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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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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11-13)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파스칼은 인간을 또 다르게 표현하기를 ‘중간자’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천사처럼 될 수도 있고 악마처럼 될 수도 있는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 선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될 수 있는 선과 악의 중간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넓히면 바다같이 넓어질 수도 있고, 마음을 좁히면 바늘구멍보다 더 작을 수도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좁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꽉 막혀 답답하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융통성도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여 관계가 불편하다가도 쉽게 마음을 열고 화해를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한번 꼬였다 하면 몇 달, 몇 년도 가고 어떤 사람들은 평생 앙금을 풀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은혜 받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미워합니까?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갈등하고 분쟁이 일어나고,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서운해 하고 상처를 받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들 마음이 넓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우리 자신의 마음이 넓지 못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마음이 좁으면 시기심도 생기고 상처도 쉽게 받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툼이 일어나고, 얼굴 붉히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받은 은혜도 다 쏟아 버리게 되고 교회는 분쟁에 휩싸이게 되며 결국 믿음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권면을 했을까요? 고후 6: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은사가 사랑의 동기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교회유익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절제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교만해졌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수준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도 바울 마저도 외면하고 비난하며 사도성 마저도 의심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그들을 용납하며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따르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믿어주는 관계를 회복하자는 부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들의 마음이 하늘 같이 높아지고, 바다 같이 넓어지는 은혜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넓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권면을 통해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고 넓은 마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고린도인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졌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입이 열리고”라는 말은 어떤 비밀도 없고 숨김도 없이 다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라는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어떤 잘못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거짓교사의 꾐에 빠져 사도 바울에게 온갖 험담과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사도성을 부인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 성들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충분히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 인내하며 그들을 사랑하려는 사도 바울의 부성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마음을 열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병들어서 너그러움이 사라지고 이해하는 마음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고 폭 넓게 이해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많이 받고 온전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판단하고, 바로 행동하고, 바로 믿을 수가 있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평안이 임하고, 사랑이 임해서 행복하게 됩니다. 

사실 마음이 닫힌 사람을 보는 것처럼 답답한 일은 없습니다. 닫힌 마음은 햇빛이나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는 방과도 같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리 떠나 영적인 죽음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무려 27년이 지난 후에 당시 격전지였던 태평양 군도 괌의 한 동굴에서 쇼이치 요코이라는 일본군 병사 한 사람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한참 치열할 때 대나무 숲에 굴을 파고 숨었습니다. 뱀장어나 물고기로 연명하면서 홀로 27년을 숨어 지냈습니다. 

이미 전쟁이 끝나 괌은 세계에서 유명한 휴양지로 바뀌어져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두려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전쟁의 두려움에 빠져 문을 열고 다유의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곳에 재앙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닫혀 있는 마음은 답답합니다. 어둡습니다.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열려있는 마음은 이해의 깊이가 깊으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긍정적이며, 진취적이며, 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먼저 마음을 열었습니다. 욕하는 자들을 향해 먼저 마음을 열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져 있다고 원망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화가 안 된다고 상대만을 비난하지는 않습니까? 

때로 상대의 마음이 닫혀져 있고,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어도 비난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여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마음이 먼저 열려질 때 상대를 용납하며 받아들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마태를 택하여 제자를 삼았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그들을 친히 찾아 주셨습니다.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든지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조차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열려진 마음,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포용하고 원수된 자와도 화해하는 가슴 넓은 자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좁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강화도 특산물 중에 밴댕이 젓갈이 유명합니다. 밴댕이는 청어과에 속하는 전어와 비슷한 작은 고기입니다. 이 고기는 성미가 급해서 그물에 걸리면 금방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속이 좁고 성미가 급하고 이해심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밴댕이 콧구멍 같은 사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밴댕이 같이 속이 좁은 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에 보면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심정이 좁아진 것”이란 상대방이 아닌 자신들의 마음이 먼저 비뚤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좁은 마음의 사람들을 ‘육신에 속한 사람’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이해할 줄 모르며 원망과 시비를 일삼고 별로 문제가 아닌데도 문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생각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옳고 참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집이 나오고 고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고 막혔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마음이 좁기 때문입니다. 
 
혈관이 좁아지면 피의 순환에 지장을 받게 되어 동맥경화나 순환기 계통에 질병이 생기게 됩니다. 마음이 좁으면 생각의 순환기에 이상이 생겨서 고집과 아집이라는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좁은 마음은 병든 마음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닫혀져 있는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키며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동정의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만 알고 자신들만 의롭다고 여기는 아집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져 있다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된다고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자신의 좁은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좁은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을 가질 때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수용되어 집니다. 

화란의 세계적인 부흥사인 고리텐 붐 여사는 세계 제2차 대전시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온 가족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모진 고문으로 식구 모두가 죽고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출감 후 신학을 공부하여 주를 위해 일하면서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그녀에게 독일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원수의 나라, 자기 가족을 모두 죽이고 못살게 한 독일에만은 절대로 가기를 원치 않았지만 그러나 주님은 "너의 원수의 나라에 가서 나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린텐 붐 여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독일에 가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어느 날 집회를 마치고 교회 문 앞에서 돌아가는 성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고 고린텐 붐 여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로 자기의 식구들을 고문하여 죽이고 자신을 감옥에서 발가벗기고 남자 죄수들 앞에서 수치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고리텐 붐 여사는 순간 악수하고자 손을 내미는 그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나를 죽인 원수도 용서하였다.” 이런 주님의 십자가의 음성을 들은 붐 여사는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 순간 사랑이 분수대처럼 솟아올랐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손을 적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원수라고 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좁은 마음을 버릴 때 용서의 기적,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이 고리텐 붐 여사처럼 좁은 마음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좁은 마음 때문에 얼마나 고통하며 지냈습니까? 이 좁은 마음 때문에 상대방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얼마나 상처를 주었습니까? 남을 탓하지 말고 이 순간부터 내 좁은 마음을 멀리 던져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보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코는 수필집에서 ‘은혜에 익숙한 것은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무쪼록 은혜에 익숙하게 되지 않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오래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문병 오는 손님들로부터 선물 받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오는 친구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왔다. ‘아마 물건대신 봉투를 준비해 왔겠지. 봉투를 주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돌아갔다. ‘지독한 구두쇠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스라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얻어먹기를 좋아하는 자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 번 받는 선물에 익숙해진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신이 되어있음을 알고 선물 받는데 익숙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기술은 익숙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은혜에 익숙함은 고마움에 대한 무감각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에 팔려가 14년간 모진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재상봉의 자리에서 요셉은 떨고 있는 형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형들의 죄악을 용서하고 오히려 형들을 위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한 번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넓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후덕하고, 이해심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마음이 너무 좁고 생각이 굴절되어 있습니다. 이해심도 부족하고 양보심도 적고 봉사심도 적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보다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더 답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봉사도 더 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물질도 선뜻 내어 놓습니다. 제대로 감사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닫힌 마음이나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흉내 낼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좁은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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