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벧에돔의 집 (대상 13:9-14)

첨부 1


오벧에돔의 집 (대상 13:9-14) 

지난주에 대심방을 마쳤습니다. 담당교구 김목사님과 지구장 권사님과 구역장님, 권찰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각 가정을 심방할 때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로 심방을 받으신 여러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심방을 받지 못한 가정들을 시간을 내어 돌아보도록 할 것입니다. 

이번 대심방을 하면서 각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유독 저에게 큰 은혜를 깨닫게 한 말씀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시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돌아와 벧세메스에서 20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때로 돌아 가봐야 합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블레셋에 빼앗겼었습니다. 블레셋은 하나님의 군대를 이겼다고 기고만장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법궤를 돌려보냅니다. 그 장면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소 두 마리가 수레를 끌어서 결국 멈춰선 곳이 벧세메스요 그곳에서 20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이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 성으로 모시고 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성막으로 모시지 못하고 벧세메스에 긴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기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다윗은 열두 지파로 나누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여호와 신앙인 것을 직시하고 모든 민족을 예루살렘과 중앙 성소에 관심을 집중시켜 민족적 종교 생활의 일치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신앙 안에서 안정되길 원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 1절에 보면 다윗은 삼만 명을 동원하여 거국적인 일에 동참시킴으로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라고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영토 최남쪽에서부터 최북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들을 다 모았습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그 날에 모든 천부장, 백부장, 장수들이 동원되고 궁중의 악사들도 동원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새로 만든 수레에 싣고 웃사와 아히오로 하여금 수레를 예루살렘으로 향하도록 이끌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레가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수레를 멘 소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뛴다'라는 말은 '걸려 넘어질 뻔하다'의 의미로 소들이 돌뿌리 등에 걸려 비틀거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때 수레 위에 있던 법궤가 미끄러지자 웃사가 손을 내밀어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수레를 따라 법궤를 운반하는 책임을 맡은 웃사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모든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웃사의 행동은 그 상황에서 볼 때 분명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웃사의 행동은 신성모독 죄였습니다. 웃사는 레위인이었으므로 마땅히 법궤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민수기 4장 15절에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고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법궤를 옮길 때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사장 네 사람이 어깨에 메고 옮기게 했습니다. 다윗과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귀한 일을 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한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용적이고 편리한 것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다가 그 현장에서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다윗은 충격적인 그 상황에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어느 곳으로 옮겨 놓을지 고민했습니다. 다윗의 신실함으로 볼 때 그가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위기 상황입니다. 그러기에 법궤가 어디로 가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 때 다윗은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성경에 오벧에돔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역대상 26장에 보면 그는 성전 문을 지키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성전 문을 지켰다는 것은 그가 레위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는 없지만 그 때 상황을 볼 때 다윗이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맡길만한 사람으로 오벧에돔을 선택했을 정도로 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집으로 모시고 오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본 후에 법궤를 모시고 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는 모실 수 있어도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는 모셔 오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다윗의 명을 받아 하나님의 법궤를 집으로 모시고 옵니다. 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오벧에돔을 축복하셨습니다. 

13-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을 축복하시며 그의 자녀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역대상 26장에 보면 성전 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시면서 8절에 보면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에벧에돔의 신실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그의 집을 축복하실 때 그의 자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합니다만 부모의 신실한 믿음이 자녀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은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는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에게 축복하시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아버지 아브라함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벧에돔의 믿음은 그의 자손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오벧에돔을 통해 위기와 혼란에 놓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영적으로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역대상 15장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다윗이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올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을 중심으로 철저히 정비합니다. 

15장 12-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셨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오벧에돔의 신실한 믿음은 실용과 편리함의 신앙을 추구하다가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기초 돌이 되었습니다. 오벧에돔의 신실한 믿음이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들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령을 피우는 신앙이 아닌 기본을 소중하게 여기는 순종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을 무시하는 사람의 흐트러진 신앙은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웃사였습니다. 반면에 신앙의 기본을 소중하게 여기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오벧에돔을 통해 혼란스런 공동체가 믿음의 질서를 회복하고 기쁨과 힘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믿음 안에서 회복시켜 축복의 통로로 세우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우리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오벧에돔과 같은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이 위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 오벧에돔을 닮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