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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7언중 5언 (요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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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이 예수님의 입장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예수님, 심문을 받는 광경, 매를 맞는 광경을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목이 마르는 것을 느끼는 심정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땀을 흘려도 곧 갈증을 느껴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경우를 상상해 볼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누가복음 22장 4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를 해 본 사람이 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22편 14절에 보니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편 69편 21절에 보면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을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라고 기록되어 있어 예수님의 갈증을 이미 다윗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 마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의 갈증은 이미 잡히시기 전부터 목이 마르셨습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목이 마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철야기도, 6차례의 심문을 받으시면서 받으신 정신적인 고통,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면서 흘리신 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일을 보면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육체적 죄악을 속죄하시기 위한 사랑과 속죄의 갈증이였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사망을 초래한 우리들의 육욕주의 생각때문에 그 몸에 여러분을 위하여 사망의 멍에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죄인들이 혈과 육으로 지은 죄를 없애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지 않으면 안되였던 것입니다.
혈과 육으로 지은 죄는 일단 혈과 육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원리인데 우리 인간들 자체의 혈과 육으로는 되지 아니하니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신령한 혈과 육으로만이 해결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2. 두번째로 예수님은 영혼까지도 목이 마르셨습니다.

(1) 죄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육신의 생각으로만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범죄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죄는 영혼몸으로 짓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육으로만 짓거나 영혼만으로 죄를 짓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육은 육이요 영혼은 영혼입니다. 육신의 죄가 있고 영혼의 죄가 있습니다.
인간들이 육으로 지은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또한 인간들의 영혼의 죄로 인한 예수님의 목마름 이 두가지를 다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영혼몸이 죄를 지음으로 예수님은 영혼과 육신 이 두가지 갈증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갈증은 생리적인 갈증이요, 영혼의 갈증은 다른 측면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느끼시는 영혼의 갈증은 여러분들의 사랑의 생수를 요구하시는 갈증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영혼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물 한그릇과 같습니다.

(2)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몸이 그와같이 목이 마르셨을까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길목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가장 외로운 분이 되시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해 봅시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으니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거룩한 사건이 있기 5일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키스라도 하고 포옹이라도 해 줄듯한 사람들이 어느틈엔가 그 사랑의 마음이 변하였는지 미움, 증오의 매서운 추파를 십자가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고 말씀하시던 하늘의 아버지마저 무심한듯 당신 자신을 버리는 것 같은 상황속에 놓여 있었으니 애가 타서 목이 마르지 아니하겠습니까

사랑은 생수와 같습니다.
기쁨은 생수와 같습니다.
생수를 공급 받을려고만 하지말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향해 생수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느끼셨던 괴롭고 쓰디쓴 갈증은 박대하고 멸시하는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운명 하신 후 낙원에서 시원한 생수를 흡족히 오른 편 강도와 함께 마셨을리라고 봅니다. 낙원은 목마름이 없고, 굶주림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들고 있노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목이 마르신 일에 있어서 그 영적의미는 무엇입니까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죄악으로 인해 갈증을 느끼는 죄인들의 입장에서 이해 하시고 구원하시기위한 예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는 바다에 빠진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바다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랑을 빼았기셨으면서도 오히려 사랑하신 아름다움을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사랑을 요구하시면서 사랑을 값없이 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한그릇을 요구하셨듯이 예수님은 인간들을 향해 정성으로 가득찬 생수를 요구하시면서 생수를 무한히 값없이 주실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고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믿는자가 받을 성령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는 설명을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이 십자가 위치에서 각자가 예수님처럼 내가 목마르다 라는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늘 간구하여 구하여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생수는 성령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십자가를 통해 반드시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절대적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통해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는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할 각오를 해야 보혜사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이 마르다고 하셨지만 무정하게도 물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쓰라린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하여 술을 주는 것이고, 또 설상 법으로 사형수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목이 마르면 시원한 생수를 주어야지 술이 왠 말입니까
목이 마를 때 술을 마시면 더욱 더 목이 타오릅니다. 욥기 24장 11절에 보면 목 말라서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고 하여 목마른 자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매달린채로 5섯번의 음료를 받으셨는데 전부 포도주 였습니다. 누구 하난 제대로 물을 떠다 주는 사람도 없었단 말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3절에 보니 첫번째 물대신 술을 받으신 것은 골고다로 향하는 도중에 몰약을 섞은 포도주였습니다.
두번째로는 골고다에 막 도착했을 때 쓸개를 탄 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마27:33),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모두 십자가 위에서 신 포두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주님이 목마르다고 하셨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때문입니다.

5. 목마르다 는 헬라어는 디싸오 인데 이는 애타게 바란다 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영어로도 보면 목마르다는 Thirsty 는 갈망하다, 열망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애타게 바라고 열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과 평화, 그리고 그 나라와 생명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사랑과 평화를 회복시켜 주시고자 주님은 아픔과 고통과 고독을 참으셨습니다.
죽어가시면서 여러분을 살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귀한 희생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생명을 희생하시면서 새로운 생명이 거듭나기를 주님은 기도하십니다.6.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고 말씀하신 것은 여러분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셨다는 증거입니다.

희생의 핏물과 애쓰시고 힘을 쓴 땀방울과 사랑의 눈물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는 희생의 핏물과 누가복음 24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는 능력의 땀방울과 요한복음 11장 35절에 나사로가 죽은 것을 향하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고 하신 사랑의 눈물입니다.

7.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이 마르다 고 하신 것은 자기 고백이며 인성을 나타내신 일입니다.

(1) 자기 고백이란 자기의 신앙상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고 하는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의미는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뜻과 같은 맥락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성질 중의 하나가 고갈성이 있습니다. 죄는 질 수록 갈증이 더하여 갑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나면 또다시 죄를 짓고 싶어하는 악한 마음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목이 마르신 것은 주님의 신앙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상태를 대표로 대언해 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기때문입니다.

(2) 십자가위에서 인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고 하신 것은 인간의 순수성을 나타낸 인성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 보아서 인간인 우리들도 십자가를 질 수 있고 또 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으로 십자가를 지셨다면 우리 인간들은 인간인고로 신의 십자가를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이시기에 부활하셨고 인간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신성 곧 성령으로 부활의 약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들의 못된 죄악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그 인성으로 죽으셨고, 우리 인간들을 못된 죄악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그 신성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왜 예수님이 목이 마르셨는가에 대하여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의 깊고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시고 예수님께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처럼, 벤허처럼 시원한 사랑의 생수를 드리시고 축복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나 진균 설교작성(1991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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