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십자가, 내게 무엇인가? (사 53:1-10, 롬 05:1-11)

첨부 1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이 무엇일까 "십자가"이다. 고난을의미하기도 하고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적십자사도 발족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낱말이 지닌 본래의 뜻이 엄청나게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 뜻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8/공동번역)
바울의 견해에 의하면 십자가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계시한다는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느님의선민"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희랍사람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성서는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한 "인간은 죄인"이라고 규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보게 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5-)

죄인은 자신의 죄를 참회해야 한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세리(누가 18장)처럼 죄인들은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마다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해야 한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누가 7장)처럼 죄인들은 하느님께 봉헌할때마다 눈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느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시 51:17)이다.

하느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참회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그들의 과거를 깨끗케 하시고 하느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합법화하신다.
의롭게 여기신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참회와 용서의 관계를 이룩하게 된다. "만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의롭다 하신 이는 하느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로마 8:31-)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찾고 있는가 과연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며 죄인인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참회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에 뛰어내리는 예수의 환상을 보고 있거나,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2)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이룩하셨습니다"(에베소 2:14-/공동번역)
십자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계시한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평화관계이다. 진화론자들은 인간관계를 경쟁관계로 규정한다. 계몽주의자들은인간관계를 계약관계로 규정한다.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대적행위를 일삼게

된다. 계약관계는 이해관계(이해관계)가 끊어지면 쉽사리 깨어진다.

1980년 후반 이후의 세대를 통해 우리들은 다음 세가지 사실을 배우게된다. 첫째 이념(Ideologie)보다는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어느 이념, 어느 체제 속에서나 극우 보수주의 보다는 개방과 개혁이 월등히 낫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자원(자원)보다는 두뇌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의 경우를 두고 보더라도 자원국들 보다는 교육수준이 높은 일본, 싱가폴, 대만홍콩 그리고 한국등이 더 잘 살고 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대립 보다는 평화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나누어가며 사는 평화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경험이다. 수없이 많은 거리의 십자가를 바라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가정에서 가족들끼리, 교회에서 신도들끼리, 직장사회에서 동료근로자들끼리 서로를 대적자관계로 보고 있는가 계약관계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평화관계로 보고있는가 예수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마태 5:9)라말씀했다. 인간관계를 평화관계로 유지하려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자를 위해 기도하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마태5:44)는 교훈에 충실해야 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계, 노사관계, 기득권자와 빼앗긴 자들의 관계, 남북 통일문제에 있어 진정한 평화는원수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3)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오히려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빌립보 2:6-/공동번역)
십자가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자리,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자리는 십자가이다. 인간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피해 가는 사람들은 인간역사 속에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십자가에서 뛰어내리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다. 물론 인류의 구속자도 아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서 뛰어내리는 예수를 믿고 있다. 십자가는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을 높이 올리신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그리고 만물을 그 앞에굴복시키신다는 사실을 계시하신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죽은 자만이부활하며 만물의 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대신학의 새로운 진리 "남을 위한 존재의 신학"의 기본 정신이다.

문익환(문익환)목사의 옥중서신에는 이런 시귀가 있다.
"나는 죽는다.
나는 이 겨레의 허기진 역사 속에 묻혀야 한다.
두 동강 난 이 땅에 묻히기 전에.
나의 스승은 죽어서 산다고 그러셨지"

문 목사는 오늘도 자칭 의롭다 하는 현대판 바리새인들, 수구주의자들에 의해 민족의 반역자로 단죄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무리들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 겨레의 허기진 역사 속에 묻히기를 원할 뿐이다. 그것이 그의 스승이요 구주이신 예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는 문란을 선동한 자", "자칭 유대인의 왕", "자칭 그리스도"라고 비난하며 비웃으며 정죄하였다. 그때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사두개파 지도자들의 이와 같은 성토와 매도, 중상과 모략이 그릇되었다고, 그렇지 않다고 나선 사람은 한 사람도없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모두,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를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찬양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다"(빌립보 1:21)는 신앙으로 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사셨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지녔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 이상의 존재, 그 이하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어 십자가는 그의 존재요 그의 역사였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 예수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의 범주를 넘어 설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은 그의 십자가 때문이다.7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 16:24-)는 예수의 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희랍인 조르바"로 유명한 카잔차키스는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에서 예수를 만병통치약품으로 팔아 먹는 현대교회를 고발하고 있다.
과연 우리 교회에서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지는 않는가발행일:910915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