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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이웃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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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1113151403_01.jpg (File Size: 67.0KB/Download: 0)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


 예수님께서 ‘참된 이웃’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한 율법사하고 바꾼 것을 알아보고 은혜를 받으십시다. 율법사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써 대단히 율법 중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자가 많은 군중과 함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예수그리스도를 낭패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보고 “무엇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켜라. 그러면 천국에 갈 것이라.” 율법은 무엇인지 그 사람 잘 아는 사람인데 그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는 무엇이라 했느냐?” 도로 질문을 하니까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을 하라.” 하니까 “나는 벌써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에 예수님께서 이웃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데 아주 놀랍습니다. 저는 언제나 성경 이쯤에 와서 예수님께서 대답을 주시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여러번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그렇게 합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이웃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갑니다. 여리고에 내려가면 위험한 일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면 여리고 평지에는 곡식이 잘 되어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그것을 어디서 소비하느냐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소비합니다. 그 여러 가지 상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팔고 돈주머니를 가지고 여리고로 내려오다 잡혀서 돈도 빼앗기고 생명도 잃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물건을 팔아서 돈을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몸에 지니고 여리고로 내려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잡혀서 돈 다 뺏기고 실컷 얻어맞아서 죽게 되어서 있는데 마침 그리로 율법사가 지나가다 혀를 “쯧쯧쯧쯧쯧”혀를 차고 “조심해서 가지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고 그러고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 살릴 생각은 안하고 율법으로 꼬집어서 이 사람을 욕을 하고 걸어갔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회생활에도 율법주의자는 도와줄 이웃이 없습니다. 심판하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 사람이라도 율법주의자가 있으면 판단합니다. 그리고 심판합니다. 율법주의자가 있으면 이해할 이유 없이 서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려면 죄악 짓는 것을 완전히 거치려고 애를 써도 다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하여 기도하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변화를 가져오면서 살아야지 비난하고 비평하고 손가락질만 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날 우리 사람들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사람을 비평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율법사가 이 매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혀를 차고 그냥 지나가고 그 다음엔 율법주의자를 도와주는 사람 누구지요? 레위인입니다. 눈이 어두워서 빨리 성경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젊으니 레위인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레위인은 율법사를 도와서 율법주의자가 율법을 행하는데 뒤를 따라 제사의식을 도우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는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거룩한 사람이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 곁에 와서 보고는 고개를 설레 흔들고 ‘저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는 성전에 율법을 도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만 하면 됐지, 저건 내가 할 일, 저 사람을 도와주는 건 나의 일이 아니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죽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인이 이리저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다가 이 상황을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개라고 합니다. 자기들 무리 속에 받아들여 주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마리아인을 아주 비천한 사람으로 보느냐면 사마리아 사람들을 완전한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랜 생활 동안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이란이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살다가 그 후손들이 들어와서 유대인으로 조상이 있는 땅에 살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은 배반자요 배신자고 외국인들하고 섞여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마리아인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유대인이다 사마리아인이다 따질 리가 없이 살려놓고 봐야 되기 때문에 그는 당장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포도주와 기름을 가지고 기름으로 상처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포도주는 부어서 아픈 데를 방부제로 포도주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기 옷을 찢어가지고서 붕대를 만들어가지고 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말에 실어서 다운타운 예루살렘 지역에 다운타운에 가서 의사를 만나가지고서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이 자리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지만 나는 해야 될 사업이 있으니까 그 사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로 다시 이 집을 들러서 갈 테니까 이 환자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두 달란트의 돈을 주어서 “돈이 더 들면 제가 올 때 다 갚을 터이니까 이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의 얼굴을 보고 “자, 이 중에서 제사장이 이웃입니까? 레위인이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이 이웃입니까?” 여러분 생각에 누가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이 이웃이지요. 잘못 된 것만 본 것이 아니라 이웃이란 서로 도와주는 것이 이웃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참 이웃이냐?” 예수님이 물으시니까 그 율법사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그와 같이 하라. 그러면 영원히 산다.” 몇 마디 말로 예수님이 대답을 정확하게 해드렸습니다. 오늘 날 율법으로 우리 규율에 의존해서 옆의 사람을 비난하고 욕보이는 일을 쉽게 하지, 돌봐주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의식과 형식을 하지만 고통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계속해서 베풀지 않습니다. 참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이웃을 도와주는 그것이 참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손가락질 하면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한 사람도 죄를 짓지 않고 의만 행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다 죄를 지어서 아담의 후손으로 죽음을 결정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내놓고는 참 이웃이 어디가도 없습니다. 비평하라면 다 비평 잘 하지, 비평을 막아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찾기가 힘듭니다. 이게 우리가 간접적으로 보면 이 피투성이가 되고 도적맞아 죽게 된 사람 누구냐? 여러분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 것입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살다가 도적을 만나 있는 것 다 뺏기고 얻어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 이 사람이 우리 인생들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웃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살리려고 하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서로 변명을 하고 서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 누구시냐? 여러분 참된 이웃은 누구십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있는 분이 오늘 여러분의 이웃이요. 불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참이웃으로 의지하려고 하면 예수님이 참이웃인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제공하고 도와주는 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도와주는 이웃이 참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낭패를 당해서 고통과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찾아와서 귀에 입을 대고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고통하지 말고 내가 걸머진 십자가를 생각하라. 십자가는 예수님이 짊어진 이웃의 짐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도적질 당하고 도적질 하고 모든 죄 덩어리인 사람들을 대신 짊어져 주고 변화를 받도록 해주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할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변명해 주시고 죄를 짊어져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비용을 다 지불해 주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도움을 주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우리가 빈 손들고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은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고 대신 고통 받아 주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만들어주는 그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지 비평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손가락질 하고 언제나 이웃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고통을 갖다 줍니다. 사망의 고통을 당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보면 살리려고 하시고 참된 인간이 되게 하시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은 여러분은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란 우리를 비평하는 것이 참된 이웃이 아닙니다. 참된 이웃은 대신 일해 주는 것이 참된 이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설교를 듣고 계시는 저에게는 여러분이 참된 이웃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 짐을 나누어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수고했다. 잘 한다. 그렇게 살아라.”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이 온갖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라도 예수님께 찾아가면 천부여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그 모습 그대로 회개하면 주님께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 절대로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 손 들고 주께 회개하고 나오면 주님이 구원하시고 그런 사람 천당에 반드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이웃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강도를 만나서 모든 선한 행실을 빼앗기고 비난받고 공격하고 말이 아닙니다. 요사이 교회가 사회에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눈을 뜨고 볼 수가 업습니다. 교인들 앞에 교인들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보다 못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용서해야 되고 이웃을 도와줘야 되고 나누어야 되고 함께 잘 살아야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이때에 비난에 공격하지 말고 서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면서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 때려잡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 붙잡아 살리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사회를 욕하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것, 짐을 대신 져주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훌륭한 교회가 되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말씀을 들어봐야 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도와주리라.” 짐이 있으면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여러분 예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두 사람, 세 사람 연합해서 나오면 주님이 그 두 세 사람의 연합기도를 주의 깊게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예수님은 필요한 것을 도와줄 뿐 아니라 이미 대신으로 다 이루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저를 도와주시는 이 일을 다 이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변명하지 말고 예수님께 가서 주님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면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 앞에 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처음 말을 잘하는 기도를 해야 될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한 가지 목적을 두었으면 그것을 계속 계속해도 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마음에 고통이 오면 “주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같이 해주십시오.” 한 가지 줄기를 부여잡고는 계속 그것을 첫 주장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할 줄 모르겠는데 기도 할 줄 알고 모르고가 아닙니다. 일단 여러분이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 도움을 주실 것을 계속해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이 우리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야 돼요. 할 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요. 그다음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활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희망을 갖고 절망을 내어 던져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고통당한 사람에게 가서 희망을 나누고 격려해주는 것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어야 되지요.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첫걸음인 것입니다. 꿈을 꿔야 무엇을 얻을 수 있지 꿈도 꾸지 않고 안 된다고 하기만 하면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의 바탕에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서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그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걸 통해서 나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철폐하고 나의 죄를 그 피로 사하시고 그 보혈의 능력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 꿈속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가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떠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 십자가가 은혜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십자가는 여러분을 보시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을 꿀 수 있어요. 십자가를 떠나서는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고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한 것처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리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죽을, 하나님이 뱀을 만들어서 광야에서 놓아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려서 죽어가면서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하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뱀을 만들어서 높이 들으라. 그 뱀을 보고 믿으면 산다.” 모세가 뱀을 만들어서 높이 들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바라보면 산다.”고 하니까 믿음으로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참 꿈이라는 것은 주님이 직접 주시기로 하시고 우리마음에 꿈을 그리게 기도하고 그 꿈을 바라보니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믿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말을 하면 힘이 있습니다. 그 말이. 창조적인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로 인생을 살면서 긍정적이고 꿈을 잃지 말고 꿈을 바라보고 희망을 얻고 희망찬 믿음의 선언을 하면 여러분 생활에 살아갈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서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강도 만나 도적이 하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도적은 우리가 대적해서 내가 물리쳐야 되고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기도하면 그 예수님의 십자가가 근원이 되어서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 믿음으로 입술로 주장하면 없는 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비출 때, 항상 길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말씀할 때 빛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같은, 닮은 인생들이 우리가 꿈을 꾸고 희망을 갖고 믿음으로 선언하면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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