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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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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이 말씀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기에 앞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다음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줄 압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나 이방 종교인들의 관심사야 물론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 대부분 역시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마태복음 6장 31절과 32절과 34절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물론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나라란 천국을 말하기도 하고, 주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의란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선이란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택자들을 예정, 구원하시는 궁극목적 자체가 선이요, 그 궁극목적이 당신의 택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입니다.

이 하나님의 궁극적 선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 계획하신대로 당신의 택자들을 구원해 이 택자들이 하나님께서 누리고 다스리시는 행복의 극치인 신령한 천국을 하나님 당신이 누리며 다스리며 쾌락하는 그 차원으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바로 이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며, 이 선의 목적을 위해 구하고, 이런 선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되면 앞에서 말한 안 믿는 사람이나 이방 종교인들이 구하고 목적하고 소원하고 추구하고 지향하는 세상과 세상 것에 대한 염려나 근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세상적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풍부히 주신다는 식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식의 해석은 얼핏 보면 타당성이 있는 말 같으나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 보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됩니다. 

즉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을 하니까 꼭 믿음 있는 말 같으나 그 뒤에 토를 다는 게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을 풍부히 주신다’고 하니 이 말을 돌려 생각하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목적은 결국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함정에 빠져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한 마디로 세상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건 안 주시건 어떤 환경이나 여건에 처해지더라도 하나님의 궁극적 선을 위한 삶을 사는데 전 인격을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을 바로 갖고 성장하는 게 세상적인 것이 풍부해야 만이 가능한 것입니까? 

믿음이란 인격적인 것인데 그 인격적인 것이 물질로 인해 좌지우지 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만일 그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는 사람일 것이며, 그 동안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살아온 그 모든 믿음이라고 하는 것들이 물질적 위주의 신앙을 해 온 것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지금까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의 범주에 들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가 있습니까?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적인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오로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세상적인 것도 풍부히 주신다고 믿는 사람과 어느 믿음이 더 순수하고, 더 영적이며,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준다’고 할 때의 ‘이 모든 것’을 왜 꼭 인간 내가 바라고 원하고 소원 목적하는 세상적인 것을 주신다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까?  ‘이 모든 것’ 이라는 게 인간 나 보기에 좋은 것만이 ‘이 좋은 것’ 입니까? 

‘이 모든 것’ 이라는 속에는 나 보기에 싫고 원치 않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식의 해석이 누구의 해석입니까?

어떤 사건과 환경과 처지이건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달아 그 뜻을 따라 산다면 그 어떤 어려운 환경이건 좋은 환경이건 그 상황을 통해서 주님의 성품을 닮게 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곧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산 결과는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산 셈이 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삶을 산 사람은 산 양 만큼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것이며, 주님의 성품을 닮은 양 만큼 천국을 주님과 함께 누리고 다스릴 수가 있는 영능의 실력자가 되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영원 전서부터 예비하신 모든 것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궁극교회 홈페이지: http://any.to/gugg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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