디아코노스]’는 ‘심부름을 가다’에서 온 말로, ‘시중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종들로써 주인이 맡겨주신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사만이 사역자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보이는 교회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목사를 위해서는 더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신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특권의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는 종의 자세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자입니다. 도리어 섬기는 사람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또 어떤 사람입니까?

8절 말씀입니다.
: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갑자기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를 가꾸기 위해서는 심는 사람도 있고 물을 주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볼로와 바울의 사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6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씨를 뿌리고 심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바울이 심은 복음에 물을 주고 가꾸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교인들에게 자세하게 해석하여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행 18:24, 19:1).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였습니다. 각각 다른 일을 하였지만 같은 주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각각 수고한 만큼 하나님께로부터 자기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misqov"/미스도스]’는 ‘일한 것에 대해 지불되는 급료’를 말합니다. 즉 품삯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께 품삯을 받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수상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 듣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받는 비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칭찬 듣고 하나님께 받을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우리 역시 하나님께 받을 상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칭찬받았는데 하나님께 책망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세인들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을 예수님께서 통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사람의 칭찬을 바라고 일을 한다면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칭찬받고 격려 받으려는데 급급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과 어린 사람의 차이입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할 줄 모르는 사람과 자신이 칭찬받으려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중요한 직분을 가졌을지라도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자신이 칭찬받아야 할 때 겸손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상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바라보며 천국까지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저는 여기에서 매우 놀라운 단어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동역자[sunergov"/쉬넬고스]’라는 말은 ‘함께 수고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일을 함께 하는 동료 일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놀랍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는 사람, 하나님의 동료 일군이라고 불러주시니, 이를 어찌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동역자라면 최소한 한 가지라도 내놓을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동역자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는 것이 어찌 동역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의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해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는 말씀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것을 도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욥은 제법 하나님의 일에 아는 척하였지만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결국 욥은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b)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인간들을 동역자라고 불러주시니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일은 구약성경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갖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야곱, 쌍둥이 형인 에서와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싸웠던 야곱입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인 에서가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외가로 도망을 칩니다. 20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는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을 붙들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특유의 떼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야곱과 씨름한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야곱과 씨름하였던 그 천사는 정말 씨름을 못하는 천사였기 때문일까요? 그래도 그렇지 천사가 사람과 겨루어 지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 대목에서 어린 아들과 씨름에서 늘 저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가 아이들에게 해 주었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일부러 넘어져 주면 함께 놀아주는 줄 알고 좋아합니다. 물건을 들고 가는데 제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아들 녀석이 거들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저였습니다. 사실 물건을 들고 가는데 아이들이 거들겠다고 하면 키를 맞추어주느라고 오히려 허리가 구부려서 힘이 더 듭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마음은 흐뭇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에게 동역자가 필요할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에 우리를 끼워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입니까?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왜 입니까? 상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에 끼워주시고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거창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실 일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여 우리에게도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전재아래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이 자신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바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II. 하나님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 십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수상자로, 동역자로 세워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하나님은 바울과 아볼로에게 각각 그들이 하여야 할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각각 맡겨주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맡기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1. 하나님이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직책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그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6절과 7절 말씀입니다.

: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6절 말씀과 7절 말씀에서 중복되는 중요한 구절은 ‘오직 자라나게 하다’는 말입니다. ‘자라게 하다[aujxavnw/아욱사노]’는 ‘기르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이 양육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길러주십니다. 자녀들이 자라고 성장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길러주셨다는 것을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길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걱정하고 내가 수고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시, 7절 말씀입니다.

: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포함하여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이 중요하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모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 짧은 말씀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 현장, 목적 모두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4. 하나님이 연출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연출자입니다. 우리는 연출자의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셔서 과분한 상급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해피데이 520을 작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MD 가/만/이 전도를 적용하려고 합니다. 이번 해피데이 520에서는 교회 밖의 ‘소망신자’(=예비신자)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랑신자’(=낙심자)에게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다른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회개하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불신앙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했던 완악함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전도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전도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번 해피데이520은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간증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먼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중에서 ‘소망신자’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이 오는 데로 즉각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사랑신자’를 정하십시오. 이번에 자신과 사라의 교제를 나눌 대상자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역시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역시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이 오는 데로 즉각 순종하십시오.

즉각 순종은 가/만/이로 나타납니다. 가/만/이는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입니다. 가서 만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것이 가/만/이 전도 보고서이자, 사랑의 간증입니다.

간증내용은 매 주간의 계획과 실천입니다. 좀 힘이 드시겠지만 매 주일마다 제출하여 주십시오. 헌금시간에 함께 봉헌하여 주십시오. 소망신자를 정하고 사랑신자를 정한 것부터 다음주일에 봉헌하여 주십시오. 계획을 세운 것도 매우 훌륭한 보고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놀랍게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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