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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창 0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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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얼마 후에 또 아벨을 낳았습니다.
이들이 자라서 가인은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먹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였고, 아우 아벨은 양을 길렀습니다. 즉 목축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입는 의복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아들들이 자라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랍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랍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인은 자기를 성찰(省察)하고 뒤돌아보고 회개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되려 마음이 강팍하여져서 ① 분하여 하고 ②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이를 보신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하신 것을 보면 가인이 곧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기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뇨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책망 하시면서도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투쟁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어떠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처 죽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를 70인 역에는 들로 나가자고 꼬셔서 나가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은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말씀은 한마디도 받아 드리지 않고 오히려 아우 아벨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고 그 아우 아벨을 들로 유인하여 돌로 처 죽인 “지존파”였습니다.
8,9절을 보면 저자는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죽였다고 되풀이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살인 중에 가장 무서운 친족 살인입니다. 그러면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살인한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요한 일서 3:12절을 보십시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이 말씀을 볼 때,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아벨에 대한 시기심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도 이 시기심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 준 줄을 알았습니다.(막15:10)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들의 죄악이 드러났을 때,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기보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고,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요8:48,52)
이처럼 시기심은 형제를 죽이고, 메시아를 죽인 가장 큰 죄악입니다. 인류 최초의 죄가 이 시기 죄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기심의 노예가 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요8:44)

②또, 이 시기심 때문에 망한 사람은 구약의 사울 왕입니다.
그는 처음에 겸손하여 행구 뒤에 숨을 만큼 겸손하였습니다. 이렇게 겸손했을 때는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삼상9:21)
그러나 그는 다윗의 등장으로 시기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특히, 블레셋 사람들을 전멸하고 돌아올 때 백성들이 축하의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는 노래 소리를 듣고 사울 왕의 마음에 시기심이 불 일듯이 일어났습니다. 사울 왕은 그 노래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나에게는 천천을 돌리느냐”
이 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실은 사울과 다윗의 사이는 부자 지간이 됩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됩니다. 사위 자식도 자식인데, 시기하여 사위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10년이 넘도록 찾아 다녔습니다. 여기에 특이한 것은 이렇게 시기하기 시작한 때부터 사울은 악령에 시달리게 되었고, 전쟁에는 실패하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삼상31:4)

③요셉의 형들도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창37:4,8,11,18,20,28, 42:21)

④어떤 공사 현장에서 생긴 일인데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아버지보다 아들이 훨씬 더 일을 잘한다고 하며 아들의 기술이 더 훌륭하다고 하니까 그 아버지가 시기하여 높은 데서 아들을 밀어 떨어뜨렸습니다. 마침 5층 난간에 걸려서 받침대를 손으로 잡고 누가 나를 떠밀었나 쳐다보니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버지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밀은 것을 알고 손을 슬며시 놓고 그대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시기심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시기는 잠언 14:30절에 그 영혼을 썩게 하는 무서운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기심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시기심이 많기로 세계에서 일 위입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일인데 배가 아픕니다. 또, 교회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하면 좋아해야 할 일인데 배가 아프고 심기(心氣)가 불편합니다. 왜요 이 시기심 때문입니다.

해마다 경험합니다만, 대학에 합격하면 그래도 웃으며 다니는데 떨어지면 방안에 들어앉아서 출입도 하지 않습니다. 시기합니다. 합격한 자의 즐거움에 함께 즐겨 하지 않습니다. 뭐 떨어지는 자도 있어야 합격자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다 합격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시기심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이것이 무서운 죄악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형제를 미워하게 되고 이 미움이 점점 장성하여 살인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이미 살인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시기란-능력이 없는데 사람의 인정이나 받고, 되기를 바라는데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성찰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회개하고 고쳐 가야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인의 죄를 하나님은 어떻게 추궁하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며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하며 찾으신 것 같이 아담이 있는 장소를 몰라 찾는 것이 아니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3:9) 이번에도 살인한 가인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죄를 돌아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재기(再起) 하도록 기회를 주시며 찾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인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가인은 참으로 뻔뻔스럽고 얼마나 오만 불손한지를 모릅니다.
요사이 가인과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은밀하게 죄를 짓고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시치미를 떼고 경건한 체 살아가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형제를 미워하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고도 또 날이 밝으면 거룩한 체 하며 밤새 시기하며 배가 아프고 위경련까지 당했으면서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마음의 죄악을 회개치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큰 죄를 지어 놓고도 한 점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할 만큼 양심에 화인 맞은 자도 있습니다.
아담은 범죄 한 후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몸 둘 바를 모르고 쩔쩔 맸습니다. 또 그 죄를 시인했습니다만(3:10) 가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뻔뻔스럽고 거짓말하며 하나님까지 속이려 듭니다.(롬3:18) 오만 불손하며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10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끝까지 가인이 숨기니까 하나님이 가인의 죄를 들추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살인죄를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죄를 철저히 밝혀 내시고 벌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밭을 갈아도 땅이 수고한 만큼 소출을 내주지 않게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는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를 냈지만 가인이 범죄 했을 때는 땅에서 저주를 받아 땅이 열매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인은 그 땅에서 피하여 유리 방황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살인자는 가족을 데리고 유랑 길에 나셨고 어느 강한 부족을 만나 보호를 요청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와 그 가족의 삶은 노예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내 죄의 벌이 너무 중하다’고 했습니다.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무겁다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가인은 죄에 대한 회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미칠 형벌에 대해서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이 경우는 우리나 가인이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이전 실수를 왕왕 저지르는데 하나님은 먼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솔직히 들어내 놓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이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죽여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범죄하고 회개 없는 영혼은 두렵고 불안하고 참안식이 없습니다.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이런 가인을 하나님은 또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지키고 계시는 것을 만인이 보도록 하시고 또, 가인은 그 표를 볼 때마다 자기 생명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토록 하셨습니다.
가인은 비록 범죄 했고, 하나님께 오만 불손하였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가인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다리십니다.

로마서 2:4,5절을 보십시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하심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는 그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까지 길이 참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범죄 해도 당장 벌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죄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끝가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나 같은 죄인 회개하기까지 길이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남이 잘되면 시기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이가 있습니다. 이 시기 죄는 최초의 죄요, 족보 있는 죄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이것은 별 죄가 아닌 것처럼 가리워 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시기심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시기는 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심은 가장 큰 죄입니다. 시기심이 생기면 형제를 미워합니다. 이 미움이 살인죄로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곁에 있는 형제를 피로 값 주고 하나 하나 다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형제를 내가 시기하고 미워하면 곧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이 시기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한 입으로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같은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니 이것이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이것이 합당치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가인, 살인한 가인까지 사랑하고, 표까지 주셨는데 하나님이 사랑한 인간을 내가 시기하고, 내가 미워하고 살인하면 가인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
이 시기하는 죄를 회개하고 범죄한 가인을 사랑하시고 길이 길이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 돌아갑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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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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