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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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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나는 집사님이신 부모 밑에 태어나 자랐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개인적으로 확신하게 된 것은 중 1 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름날 밤 집 앞 벤치에 혼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하늘의 별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하늘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내 마음에서부터 "정말 하나님께서는 계시는 구나..."하는 확신이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떻게 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이 아름답고 광대한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오묘하게 운행될 수 있는가? 분명히 천지를 창조하신 신 즉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신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가장 큰 철학적 주제로 삼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신은 존재하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생각은 자유이고 착각도 자유이니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학생들을 위한 수련회 장소로 부산 바로 옆에 있는 김해에 있는 무척산 기도원으로 종종 갔다. 무척산 기도원은 이름과 같이 무척 높다. 학생들이 정말 힘겹게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그리고 내려오면서 학생들은 서로를 끌어 주고 밀어 준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나는 기도원에 가면 꼭 기도 굴이 있는 곳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간다. 기도 굴을 보여 주고 그 다음에 큰 바위 위에서 산밑을 내려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을 느끼느냐고 묻는다.
내가 의도하는 목적은 인간의 연약함이다.
산밑으로 보이는 큰 건물들조차도 아주 작은 성냥갑처럼 보인다. 아예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신이 있니, 없니"라고 논하고 서로간에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지만 이 크지 않은 산에 올라도 보기조차 힘든 작은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시 8:3)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또 백과 사전을 찾아보았다.
제일 가까운 별은 센타우루스자리의 프록시마(Proxima)로, 4.3광년(빛은 진공 속에서 1초 동안에 약 30만km를 진행하므로, 1년간에 도달하는 거리는 약 9.46×1012km이며, 이 거리를 1광년이라 한다.) 거리에 있는 별이다. 이 거리는 태양과 명왕성 사이의 거리의 약 1만 배, 태양과 지구 사이의 약 40만 배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측정할 수 있는 항성의 개수는 매우 적고, 대다수의 별들은 지구궤도를 기준으로 해서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있으므로, 이들은 가까운 거리의 별의 통계를 바탕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The Galaxy)는 약 1000억 개의 항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은하계는 약 1만 6000광년의 지름을 갖는 구형의 은하중심부와 그 주위에 9만 8000광년의 지름과 3광년의 두께를 갖는 평평한 원판(disk)이 존재한다. 이를 은하면이라 하며 태양은 이 은하면에 위치하고 은하중심에서 약 3만 3000광년의 거리에 있다. 그 이외 부분은 지름 16만 광년의 타원체로 된 은하무리(galactic halo)가 있어 은하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에는 사람이 추측하기에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와 같은 은하계가 또 50억 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인간이 추측한 것만 그러하지 그 이상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 할 수 없는 우주 속에 있는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크기로 말하면 우리가 미생물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인생이 하나님을 "계시느냐? 없느냐?" 티격거리는 자체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가소로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논하기 전에 어떻게 이렇게 미미한 존재를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며 생각하시며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에(시8편 참조) 놀라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격하고 찬송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본다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분노하실 수 있는가?"하고 묻기보다는 "사랑의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어떻게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가?"하고 질문해야 한다.

-맥스 루카도/은혜를 만끽하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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