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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람을 잡으려는 것 (전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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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잡으려는 것 (전 2:11-15)
  

여러분, 여우와 신포도 얘기 아시지요? 
여우가 포도나무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저 포도는 신포도야.’ 이렇게 말한다는 거지요. 
자기가 못 먹으니까 남도 못 먹게 한다는 거지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돌려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포도나무에 많은 여우들이 몰려옵니다. 
수백 마리 여우들이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야단입니다. 

결국 그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유능한 여우가 포도나무에 올라가게 됩니다. 
큰 기대감으로 포도를 따서 입에 넣습니다. 
그런데 진짜 못 먹을 신포도입니다. 
이때 이 여우가 밑에 있는 여우들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너무 시어 못 먹겠어!” 라고 말할까요? 아니면 “아, 정말 맛있다!”라고 말할까요? 
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이거 따 먹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 
그래서 ‘맛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밑에 있는 여우들은 침을 흘리며 부러워합니다. 
두 번째 여우가 맛있는 포도를 먹겠다고 죽어라고 목숨 걸고 올라갑니다. 
포도를 따 먹어보고서 속으로 욕합니다. 
‘나쁜 놈, 이걸 맛있다고 거짓말을 해?’ 
그래서 그 여우가 “너무 시어 못 먹겠어!”라고 말할까요?
아닙니다.
그 또한 나무 아래에 있는 여우들에게 ‘참 맛있다!’라고 소리칩니다. 
그도 역시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고, 자기 자신의 삶을 허망하다고 고백하기가 두렵다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은 정말 솔직하게 자기 삶을 평가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긴 것은 긴 거라고 진솔하게 자기 삶을 털어놓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2장에서도 ‘이렇게 사는 것은 잘못된 삶이었다.’고, ‘이것은 허무한 것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 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삶의 진실은 ① ‘쾌락은 허무하더라.’, ② ‘재물도 헛되더라.’ 입니다.

1. 쾌락은 허무하더라. 

8절에 보면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좌우에서 항상 풍악을 울리고, 노래하는 기쁨조가 있었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솔로몬은 처첩만 천명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쾌락을 다 취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쾌락 끝에 기쁨과 행복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쾌락 끝에는 더 큰 공허가 밀려왔습니다. 
오히려 웃음 뒤에는 더 큰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잠언 14: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노래방에 가서 목청 높여 노래를 불러보고, 술집에 가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들이부어 보지만 노래 끝에는 허전함이 있고, 술이 깨면 더 큰 근심이 밀려올 뿐입니다. 
가끔씩 그렇게 사는 것이 즐거운 인생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을 보긴 합니다만 대부분 정신 있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그런 것으로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음을 압니다.

한때 중동에 우리나라의 건설 근로자들이 많이 파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이 독신으로 나갔는데 낮에는 일을 하지만 밤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근로자들에게 그 시간이 무료했습니다. 
그래서 건설현장의 감독들이 근로자의 무료함을 달랜답시고 나쁜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틀어줬답니다.
그랬더니 건설 근로자들이 서로 밟혀 죽을 정도로 열광하며 몰려들더랍니다. 
하루 틀고, 이틀 틀고, 사흘 틀고, 일주일동안 계속 틀었더니 오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한 달 째 트니 자리가 텅텅 비면서 근로자들이 하는 말이 ‘이제 그거 좀 집어치우시오!’ 하더랍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나쁜 비디오를 보고 한 달 이상 즐거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그런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쾌락 뒤에는 오히려 더 큰 허전함, 공허감, 죄의식이 쌓일 뿐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쾌락이란 쾌락을 다 누려보았지만 그것은 신포도일뿐, 허무감만 더할 뿐, 죄의식만 더할 뿐, 기쁨도 행복도 주지 않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재물도 헛되더라.

11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생각해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재물을 얻는 것을 바람을 잡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바람을 잡아둘 수 있습니까? 
바람은 잡을 듯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재물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많은 재물도 헛되더라는 것이지요.
솔로몬은 왜 재물이 헛된지 두 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① 재물이 자식에게 넘어간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내 뒤를 이을 이’란 자식을 말하지요? 
그런데 그 유산이 자식의 인생에 유익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담할 수 있습니까?
또 자식이 그 유산을 오랫동안 보존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담할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3대를 이어가는 유산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봉건시대에도 어렵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민주주의 시대에는 더 어렵겠지요? 
다 부모들의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자식에게 이런 유산이 돌아갈 테니 부모 할 도리를 다했다.’ 뭐 이런 거지요.

② 재물이 헛된 이유는, 재물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21절을 보면,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이 말씀은,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고는 내가 했는데 돈은 수고하지 않은 자의 주머니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3. 그러면 성도는 재물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전제해야 할 점은, ‘재물보다 하나님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돈 번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쫓아다니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 추구는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분별력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시 37:25-26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하나님께 목숨을 걸어야지 재물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보장을 받으려고 해야지 재물로부터 삶의 보장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나의 미래, 내 자식의 미래를 맡겨야지 재물에 내 미래 내 자식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①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돈을 벌라.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사 45:3) 얻으십시오!
크리스천 재벌이 되십시오.

②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저축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100만원 벌어서 10만원 저축하는 사람이 있고요, 300만원 벌어도 30만원 빚지는 사람이 있어요.
성도 여러분, 저축하십시오.
과소비가 미덕일까요?
어떤 분들은 오소비가 문제지 과소비가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일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는 수출이 안 될 때 내수를 진작시켜야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소비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미덕이 될 때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과소비가 진짜 미덕일까요? 
신앙적으로 진지하게 숙고해봅시다.

결론은, 지구 자원의 고갈, 소비의 편중 등의 문제를 고려한다면 성도들은 절제 있는 소비 생활을 해야 맞습니다. 
소비가 증대되면 될수록 한정된 지구 자원은 그만큼 빨리 고갈됩니다. 
후손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에 500만 원씩 소비하는데 어떤 사람 30만 원도 채 쓸 수 없다면 소비는 너무 편중된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들은 돈이 많던 적던 관계없이 절제 있는 소비생활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③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쓰라

돈이 하나님을 위해 쓰일 때 유한한 물질이 영원한 것이 되고, 땅의 물질이 하늘의 것이 되고, 진정으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물질이 됩니다.
조지 쏘러스에 대해서 잘 아시지요? 
이 사람은 유명한 펀드매니저입니다. 
이 사람이 굴릴 수 있는 돈이 120억 불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앙이 돈독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갑부이지만 그의 생활은 검소합니다. 
1년에 5억불 정도 버는데 자기 소득의 반 정도인 2억 5천만 불을 들여 ‘Open Society Institute’라는 재단을 운영합니다. 

적은 돈은 내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큰돈은 어렵습니다. 
이 재단은 독재국가들의 민주화를 돕고 있습니다.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한 사회와 사람에게 인권과 자유를 찾아주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저도 여러분께 가끔씩 도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자녀를 양육하거나 살 집을 마련하거나 해서 이런 결단을 하기가 어렵겠지만 인생을 사는 중 한번은 옆에 있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큼지막하게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돈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든지, 고아들을 위해 쓰든지, 지체아들을 위해 쓰든지, 집 없는 노인들을 위해 쓰든지, 불치병을 극복하는데 쓰든지, 이렇게 한번 써야 하나님 앞에 가서 보고 드릴게 있지 않겠어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일보 종교부장인 김무정씨가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에 대한 글을 기고했습니다.(2012년 8월11일)
이 분은 업무상 여러 교회의 사역현장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한국에 1년에 문을 닫는 교회가 3,000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더라는 거지요. 
그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첫째, 주일설교 준비에 목숨을 거는(?) 목사의 교회가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교우들은 한 주간을 지탱할 ‘영적 자양분’을 목사에게서 공급받습니다. 
목회자의 성령 충만한 메시지에서 은혜를 받고, 강력한 기도로 활력을 얻습니다.
둘째, 선교지향적인 교회가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바로 선교(행 1:8)입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나 선교합니다. 
그러나 흉내만 내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적인, 물적인 역량을 총동원하여 선교하는 선교지향적인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셋째, 헌금을 모아놓지 않고 풍성히 흘러보내는 교회가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교우들은 자긍심도 컸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쓰면 쓸수록 더 늘어나는 하나님의 경제원리를 실천하는 교회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재물은 얻어 봤지만 그것 또한 헛되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직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만이 헛되지 않습니다! 

전2:24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안인데 이것이 어디로부터 오느냐하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무엇을 하여야 헛되지 않습니까? 
무엇을 하여야 그 인생이 가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라!’ 
거기에 참된 행복이, 참된 평안이, 참된 안전이, 참된 보장이, 참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재물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추구하는데 우선적으로 여러분의 시간, 재물, 에너지를 투자하십시오.
그래서 먼 훗날 여러분의 인생을 뒤돌아볼 때 ‘헛되었다.’, ‘허무하다.’가 아니라 ‘참 보람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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