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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눅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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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눅 9:37)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눅 9:37).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러섰고 서기관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16절에 『예수께서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무리 중에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나아와서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져버립니다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은 그 아이로 하여금 땅에 엎드러져 구르게 하고, 거품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기가 막힌 그런 장면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책망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소리를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향하여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고 명령하였습니다.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는 곧 그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막 9:26). 
그때 그 아이는 죽은 것같이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아이가 죽었다고 떠들어댔습니다(막 9:26).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 17장 15절에 보면 아이의 병이 간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쨌던 그 아이는 쇠약한 병에서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나아와서 여쭤봅니다.
우리는 어찌해서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능치 못함이 없게 하는, 
다시 말하자면 불가능이 없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첫째는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모르던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한 말이 "예수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불신앙가운데서 막연한 바램, 희망이었습니다.
게다가 옆에 둘러서 있던 제자들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 17장 17절과 누가복음 9장 41절에 보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호되게 책망하십니다.

패역이라는 말은 "순종하지 않고 거슬림"이란 뜻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로 적었던 것이었을까요?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옛날에 겨자씨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씨를 넣어 코팅을 했는데 거의 작은 점 하나로 보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겨자씨보다도 적은 거의 무(無)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향해 주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죄에서의 구원이고, 영생의 약속입니다.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가장 소중하게 찾으셨던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에 따라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었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음을 기이히 여기시며 슬퍼하기도 하셨습니다.
믿음은 성도의 삶에 기초요, 생명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데서 시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장합니다.
우리 인생의 전환점은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론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신행일치의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고통과 환란의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아이와 아버지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응답이시길 기원합니다.


Ⅱ. 둘째는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 부자(父子)를 만났을 때 그리고 저들의 부탁을 받았을 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20절에 보면 예수께로부터 파송 받았던 70인 전도대들은 귀신이 항복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변론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건을 만날 때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떠드는 것과 다툼 곧 변론뿐인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바라는 자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줍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문제해결을 받습니다. 병든 자를 낫게 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여러번의 침공으로 많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때 마다 위기를 기도의 기회로 삼았었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그 위기를 잘 넘겼었습니다.

어느 날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이 걸렸습니다.
그는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왕기하 20장 5절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을 주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의 용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을 살펴보니까 그들은 공부의 양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공부하는 책의 분량이 많았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집중하고 공부하는 시간의 양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성적이 잘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아니면 담당교역자들의 권면을 통해서
주일 성수하라, 십일조하라, 감사하라, 봉사하라, 기도하라, 새벽기도하자 등등
신앙적 권면의 말씀을 수없이 들으셨을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하루의 시간 중에 기도의 분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내 삶에서 신앙생활이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나의 신앙생활의 전체 성적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샘이, 감사의 샘이, 기도의 샘이 메말라 버려서 삶의 터전이, 황무지가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성실한 모습으로 보여 지지는 않았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심으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는 주님의 응답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자리에 계신 성도여러분이 이 말씀의 주인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나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로마서 8장 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믿음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능력의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이어야 응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
마가복음 11장 23절에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저 멀리 아득한 곳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내 맘속에 나의 삶 속에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심을 믿으십니까?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 삶의 모습이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서 다 보고 계신데 
- 주일을 성수하는 나의 신앙에 주저함이 있어서야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 십일조, 감사와 각종헌금에 어떻게 정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교회봉사와 헌신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
- 선교와 전도에 어찌 최선을 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서 다 듣고 계시는데 
- 어떻게 기도를 안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새벽기도, 무시기도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시 46:5)
그리고 기도의 내용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학생들의 모습이 옛날과는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 학생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었는데 요즘은 길에서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기만 하면 입에 붙은 말들이 "빵 사주세요,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뭐 사주세요…" 
주위 사람들 보기에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사 주기도 합니다만… 사 줘도 찝찝합니다.
어쩌다 학생들이 음료수나, 과자, 귤 하나 들고 '목사님 이것 드시고 힘내세요'라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별것 아니지만 정말 감동입니다. 
그 학생에게는 뭐든지 다 주고 싶고, 더 주고 싶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도는 달라고… 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가 아닙니다.
하나님 일을 위하여 이 것이 필요하고 저 것이 필요합니다.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으로 하는 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돈주세요! 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 교회를 위해, 선교를 위해 헌금해야겠는데 제 사업을 축복해 주세요.

하나님 넓은 집 주세요! 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 구역예배 새소식반을 저희 집에서 하면서 전도하고 싶은데 좀 더 넓은 집 주세요.

하나님 나도 안 아프게 해주세요!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교회에서 봉사하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건강허락해 주세요. 

어떤 기도가 응답되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함께 동행해주시는 하나님,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기도를 올릴 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라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가족 모두가 그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기도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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