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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아낌없이 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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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이면 정직을 가르쳐야 할 교사임에도 아이들에게 부득불 한가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1학년 음악 수업을 하며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되는 양주동 작시, 이흥렬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을 가르친 후 한가지 과제를 냅니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아침에 부모님 앞에서 형제들의 손을 잡고 이 노래를 3절까지 모두 외어 부르면 선생님이 부모님과 전화 통화로 확인하여 중간 고사 가창 시험에 10점을 더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 저기서 질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많은 학생을 어떻게 모두 확인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다른 지방에 계시는데 어떻게 해요? 부모님이 아침 일찍 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다 외지 못하면요?” 저는 정색하며 “이것은 평가와 관련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 전화를 하며, 행여 아침에 노래하기 어렵다면 저녁에 하면 된다. 그리고 1절만 부르면 5점, 2절까지 부르면 8점을 인정하겠다”라고 답합니다.

이렇게 말 해도 반신반의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노래하지 않아도 감점은 없으나 단지 선생님은 노래한 것이 확인된 학생들에게는 틀림없이 10점을 더하여 주겠다고 말을 하면 평소 늘 웃으며 수업하던 선생님이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에 아직은 순수한 우리들의 1학년은 대부분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정말로 확인하냐구요? 하하! 애초부터 모두 확인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엄정하게 관리되는 평가에서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어버이날이 지나고 나면 왜 확인 전화를 하지 않느냐는 아이들의 성화가 대단합니다. 그러면 웃으며 대답합니다. “노래하고 나니 부모님의 반응이 어떠냐? 부모님이 기뻐하셨다면 가창 점수 10점을 더 받고 안받고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곳곳에서 원성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매년 이 노래를 가르치며 3절의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이라는 대목만 이르면 목이 매여 더 이상 부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가사를 단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만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왜소해 지며 하루가 다르게 굽어지는 어머니의 허리와 목을 보며 아! 정말 어머니는 살과 뼈를 깎아서 나를 기르셨구나 하는 것을 실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근래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이 부친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마침 빈소가 제 고향과 인접한 영주였기 때문에 조문 후에 잠시 부모님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 같아 출발하기 전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후에 부산을 출발하여 어두워서야 영주에 도착했습니다. 문상을 하고는 동행한 선생님들을 상가에서 기다리도록 양해를 얻은 후 급히 고향 집을 찾았습니다.

웅크리고 앉으신 채 소금에 절인 배추에 갖은 양념을 버무리기에 여념이 없으시던 어머니는 그 고운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시며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이미 한쪽에는 사과 한 상자, 쌀 한 포대, 그리고 송이버섯과 애호박, 밤 등이 봉지째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제 철이 지난 것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성영이 몫으로 보이는 삶은 옥수수 한 봉지와 건포도가 송송 박힌 기지떡(증편) 한 봉지도 있었습니다.

막 담근 김치를 아이스박스 통에 가득 담으시고는 빨리 짐을 싣고 나가 보라며 재촉을 합니다. 기다리고 있을 선생님들도 염려가 되고, 늦은 시간 부산까지 운전해 가야 하는 아들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가 봅니다.

이렇게 부리나케 집을 나서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냥 어머니 얼굴 한번 뵙고 싶어 들렀는데 뭘 이리도 많이 준비했냐고 괜한 심통만 부렸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멀리까지 함께 온 선생님들을 그냥 돌려 보낼 수 없다며 준비해둔 햇깨로 짠 참기름을 여섯 병을 또 내밉니다. 그분들은 우리집 손님이 아니니 이렇게 하실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 드려도 그것이 예가 아니라는 어머니의 강권에 두분 몫의 참기름을 또 받아 쥡니다.

빈손으로 집을 찾은 것이 너무 무안하고 속상하여 뒤로 돌아 지갑을 열어 보니 하필이면 6만원 밖에 없습니다. 겨우 5만원을 고기라도 사 드시라고 드리니 지난 추석에 돈을 많이 받았는데 필요 없다고 사양을 합니다. 억지로 손에 쥐어 드리고는 정든 고향 집에 반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참 만감이 교차합니다. 공무원에게는 설날과 추석이 있는 달에는 효도 휴가비 명목으로 본봉의 절반 정도의 돈이 지급됩니다. 결혼 초기에 아내와 약속하기를 이 돈은 우리 돈이 아니고 나라에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주는 돈이니 내가 받는 것은 본가에, 아내가 받는 것은 처가에 모두 드리기로 하고 그 동안 그렇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근래 공무원의 봉급체계가 본봉 위주로 바뀌면서 효도 휴가비가 많이 올랐습니다. 지난 추석에는 아내와 함께 백만원이 넘는 효도휴가비를 받았습니다. 막상 적지 않은 돈을 받게 되니 이런저런 생각들과 핑계 거리들이 떠오르며 처가와 본가에 각각 삼십만원만 드리고 말았었습니다.

저는 이리도 약고 계산에 밝은데 어머니는 제 전화를 받은 그 순간부터 그저 뭐 하나라도 더 보탤 것이 없나 온종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평생 입으로만 효도하고 마는데 어머니는 철마다 옥수수며 사과며 당신도 드시지 못하는 그 귀한 송이버섯을 보내 주시고, 얼마 전에는 도토리묵을 담았다며 택배로 보내왔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집니다. 홀로 운전석에 앉아 어머니의 그 큰 사랑에 어찌 할 수 없어 그냥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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