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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리 13) (빌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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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리 13)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2절>

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주로 무슨 말을 많이 하십니까?
직분에 상관없이 남의 험담을 일삼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 입으로 기도하는지 …
어떻게 그 입으로 설교하는지 … 
이해가 안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남을 즐겁게 하는 말, 고맙다는 말, 좋다는 말,
믿음 담긴 말, 소망 담긴 말, 사랑 담긴 말을 많이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서 예수님은
“…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속에 가득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악한 말을 하거든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그 사람 속에 악이 가득 담긴 것입니다.
여러분 늘 믿음, 소망, 사랑이 담긴 말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좋은 말을 하며 삽시다”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완전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피조물인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완전’일 것입니다. 
완전(完全)의 사전적 정의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완벽(完璧), 온전(穩全)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고, 
영어로는 complete, full, perfect 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상태’,‘최고 수준’,‘최상급’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완벽함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인간은 모자라고 흠이 많습니다.
그래서 완전이라는 말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부담을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 먼저, 지식에 있어서 완전치 않습니다. 
체험상으로나 성경상으로나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기도해도
무지로부터 자유로울 만큼 완전하지 못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0.]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압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역사에 대해서도 알며
무엇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인가에 대해서도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해 다 안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고
말은 하며 고개는 끄덕여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정확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한 분이면서 세 분이고, 세 분이면서 한 분이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시고 또 셋이신 하나님이
머리로 이해가 갑니까?
물론 ‘복합적 단일’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라는 
이상한 수학 복합적 단일 조차도 이해가 안됩니다. 

에디슨은 선생님이 1+1은 2라고 하니까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쥐 한 마리를 잡아먹으면 
고양이 한 마리만 남겨지고, 
물 한 방울과 물 한 방울이 더해지면 한 방울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며 사는 진리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내용과 깊이와 넓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찬송가 304장에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였습니다.
-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도 다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절망과 좌절이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변하여 선하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눈물 흘리고 괴로웠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던 적이 많습니다.
-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실지도 알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보면
“그 날이 덫과 같이”임한다고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는
“그 날이 도둑 같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인간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음에도 자신에 대해 
‘진리의 대양 앞에서 매끈한 조약돌을 찾으려는 소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발행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현대 과학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과학적 질문들을 25개로 정리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우주의 95%를 구성하는 물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우주선을 타고 달 뿐만 아니라 수많은 행성에 가도
우주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 지구 내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지구 표면에서 지구중심까지의 거리는 6,400km에 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 4km까지 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상으로 들어가면 온도가 너무 높아 
어떤 물질이라도 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 위에 살지만 지구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 채 삽니다. 

- 이 외에도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
-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 지, 
- 동물이 겨울잠을 어떻게 자는 지 … 
- 왜 어떤 사람은 오른손잡이이고, 
어떤 사람은 왼손잡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하품은 왜 나오는 것인지?
- 딸꾹질은 왜 나는지?
- 남자들의 젖꼭지는 왜 있는지?
- 왜 여자들은 턱밑에 수염이 나지 않는지?
- 왜 사람마다 혈액형이 다른지? … 알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155가지 신비> ‘시아’출판, 스테픈 주안 지음, 김영수 역.

‣ 둘째, 사람은 실수를 전혀 범하지 않을 만큼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지 않는 일도 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착각을 하고 삽니다. 
착각만 하는게 아니라 우기기까지 합니다.
우기는 데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교회 목사님, 전도사님들과 같이 
목회계획을 세우기 위해 강원도 문막에 있는 콘도에 갔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콘도 앞에 위치한 음식점에 갔습니다. 
그런데 물컵을 놓던 여종업원이 저를 보더니 
“며칠 전에도 오셨는데 또 오셨네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식당에 생전 처음 갔는데 말입니다. 
깜짝 놀라서 “제가요?”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네, 손님 며칠 전에도 오셨잖아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랑 같이 왔었느냐고 물어보려다 말았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 갔지만 종업원이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밥이나 달라고 하고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부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이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종업원이 우겨대는데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착각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착한 사람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거나
악한 사람을 실제보다 더욱 악하게 평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여겨 믿기도 하고
거룩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p.99-100.]

어디 그뿐 입니까? 황당한 실수를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실수한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실수와 오해들이 반복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교회에서도 예외 없이 실수와 오해가 생겨 
갈등과 반목을 하는 일이 발생됩니다. 
그런 실수와 오해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싸우다가 교회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교회 중에는 목사와 목사가 싸우고, 목사와 장로가 싸우고
장로와 장로가 싸우고, 교인들끼리 싸우고 
마침내 교회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등지고 원수를 맺습니다.

성경에 관해서도 실수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목사라 할지라도
신학을 깊이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의 교수가 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일치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인간에게 실수가 많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단들처럼 
터무니없이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고, 예수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마저도
왜곡하는 이단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2.]

‣ 셋째로, 인간은 연약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약함이란 자주 넘어지는 죄의 습성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결치 못하다는 약점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형제를 미련하다고 하거나(마5:22)
혹은 욕을 욕으로(벧전3:9) 갚기도 합니다. 

또한 술과 담배, 음란의 문제, 
시기와 질투, 근심과 염려, 탐욕 … 등
수많은 연약함은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런 연약함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훌륭한 성품과 영성을 갖고 있는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완벽하다, 나는 걱정 없다’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넘어질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일수록 마귀가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 삶을 다하는 날까지 
연약함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2.]

‣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
끝까지 시험 당하신 일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시험 받을 것을 각오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4.]

내가 예배드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는 끝까지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려고 노력합니다.

영국의 부흥사 로랜드 힐 목사님이 거리를 지나가는데, 
여러 마리의 돼지가
어떤 사람을 줄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힐 목사님은 돼지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돼지들을 도살장으로 인도하는 데도 
아무 반항 없이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신기하게 생각한 목사는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돼지를 이곳까지 오게 하나요?”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비밀은 콩입니다. 보시다시피 완두콩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몇 알씩 흘려주었지요.” 

사탄도 많은 종류의 콩알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그 콩을 주워 먹으며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돼지처럼 영혼의 도살장인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처럼 유혹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도사리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

앞에서 본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완전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교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 목사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하게 소유하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따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물론 웨슬리 목사님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흠이 없는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보면,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중’이라고 말합니다.(14절)
그리고 그 다음 15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빌 3:15)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완전한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보면
“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고 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된 ‘완전’의 의미를 살펴보면 
성숙, 성장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고 했습니다.

새번역에는 완전을 ‘흠 없는, 의로운’으로 번역하였고, 
영어성경에는 blameless, just, perfect 같은 단어로 쓰였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서 노아에게 쓰인 완전이라는 단어는 
‘완성하다, 완수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타맘’에서 파생된 단어로 
모든 행위가 한 점 티도 없이 완전하다거나 
전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 1장 28절에 보면 
‘완전’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자’를 다른 번역본에서는 
‘온전한 사람, 성숙한 인간’으로 기록했으며,
영어성경에서는 full mature, complete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완전은 ‘성숙함’과 연관되어 있는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말씀하신 완전은
이전보다 좀 더 나아진 상태를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악한 생각이나 성품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며
그런 완전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6, 117.]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완전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한 것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롬6:5)
또한 요한1서 3장 9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일 3:9) 하였고, 
요한1서 5장 18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요일 5:18) 하였습니다. 

이처럼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06.]

완전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보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의 상태에 이르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이 땅에서 완전해 질 수 있는가?’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다윗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후에도 밧세바를 취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완전은 
- 절대적인 완전이 아닙니다. 
그러한 완전은 하나님만이 가능할 뿐,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무지도 없고 실수도 없으며 
연약함도 없고 유혹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 저, 정행덕 역, 
<그리스도인의 완전(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서울: 전망사, 1979, pp.147~148참조>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자기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고 했습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뜻은 
나의 악한 성질, 곧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뜻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 전부를 말합니다.
[Albert C. Outler, {The Works of John Wesley-vol.2},
Abingdon Press, 1984, p.118.]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예수님처럼 생각하며 예수님처럼 행동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막12:30-31)
늘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아낌없이 드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단계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약속일 뿐 아니라
도달해야 할 신자의 의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완전한 것 같은데 
운전대만 잡으면 불완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은 매순간 순간 연결된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고후 7:1) 해야 합니다. 
그리고 
“…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빌 3:13~14)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정’이라는 말은, 세상적으로는 
어떤 순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몸부림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열정은 전에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모레도 해야 하는 
끊임없이, 변함없이, 계속해서 잘하는 것 그것이 열정입니다.
작년에 신앙생활 잘 하셨습니까?
금년에도 신앙생활 잘하고, 내년에도 잘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 잘 드리셨습니까?
오늘도 잘 드리고, 다음 주일에도 잘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훗날 하나님이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부족하고 연약한 저희들이 하나님께 감히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완전한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 앞에 콩을 늘어놓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 순간 순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거룩한 주일 예배 드린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아름다운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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