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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조수현 목사님 설교말씀. 천천히 묵상해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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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레갑족속의 경건 ----------- 본문 : 예레미야 35:1-11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보면 참 이상한 귀절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도 참 특이한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레갑 사람들을 성전으로 불러다가 한 방에 앉혀놓고는 가득한 포도주잔을 주면서 이 포도주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레갑사람들은 안먹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레갑사람들은 절대로 안 먹겠다고 합니다.

조금 후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레갑사람들은 잘했다고 오히려 칭찬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 35장의 내용입니다.

성경에 참 이상한 내용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 하면서 친구들과 술 한잔 어울리고 싶어도 결심을 합니다. '나는 오늘부터 절대로 술을 안마시겠어.' 그랬더니 친구들이 웃습니다. 어떤 친구가 오늘은 자기가 술 한잔 사겠다고 합니다. 일찍 집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끌고 가서는 안 먹겠다고 하는 친구앞에서 술을 부어놓고는 일부러 먹으라고 합니다. "뭐 이거 한잔쯤 어때? 그러지 말고 먹어봐. 너무 그렇게 혼자 잘난척 하지 말고 사나이답게 한잔 받아. 사람이 이렇게 너무 좀스러우면 안돼."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장난기 있는 친구들이 꼭 술 안먹겠다고 끊었다고 하면 저녁에는 술자리를 마련하면서 술을 일부러 막 먹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던 기원전 605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례미야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조상때부터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살아온 레갑족속이 있었는데 그들을 성전의 한방에 모으고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레갑족속은 그당시에 굉장히 특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경건한 삶을 살면서 자기 조상이 내린 성결한 삶의 방식대로 절대로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 나실인의 서원을 잘 지키면서 농사도 하지 않고 집도 짓지 않고 천막에 거주하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오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레갑자손을 모아놓고 사발에 포도주를 가득히 주면서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레갑자손들은 모두가 이 포도주를 마시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마시지 않겠다고 버텼던 것입니다. 언듯 보아서는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한 이 레갑자손들을 오히려 극구 칭찬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이 레갑자손들을 보아라. 이들은 이렇게 자신의 조상들이 명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키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그 명령의 말들을 마음에 새기질 못하고 왜그렇게 지키질 못하느뇨?"

레갑 족속의 조상이 옛날 그 후손들에게 내린 명령 -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농사짓지 말고 천막에서 거하라-고 한 이 명령은 본래 하나님을 위한 열심에서 나온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대대로 경건 명령을 고지식하게 지켜오는 레갑자손들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칭찬해 주시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식은죽 먹듯이 가볍게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시대 사람들에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세상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고지식하다고 말을 합니다. 또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또 교회안에서까지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인들이 좀더 신앙생활에 융통성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많이 교회에 올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교회에서 성수주일 성수주일하며 일년 52주 하루도 주일을 빠지지 말라고 이렇게 자꾸 설교를 하면 어디 세상사람들이 교회안에 들어오겠는가? 때로 무슨 사정이 생기면 주일 낮예배도 좀 빠질수도 있는 것이고 때로 이 세상에 살다보면 술좌석에도 참석 할 수 있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과 사귈수도 있고 거기에 같이 이렇게 어울려 살수 있는데 너무 교회에서 고지식하게 융통성 없이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면서 요즘 현대 그리스도 인들은 굉장한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적당히 융통성있게,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의 엄청난 실패를 우리에게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조상인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를 잘 아실것입니다. 그는 들판에 나가서 사냥하기를 좋아하는 사내중의 사내 대장부였습니다. 그런데 동생 야곱은 밖에 나가지않고 집에서 엄마 치마자락만 붙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은 사내답게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해오는 호탕한 성격의 에서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그는 "장자 그런거 없으면 어때"라고 생각하며 배고프니까 동생 야곱에게 팥죽한그릇과 장자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 요즘 보면 직장에서 이런 성격은 대단한 인기입니다. 호탕한 남자라고 대단한 인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넉넉하고 융통성 있는 대신 고지식하고 엄마 옆에만 늘 붙어있는 야곱을 택해서 이스라엘의 조상을 삼으시고 에서는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삼으셨던 사울은 처음에는 대단히 고지식하고 순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가서 암나귀를 찾아오라 했더니 며칠밤을 꼬박 새면서 에브라임 땅까지 가서 그 나귀를 찾으려고 했던, 부모의 말이라면 꼬박 죽는 순박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어쩐 일인지 점점 융통성이 생겨 버렸습니다. 융통성이 생겨서 길갈에서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을때 빨리 전쟁에 나가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전쟁에 앞서 예배를 드리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는데, 길이 멀어서 그랬는지 자꾸 지체가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다급한 사울은 이렇게 위급시에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된다고 판단하고 그가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위시키려고 작정하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아말렉과 싸워 이겼을때 사람과 짐승을 다 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수만마리는 다 진멸시켰는데 그 중에서 너무 좋은 몇마리는 살려두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내가 너를 버렸노라." 이것은 너무나도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다윗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울왕의 후계자 다윗은 사내 대장부였습니다. 골리앗장군과 싸우는 대장부였지만, 다윗은 철저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귀신들려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몇년간을 눈물흘리며 도망다니면서 몇번 사울왕을 죽일수 있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다윗은 no. 신하들이 사울왕을 죽여 버리자고 할 때에도 한마디로 no.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사람이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하들은 이 다윗을 보면서 너무나도 융통성없는 사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언젠가 아둘람굴에서 사울왕이 자기를 추격하다가 피곤해서 잠들었을때 다윗이 그 굴에 몰래 들어가서 사울왕의 옷자락을 조금 잘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은 이것 때문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은 사울왕의 내가 옷자락을 베었는데 이것도 잘못했다고 통회하면서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자복한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눈으로 보면 이런 사람이 너무 소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더 큰일을 해버리고도 눈하나 깜짝 안합니다. "이정도는 돼. 하나님이 다 이해해 주셔."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까짓것쯤이야 하면 좀 어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다 버림을 받았습니다.

나이 이십 육세에 유다왕이 된 웃시야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많은 성들을 점령하여 복종시키고 암몬과 아라비아까지 제압하여 그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이름을 떨쳤던 이스라엘의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처음에 이렇게 잘되면 나중에 나사가 풀려 버립니다.

우리도 어렸을때는 얼마나 철저했습니까? 조금만 거짓말을 하면 가슴이 호독거려서 밤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거짓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양심이 이렇게 화인맞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웃시야도 나중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거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분향하게 되어 있는 법을 깨고 왕인 웃시야가 분양을 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그자리에서 문둥병이 발해서 별궁에서 평생 숨어지내다가 죽었습니다.

솔로몬왕을 한번 살펴볼까요? 솔로몬은 처음에 그가 왕이 되었을때는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입니다. 어떻게보면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왕이 드린 일천번제. 번제라는 것은 송아지를 잡아다가 그 위에 놓고 각을 떠서 불태워 끝까지 재가 남도록 불태워야 번제 예배 한번이 됩니다.

그러나, 천번을 계속해서 연속 드리려면 송아지를 다 불태우는데 한시간이 걸린다해도 하루에 스물네번이상 못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지...아마도 한달 이상을 계속해서 쉬지않고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이 얼마나 지겨웠을까요? 그 신하들은 아마도 왕이 너무 고지식하다고 불평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고지식하게 하나님앞에 천번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일년 삼백 육십 오일중에서 오십이주 다 주일성수 해야 한다는 사람은 사실 따돌림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솔로몬왕이 처음에 그렇게 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음성으로 들려주셨습니다. "솔로몬아. 솔로몬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나님이 기뻐서 어쩔줄 몰라 하시는 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도 인간인지라, 나중에 부귀 영화로 극치에 달하자 나사가 풀려버렸습니다. 철저하고 고지식하던 이 사람의 신앙에 나사가 풀려서 나중에 아내가 칠백명이 되고, 이방사람들과 교역을 하다보니 이방에서도 우상숭배하는 아내를 얻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궁전 전체가 우상 숭배하는 소굴이 되어 버렸어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솔로몬의 죄때문에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둘로 쪼개버리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철저하게 끝까지 고지식하게 나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반면에 성경에 고집스러운 믿음때문에 축복받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요셉의 경우 보십시다. 히브리 소년으로서 애굽에 끌려가서 십삼년동안 고생 고생하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잘보고, 하룻밤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철저했어요. 요즘 같으면 총각으로 외롭기도 한데, 동침 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철저했습니다. 아주 철저했습니다. 그는 주인 아내의 요구를 뿌리치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축복해 주시고 그런 은혜를 주셨지 않습니까?

구약에 나오는 다니엘이라는 청년을 한번 보십시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이 두랍평지에 황금우상을 세우고 그곳에 절하고, 또 누구든지 누부갓네살외에 다른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다 사자굴에 집어넣어 버리겠다라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법령이 공포되었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이 자신의 생각으로 융통성을 발휘하여 잠시 기도를 쉬었다면 오늘의 다니엘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너무나도 고지식해서 그 법령이 공포되었는데도 전에처럼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번씩 꼬박꼬박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주위에서 보면 저러다가 사자굴에 들어가는데 좀 신앙에 융통성을 가지라고 충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만큼은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자굴에 집어넣었는데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사자 입을 막아버리고 발이 떨어지지 않게해서 사자가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메세지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앞에 복받고 섬기려면 우리도 이렇게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철저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 축복해 주시고 대충 내 생각대로 신앙생활 한 사람들 , 편의주의대로 자기의 주장대로 자기의 방식대로 신앙생활 한 사람들. 웃시야 왕도 그랬고 솔로몬왕도 그랬고 에서도 그랬고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한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는것이므로 곧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내가 곧 하나님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절대 타자를 섬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를 주장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와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서 행하며 살아야 하는데 중간에서 내 생각으로 살짝 바꿔버리며 하는 신앙생활은 정확히 말해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은 내 뜻을 버리고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를 쳐서 복종시키려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을 어쩔수 없이 빠지는 경우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정이 생기면 빠져도 돼" 이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어쩔수 없이 빠졌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여전히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나님되어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 문제에 해답이 나올 것 입니다. 예레미야 35장 2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 하나님이 먹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공동번역에는 "너는 레갑인이 있는곳에 가서 말하여 보아라. 야외에 성전 어느 방에 포도주를 마련해 두고 그들을 데려다가 마시게 하여 보아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레갑자손이 무어라고 합니까? 6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회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그런데 좀 의심나는 게 있지 않습니까? 포도주 안마시는 것은 좀 이해가 가는데 농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파종도 하지 말고 집도 짓지 말고 평생 장막에, 천막에 거주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조금 앞으로 내려가봅시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왜 이런 명령을 했는가? 열왕기하를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십장 십오절. "예후가 거기서 떠나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맞으러 오는 것을 만난지라 그 안부를 묻고 가로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이 진실하냐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가로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자"

예후라는 사람과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손을 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는 시대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너무나도 우상숭배하고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께서 후계자로 예후를 들어 왕이 되게 하면서 이제 아합의 집안을 쓸어버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들인 레갑의 자손들을 만나서 손잡자고 해서 함께 바알과 우상들을 몰아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방법을 한번 보십시다. 18절.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치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오게 하라 무릇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리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궤계를 씀이라"

23절부터 예후와 여호나답이 꾀를 내어 바알신을 섬기는 자들을 다 몰아 죽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요나답과 예후가 합력해서 한 마음이 되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28절, 29절 마지막으로 보십시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예후가 다 멸절시킨 것이 아니라 좀 남겨두었습니다. 나중에 자기도 우상숭배자가 되어버립니다. 바알신을 다시 끄집어 들이고 아세다로신들,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은 바로 농사의 신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추수하거나 파종하기전에 모여서 술을 먹고 춤추면서 흥겹게 노래부르며 아세다로 여신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같이 춤을 추며 즐깁니다.

요나답이 이것을 보고 처음에는 예후와 손잡고 성결운동을 하였지만, 예후가 삼천포로 빠져버리자 예후와 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농사지을때마다 술먹고 음란하게 춤추고 잔치를 벌리고 하자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절대로 포도주도 마지시 말며, 또한 농사짓지 말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못짓게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후손들이 요나답의 이 놀라운 신앙의 명령을 잘 지금까지 받아서 경건하게 이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자기들을 지켜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는 가운데 이스라엘 족속이 아닌 겐 족속 레갑족속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칭찬해 주면서 뭐라고 하십니까?

예레미야 35장입니다.14절."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으로 명령이 내려온것이 레갑의 후손들에게 실행되도다."

16절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그들에게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8절.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레갑의 자손들은 그래서 농사도 못짓습니다. 목축을 하며 살았는데 아마 가난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려면 세상의 모든 것과 같이 똑같이 보조를 안 맞추고는 직장생활하기 힘이 듭니다. 신앙을 지키려면 때론 직장에서 이런 어려움도 감수를 해야만 신앙의 절개를 지킬수가 있습니다.

술자리에 좀 빠져야 되는데 그러면 괜히 따돌림 받아서 승진하는데도 지장을 초래합니다. 물건을 팔라면 영업하면서 같이 술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여기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나님도 이해하실거야. 우리 먹고 살아야 되지 뭐.'라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레갑자손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할지언정 정결하게 살았스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서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지금 상황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포위해서 바벨론에게 이스라엘이 곧 멸망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 레갑자손을 책임지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앞에 이런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 우리 하나님께서 안 지켜 주실까요? 성경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우리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하늘 쳐다보며 회개하며 기도하면 능력과 은사를 우리에게 부어주신다고 했는데 왜 내게 잘 안나타 날까요? 그것은 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그런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하는 기적의 은사. 기적의 역사 그것은 옛날 2000년전에 그때 시절에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신신학자들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92년도에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하용조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온누리교회에서 저녁 집회 삼일간 회개하며 "성령은사받자. 기적이 일어나자" 하는 모토로 3일간 그 교회 교인들이 회개집회를 가진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 강사는 그 교회 자기 교회 목사 하용조 목사.

첫째날이 지나고 둘째날이 지나고 그렇게 회개하며 통회하며 자복합니다. 마지막 셋째날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버렸습니다. 평생 앉은뱅이로 휠체어 타고 나온 사람이 합심해서 마지막날 회개하여 하나님의 능력받자고 온 이천여명의 성도가 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중에 그 자리에서 평생 걸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걸어나와 버렸습니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 교단이 깜짝 놀래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의 그 역사를 일으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우리 한국 교회가 알아버렸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자복하면서 부르짖으면 왜 하나님이 안 부어주십니까? 다 우리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철저하게 하나님말씀 지키지 아니하고 내 마음대로 내 몸을 굴리면서 적당히 살다가 하나님앞에 나와서 신앙생활하고 하나님께 능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령을 더러운 생활하는 우리에게 부어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레갑족속의 이 말씀을 보셨습니까? 우리도 세상 살아가며 여기서만 이렇게 다짐하고 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회사에 가서 똑같이 대충 대충 살아가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좀더 회개생활하고 좀더 철저하게 레갑족속처럼 살아서 레갑족속을 영원히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놀라운 역사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이 영광을 우리 모두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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