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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전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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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주제는 성경전체속에 흐르는 큰 물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신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은 한 마디로 묘사한다면 사랑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여 우리에게 주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범죄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망에 처하여 있을때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보내주셨다. 또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짊어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숭고하신 사랑때문이었다.

주님께서 이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것도 역시 우리를 사랑하여 새하늘과 새 땅으로 지어 놓으신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함이니 어찌 큰 사랑이 아닌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아가페 의 사랑을 알기 쉽게 고전 13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13장의 내용을 사랑의 필요성 (1-3) 사랑의 성격 (4-7) 사랑의 영원성 (8-13) 으로 나눌수 있다.

지난번에 사랑의 성격 즉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렸는데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 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 니하며 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오늘은 그 다음을 계속하여 살펴보면서 은혜를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 다.

 (1)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 (5)

성냄은 마음속에 잠재해있던 증오가 폭발함을 말함인데, 교만에서 나 오는 것이며, 때로는 패배의 표시로도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성냄은 남 들로 부터 모든 것을 잃으며, 자신에게는 살인독이 된다고 어떤 분이 말 했다.

야고보 선생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 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1:18-19)고 하였다.

성내는 것은 분냄과 진노와는 다르다. 분냄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외식 과 불의에 대해서 몇번 분내심이 기록되어 있다 (성전 청결:요2:12-22)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의 불신과 불의에 대해서 진노하신 일이 구 약에 나타 난다.

우리는 범사에 성내지 않도록 잘 참아야 한다. 사람은 무시를 당하면 성을 잘 내게 마련이다. 이때도 잘 참아 내야 한다.

케리는 인도의 선교사였는데 성경을 일부 혹은 전부를 인도의 34말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때 구둣방에서 일을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인도에서 선교할때 지식층에 속한 사람들이 모인 연회 석상에서 한 사람이 케리에게 무안을 주기위하여 거만한 태도로 "당신은 한 때 구두짓는 직공이었다면서요 " 주위의 사람이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물었다고 한다. 이때 케리는 "각하 구두 짓는 일이 아니라 헌 신을 고치는 일을 했읍니다. " 하고 한층 더 자신을 낮추어 대답을 했다고 한다.

키플링은 "사람들이 성내어 네 잘못이라 공박해도 침착할 수 있음이 장부요 남들이 너를 미워해도 미워함으로 대하지 않음이 남자의 표다 " 고 말 한적이 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며 채찍을 가하는 자들을 향하여서도 성내지 않으시며 잠잠하셨다. 심지어 아무 죄도 없으신 예 수님을 이방집권자 빌라도에게 넘겨 주셔도 성내지 않으셨으며, 십자가 에 못박는 잔악한 로마 군병을 향해서도 성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들을 위하여 하나님게 용서를 빌어시기 까지 하셨다.

우리는 히브리 기자가 우리에게 권한것 같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럼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

고 하셨다. 어떤 참기 어려운 일도 나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님을 바라 보면 어떤 것도 참고 나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잘 참음으로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사랑은 악한것을 생각지 않는다(5하).

 이말의 뜻은 남에게 받은 해를 하나하나 기록해 둔다는 말이다. 왜 기록해 둡니까 원한을 갚을 기회가 오면 갚기 위해서이다. 원한을 품 고 있다가 원수를 갚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옛날 원시 사회에서는 어떤 해를 입게 되면 그 원수의 원한을 잊지 않고 갚기위해 집안에 잘 보이는 곳에다 어떤 표적을 세워 놓고 들며 날며 원수를 갚을 날을 고대하며 칼을 갈았다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평소에는 그렇게 순하게 보이지만 누구든지 자기 에게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면 곡 기억했다가 원수를 갚는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들은 남의 잘 못이나 비행 을 비밀 수첩에다 적어 놓았다가 유사시에 하나님께서도 다 용서하시고 자신도 용서해 준다고 말해 놓고는 그것을 조목 조목 따져서 짓밟아 버 리는 악독한 사람도 있다.

수첩에는 기록해 놓지는 않아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놓고 기회를 기 다리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되 기억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43:25) 고 하셨다.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죄를 기억지 아 니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다.고 한 말씀을 유의해야 한다.

남의 죄를 기억하고 있으면 사실은 나 자신이 손해다. 악한 생각을 품 고 있으면 자신이 악해 지고 독해 져서 심신에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 사람의 인상이 굳어있어 보기가 사납고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마음 이 편치않다. 또 원한을 품고 있다가 갚으면 편안해 질 것 같습니까 당한 상대도 그냥 있지 않게되어 틈을 엿 보게되어 계속적인 앙 갚음이 있게 되어 고통이 떠나지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 하는 것은 인생 철학의 중대한 과제로 생 각된다. 어떤 사람은 악한것 나쁜것은 잘 기억하고 있으나 은혜 받은일 사랑받은 일들은 잘 잊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배은 망덕 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마 18:21-35) 아브라함 링컨은 평소에 "남의 친절은 잊지 않고 남의 잘못은 기억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 가운데 혹시 비밀 장부가 있어 남의 어떤 비행이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이 있으면 오늘 돌아가 다 찢어 버 리십시요 /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록해 놓고 이것만은 용서 할수 없어 / 하는 것이 있습니까 / 마음의 기록을 찢어 버리십시요 . 이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다 도말하고 찢고 불에 태워서 깨 끗한 마음, 사랑이 가득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합시다.

사랑은 악한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3)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게 기뻐한다고 한다.(6)

여기 불의라는 것은 사악,불법 ,불공평,잘못,부정한것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랑은 이러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불 의를 하나님은 기뻐히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니라 그것을 심판하시 는 분이시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하려함이라" (살후2:12) 왜 그렇습니까 불의는 남을 해쳐 가지고 자기자신을 유익케 하려는 행위이므로 죄가되 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게는 불의가 전연 없으시며 "(롬9:1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게 유하지 못하며" (시5:4)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함게 있게하기 위하여 불의를 우리에 게서 없애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 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징벌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 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 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게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 게 담담시키셨도다." (사 53:4-6) 그러므로 우리들은 불의를 기뻐할 수가 없으며 진리와 함게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신자가 불의 버릴때 기쁨이 오고 우리 모두가 불의를 버 릴때 이 사회에 평화가 찾아 오게 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참된 사랑이 실 현되는 것이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참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 예수님을 기뻐하여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요14:6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주님이 좋아하는것 나도 좋아하고 주님이 싫어 하는것 나도 싫 하고 주님이 원하는것 나도 원하는 삶이 곧 진리와 함게 기뻐하는 삶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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