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게으름(1) : 위험한 게으름 (잠 6:6-11)

첨부 1


게으름(1) : 위험한 게으름 ( 잠 6:6-11) 
 
 
❚위험한 게으름

여러분, 혹시 ‘위 절제술’이라는 수술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내가 좀 살이 쪘다, 비만이다 하는 분들은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세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인 폴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체중을 120kg킬로그램 넘게 줄였다고 합니다. 아니, 도대체 체중이 몇 kg이었기에 120kg을 줄였단 말인가? 그는 지난달 위 절제술을 받은 후 120kg 감량에 성공, 체중이 311kg이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살을 빼기 전에는 120+311=431kg이었다는 말이잖아요? 세상에... 위 절제술이란 말 그대로 위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입니다. 우리가 살이 찌면 자동적으로 위도 살이 찌고 커집니다. 그러니 그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더 먹고 살이 더 찌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따라서 위 일부분을 잘라내서 적은 음식을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끼도록 하는 수술이 위 절제술입니다. 메이슨은 음식강박장애로 보통 남성들이 먹는 양의 8배의 음식을 폭식해 왔다고 합니다. 몸무게가 430kg에 달하자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갇혀 생활해 왔는데 지난해 살을 빼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종전 ‘세계 최고 비만’ 챔피언인 멕시코인 마누엘 우리베는 한 때 체중이 570kg이 넘게 나갔으나 이 위 절제술을 받고 264kg을 줄이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도 위 절제술이나 좀 받아볼까?” 생각했습니까?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정말 깜짝 놀란 것은 뚱뚱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뚱뚱한 사람은 미국 가면 다 날씬한 축에 듭니다. 길거리에 덩치는 산만하고 최소 수백 kg은 돼 보이는 뚱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그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심지어 평지를 몇 발자국 걷는데도 힘이 들어 씩씩거립니다. 

지금은 그래도 몇 발이라도 움직이지만 거기에 살이 더 찌면 어떻게 될까요? 관절이 도저히 견뎌내지 못해서 결국 꼼짝도 못하고 집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합니다. 그러다가 고혈압이나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뚱보가 더 뚱보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혹은 운동을 안 해서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결국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고 그 와중에도 음식은 계속 먹어야 하니 살이 더 찌는 것입니다. 악순환입니다. 이 모든 악순환은 결국 게으름의 대가인 것입니다. 조금만 덜 먹고, 조금만 더 움직였으면 되는데 그게 싫어서 게을러서 그렇게 불행해진 것입니다.

게으름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 게으름에 대해서 상당히 경계합니다. 게으르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든 게으름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게으름이 나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게으름의 종류에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하나는 ‘위험한 게으름’이고 또 하나는 ‘거룩한 게으름’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 우리는 이 두 가지 종류의 게으름, ‘위험한 게으름’과 ‘거룩한 게으름’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씀하는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게으름은 악이다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위험한 게으름’에 대해 알아봅니다. 성경은 이 위험한 게으름에 대해 이렇게 규정합니다. “게으름은 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게으름은 단지 삶의 태도일 뿐이라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도 있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다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말입니다. 혹은 게으름은 나쁜 습관일 뿐이라 언제든 고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절대 게으름을 선택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절대 게으를 수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은 나쁜 습관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악이다, 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게으름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시편 90: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 시대에 오래 살아봐야 70년 살고, 장수해봐야 80이지만 몇 년 더 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에베소서 5: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러분, 우리 인생은 단 한 뿐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시행착오가 없다는 것입니다.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그 한번 뿐인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아끼고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바로 이 소중한 인생을,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좀먹고 낭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게을러서 인생을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도 뼈아픈 손해지만, 그 인생을 주신 하나님, 그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돌이킬 수 없는 범죄요 불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게으름을 단순히 잘못된 습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큰 죄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경은 어떤 게으름이 위험한 게으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게으른 자여

성경은 제일 먼저 ‘게으른 삶의 태도’에 대해 경계합니다. 생활 속에서 게으른 사람은 반드시 게으름의 대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회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참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날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고 이른 아침 학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삶이 너무 싫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남들 다 대학 간다고 공부하니까 덩달아 공부했는데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공부하기가 싫어지고 지치는 겁니다. 

요즘 우리 수능 수험생들 불과 시험이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가끔 저처럼 이렇게 지치고 모든 게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제가 교회 친구들과 함께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고 있었어요. 하루는 잠언을 읽는데 한 구절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나는 것입니다. 그 구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6장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6절 말씀을 읽을까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개미는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먹을 것을 여름 내내 준비해서 추수 때를 준비하지 않느냐? 게으른 자들에게 개미를 본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야 너 어느 때까지 누워 있을 거냐? 언제나 좀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있자 하면 뭐가 몰려온다고요?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11절)

제가 이 말씀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든 것은 “게으르면 가난해진다” 이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그래, 딱 1년만 참자! 고3 딱 1년만 고생하면 내 직업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어느 고등학교에 가면 교실에 이런 글이 붙어있다고 하네요. 남학교에는 “너의 수능성적이 네 부인의 얼굴을 좌우한다!” 여학교에는 “네 수능성적으로 네 신랑의 직업을 좌우한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대학 잘 가야 예쁜 부인도 얻고 직업 좋은 남자한테 시집도 간다는 말이지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1년만 꾹 참고 공부하면 내 직업이 달라지고, 내 미래가 달라진다. 물론 잠언 말씀도 제 생각과 비슷한 것처럼 들립니다. 게으르면 당연히 가난해지고, 부지런하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이 사실을 뛰어넘어 단순히 게으름이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이 게으름의 문제에 대해 잠언이 여러 번 말씀을 하는데 그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게으름은 반드시 나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방금 전 읽은 잠언 6:11이 말씀하지요.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르면 그 순간에는 편하고 좋을지 모르나 결과는 반드시 가난이나 실패나 고통 같은 나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게으름은 잘못된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잠언 26:14은 말씀합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옛날 우리 대문은 나무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돕니다. 돌쩌귀란 문짝을 문설주에 고정시키는 돌입니다. 오늘날은 힌지(hinge)라고 부르지요. 문은 이 힌지, 돌쩌귀를 따라 돌며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절대 돌쩌귀를 벗어나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게으른 자들은 이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처럼 행동반경이 침대를 따라 돈다는 것입니다. 침대에서 늦잠 자다 일어나 밥 먹고 또 침대 돌아가 자고, 잠시 일어나 침대에 앉아서 TV보다가 또 스르르 누워서 자고, 이런 식으로 늘 삶이 침대를 중심으로 맴돌다가 끝난다는 것이지요. 게으름은 이렇게 습관입니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고 생활화가 되면 절대 그 게으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게으름이 습관이 되면 고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서울역에 누워 자는 노숙자들이 처음에는 누가 볼까봐, 아는 사람이 볼까봐 부끄럽지만 몇 달만 지나면 점차 수치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누가 뭐래든 대낮에 술 먹고 길바닥에 누워 자게 됩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신체 멀쩡한데 일 좀 하라고 하면 “노숙자 생활이 이렇게 편한데 뭐하러 힘들게 일하냐”고 한답니다. 게으름은 참으로 무서운 습관입니다.

셋째, 게으름은 온갖 핑계를 댄다는 점입니다. 잠언 26:13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나가서 일 좀 하라고 하면 노숙자처럼 “내가 뭐 하러 힘들게 일해?” 하면 차라리 솔직한데 길거리에 사자가 있어 무서워서 못 나간다고 핑계를 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으름에는 반드시 핑계가 있습니다.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몸이 튼튼하지 못해서 등등... 그들은 수많은 핑계를 생각하고 만들어서 어떻게든 게으름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차라리 그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는 좋은 머리로 일을 하든지 공부를 하면 좋은데 앉아서 잔머리만 굴리고 핑계만 생각하며 게으름에 머무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된다? 반드시 그 게으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게으름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게으름이 이렇게 위험하지만 그 모든 게으름 중에 가장 위험하고 나쁜 게으름이 뭐냐? 바로 ‘영적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웬일인지 성도들 중에는 생활이나 일상적인 삶에서는 전혀 게으르지 않고 오히려 부지런한데 신앙적으로, 영적으로는 게으른 분들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볼 때 정말 안타까운 분들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게으름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신앙의 목표가 없습니다. 모든 게으른 사람은 목표가 없습니다. 

잘 살아보자는 목표가 있어야 부지런히 일도 하고 저축도 하는데 게으르면 목표가 사라지고 오직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틸까? 오늘 한 끼 어떻게 때울까가 유일한 목표가 됩니다. 영적 게으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교회 다니니까 다니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자, 믿음이 좀 더 성장하기 위해 신앙생활 좀 더 잘 하자, 이런 목표가 없이 하루 하루, 한주 한주 그럭저럭 신앙생활 하며 사는 것입니다. 

특히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은 영적 성장에 대한 의지가 없습니다. 예수 좀 더 잘 믿으면 좋겠다, 믿음이 좀 자라면 좋겠다 이런 성장의지가 없는 것이지요. “이만 하면 잘 믿는 거지” 하고 스스로 만족합니다. 그러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신앙이 항상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퇴보합니다. 수십 년 예수 믿어도 믿음이 항상 초보수준이거나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렇게 오래 교회 다녔는데 오히려 처음 믿을 때보다 믿음이 점점 더 퇴보합니다. 

그냥 나중에는 정말 문짝이 돌쩌귀 따라 도는 것처럼 주일에 교회만 왔다갔다 습관적인 신앙인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기억하십시오. 이런 게으른 신앙은 절대 신앙생활 하는 기쁨을 스스로 맛볼 수도 없거니와 나아가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따라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 게으름은 정말 위험한 것이고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내가 이만하면 예수 잘 믿지” 하는 생각은 빨리 버리십시오. 그 순간 교만이 들어오고, 그 순간 게으름이 들어와 내 신앙은 딱 그 순간부터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이 정도만 믿고 더 빠지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적당히 믿고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는 마귀의 음성인 것입니다. C.S.루이스가 쓴 <스쿠르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 보면 삼촌 마귀인 스쿠르테이프가 조카 마귀에게 한 수 가르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에 참 인상적인 말이 하나 나옵니다.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고!”라는 말이 마귀들의 아주 교묘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조카야, 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못 믿게 막으면 안 된다. 못 믿게 하면 그들은 오히려 더 악착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해라. 교회 다니라고, 얼마든지 예수 믿으라고, 그러나 절대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고 말이다. 적당히 예수 믿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기쁨이고 미지근한 신앙인들은 지옥에서 즐기는 ‘가장 좋은 구경거리’란다.” 정말 소설이지만 소름 돋는 이야기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이야말로, 게으른 신앙이야말로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요 우리의 신앙 성장을 막는 최대의 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 게으르지 맙시다. 절대 영적 게으름, 신앙의 나태함과 안일함에 빠지지 맙시다. ‘미지근함’의 반대말은 ‘열정’입니다.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요 ‘충성’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기쁨과 만족이 있어야지요. 무덤덤하게 믿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미지근하고 게으르게 믿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뜨겁게 부지런히 믿으면 우선 내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열정적인 그리스도인,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