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원망하는 삶의 치유 (시 37:1-10)

첨부 1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로마서 1장 28절로 부터 32절 말씀에서 소개하고 있읍니다.
롬1:28-32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
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사 기,악독이 가
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
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
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참으로 거룩하지 못한 모습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모습은 다른말로 영혼이 병이든 상태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혼의 병이 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그대로 있어야만 합니까
그럴수는 없읍니다.
사실 우리의 육신의 병이 들었을 때, 그 병든 몸을 치료하기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합니까
처음에는 약을 쓰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 치료를 받고, 그것도 안되면는 나
중에는 기도원에 가서 안수기도를 받으면서 까지 육신의 병을 치료할려고 애를 씁니
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보다도 더 소중한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합니까
어떠한 노력을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야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육신의 병 못지않게 영혼의 병의 치유를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됩니다.
우리 영혼의 병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여러가지의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납니다.
원망, 불의, 추악, 악의등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마치 암세포가 자라듯이, 우리속에서 자라면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병을 반드시 치료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영혼이 바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원망이라는 영혼의 병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먼저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망에 원인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는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이 원망은, 신자의 거룩한 삶의 모습과는 정 반대인, 불신자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자의 생활 속에나 있는 원망이, 우리같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망이라는 영혼의 병을 치료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원망을치료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범죄와 잘못이 이 불평과 원망을 원인으로해서 우리속에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시작으로 불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우리는 걱정, 근심뿐만 아니라 이 원망도 반드시 치료해야하는 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망의 병을 어떻게 어떠한 방법을 통해 치유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우리 나름대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 103:2-5, 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
게 하시는도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때, 현재 우리에게 다소의 불만이나 불평이 있더라도, 그 모든 불평불만을 이겨낼 수 있는것입니다.
원망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때 저들은 어떠했습니까
저들은 과거에 저들이 받았던 은혜에 대해 망각을 함으로 말미암아, 원망하고, 그로인해
큰 낭패를 당하곤했습니다.
그 대표적인것 한가지만 살펴보면,
원래 사막이라고 하는곳은 먹을것이 없고, 마실것이 없는 그런 삭막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삭막한 장소에서 저들은 40년동안 지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마실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가 저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저들에게 맨 처음 하나님께서 친히 제조하신 만나를 주셨을때 저들은 어떠했습니까 ,
배고픔의 위기에서 처음 만나를 맛보았을 때 ,
그 만나를 맛보던 처음 감격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 맛나를 먹는 저들이 "꿀맛"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 만나의 맛이 좋았으면 꿀맛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 11:8에 보면 만나를 먹고, 또 먹고하니까 이제는 그 맛을 "기름섞은 과자
맛과 같다"고 했습니다.
꿀맛이 기름맛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보면, 민수기 21장 5절에 와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푸념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도다"
꿀맛의 만나가 기름섞은 과자로 변하고, 이제는 박한 식물이 되어버린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원망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셨건만, 우리가 그런 축복의 삶을 계속해서 누리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의 감사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원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중에 사과상자로 만든 집에 사는 분이 계셨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사님이 이사를 하신다는 것었읍니다.
하늘이 보이는 구멍이 숭숭 뚫린 사과상자 지붕에 비닐을 치고, 살던 분이 단칸방이나마
새로운 삭월세 집으로 옮기게 된 것 입니다.
그러다가 몇평되지 않는 스레트 집이지만 소위 진짜 집으로 이사했을때, 그 집사님은 세상이라도 다 얻은 듯이 기뻐하셨읍니다.
그후에 2층 양옥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을때, 그 집사님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같이 이사짐을 날랐읍니다.
참으로 감격의 극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해하던, 그 마음의 상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졌습니
다.
그 집사님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온 것입니다.
단독주택이니까 너무 추운것 같애, 아무래도 아파트가 좋은것 같애,
이제 며느리와 손자들이 생겨서 명절이면 너무 북적거려서 좁은것 같애 ,
이런 푸념을 하는 그 집사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좋은것, 보다 더 나은것을 바라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이런 원망의 병이 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망의 병을 치료하려면, 과거의 우리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감사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것, 이것이 바로 원망을 치유하는
첫번째 치유방법입니다.

2.우리보다 못한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원망하는 삶의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삼중고의 고통속에서도, 기적과 감동의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며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
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 할 수 있다면 , 이런 사흘을 주었으면 좋
겠다.
하루는 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눈먼 채로 살도록 하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로 살고 ,
또 하루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게 한다면,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를
알 것이다 ."
또 헬렌켈러는 < The Story of My Life > "나의 인생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에서
"내가 한 번만 저 무지개를 볼 수가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저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다면 ,
단 한 번만 이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
나에게 이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푸시는 설 리반 선생님을 단 한 번 그
아름다운 미소를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
내가 단 한 번만 아름다운 음을 발하는 저 오케스트라와 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을 내 눈으로 볼 수가 있다면 ,
나에게 이 귀한 설교의 감동을 주었던 필립 목사님의 그 얼굴을 단 한 번만 볼 수가 있다면 ,
그 멧세지가 이렇게 내 삶을 바꾸었던 감동스러웠던 이 성경을 내가 단 한번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
지는 해 석양을 단 한 번만 내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
성도 여러분 !
이 얼마나 안타깝고 간절한 소원입니까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모습의 한 소녀가 자기의 인생을 오히려 감사하면서, 많은 찬양시를 통해 우리들에게 큰 감동과 감격을 준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원망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궁극적인 원망에 대한 치유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배울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을 하셨던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원망하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가장 많이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수 있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땅과는 비교도 되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
얼마나 좋았으면,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이곳이 좋사오니’하면서 초막셋을 짓자고 했겠습니까
바로 그런 좋은곳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셔서 그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가운데서도, 그 많은 고난가운데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요 14:1-3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
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한 청교도가 자기의 삶속에서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졌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가장 좋은것이 오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영광이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가장 좋은 천국의 영광을 생각할찐데, 어떻게 원망의 불신앙이 우
리의 영혼을 괴롭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을, 가장 나중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은 비록 답답하지만, 내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의 찬란한 평화와 그 영광을 바라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의 이 슬픔 저 건너편에 우리를 기다리는, 내일의 기쁨을 바라볼 수 있었야만 합니
다.
오늘의 이 고통스러운 환경 다음에, 나를 만드시고,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이끌어주시는, 내일의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슬픈 무덤 저 건너편에서, 구원받은 나를 영접하시고, 천국에서 거룩한 면류관을 허락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주시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그 안목이 있을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근본적의 원망의 삶이 말
끔하게 치유되어질수 있는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젊은 목사의 원망하는 삶을 치유한 기도문 한가지를 소개
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 서투른 아마츄어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처음들어 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 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내 마음속에 그 구원의 멧세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처럼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 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