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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전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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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로 부터 받은 여러가지의 은사들이 오히려 문제가 되어 교회가 무질서하 다는 소식을 듣고 12장 13장 14장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지난 몇주동안 살펴 본 바와 같이 12장에서는 은사의 여러 종 류와 그 은사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 신 것으로 서로 귀하게 여기고 존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서로 섬겨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특히 은사중에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의 은사임을 13장 전장에서 말씀하 고, 14:1-25 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는 방언과 예 언의 은사에 대해서 서로 비교하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은 방언과 예언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바울은 1절에서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 하 려고 하라" 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의 뜻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베풀 기 위하여 은사를 사모하되(탐내라는 뜻) 특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 한다.

여기 예언이란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감에 의 해 복음을 말하여 혹은 권하고 혹은 위로하여 덕을 높이는 것으로 전도 하는 것이나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의 신학자 미전풍씨가 말하 고 있다.

예언이란 장래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을 선 언하는 것이다. 오히려 전도란 말이 그 뜻에 더 잘 맞는다고 바클레 목 사도 말했다.

예언이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기 쉽게 말하 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중에 최고의 것은 전도하여 예수믿어 구원얻게 하는 일이다. 이 이상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 을 하려고 사모하라고 했다. 즉 탐내라고 권하고 있다.

바울은 그당시 고린도교회가 귀중하게 여겼던 방언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방언을 하는 자들은 그 특권을 자랑하여 교만해 지기 쉬우며 2, 방언을 못하는 사람들은 시기하기 쉬우며 3, 방언 때문에 공중예배에 혼란을 가져오며 4, 방언은 침착한 신자들을 성가시게 만들며 5, 불신자들은 와서 보고 미쳤다고 할 것이며 6, 통역하지 않을 경우에는 모인 회중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일만마디 방언보다는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마디의 예언을 하고 싶다고 19절에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수 있는 지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보다 한층 더 높은 영으로 하는 것이므로 방언을 하는 자신도 통역의 은사를 받지 아니하면 그 말을 이해치 못한 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언은 무용지물이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방언도 하나 님이 주신 은사임으로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듣는 사람에게는 그 말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 유익이 없으나 방언을 하는 자신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으로 쓰이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과 동시 에 개인적으로 기도하는데 끼어 기도하게하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바울 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한다고 5절에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하여 모든 사람은 방언을 받아야 된다느니, 방 언은 구원받은 표나 되는 것 처럼 생각하여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구원 조차도 못 받은자로 낙인을 찍는다거나,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덜 신령 한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 그렇습니까 12절 28절까지 각종 은사를 말한 다음 29절에 보면 "다 사도겠느냐,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 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 겠느냐," 고 말하심으로 성령께서 각자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은사를 나눠 주십니 다 방언을 말하도록 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못한다고 해서 나는 은혜를 못 받은 것이 아닌가 나는 구원을 못 받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의 자녀중에 받을 사람도 있고 못 받을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1절을 다시 한번 다 같이 읽어 봅시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열심으로 탐내어야 할 은사는 방언이 아니라 예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의 은사를 구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도는 신자이면 누구나 다 해야 할 신성한 사명이요,의무이다.

왜 우리가 이 예언의 은사를 탐내어야 할 것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살 펴 보고자 한다.

 (1) 예언은 덕을 세우기 때문이다.(3)

3절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 위하는 것이요" 방언은 하나님을 상대하여 황홀경에 빠져 자신이 즐기는 것이나, 예언 은 사람을 상대하여 전파하며 가르치므로 복음을 듣는자에게 덕을 세우 게 된다.

덕을 세운다는 말씀은 (OIKO-DOMEIN) 집을 세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신자의 지혜와 경건과 거룩과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될 수가 없다.

 (2)예언은 권면을 해 주는 유익이 있다.(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권면해 준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 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나 실수나 잘 못된 일들에 대해서 깨닫게 하여 죄를 회개하고 버리도록 권하는 역활을 하게 된다.

역사가들은 청교도시대에 영국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여왕때 만큼 도덕적인 변화가 컸던 때는 없었다. 영 국 국민은 한 책의 국민이라 볼 수 있는데 그 책이 곧 성경이다. 저희들 은 성경을 집에서 읽고 교회에서 읽었으며 이 말씀이 귀에 들어 갔을때 어디서든지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국민의 성격이 변화하여졌다.

새로운 생활 철학과 인생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새로운 도덕적 자극이 각 계 각층에서 일어났다. 과연 영국사람이 문화민족이 되기까지는 성경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3) 안위하다고 말씀하고 있다(3).

 안위란 말은 paramudia 곁에서 하는 말이란 뜻이다. 슬픔이나 걱정 그리고 절망적인 일을 만난 자를 위로해 주어 기쁨과 용기를 얻게해 주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성경만큼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은 없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은 모든 사람으로 부터 죽어야만 된 다는 절망감 밖에 다른 것은 안겨 주지를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살려 주시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는 다시 범죄하지 말 라고 하시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다.

나인성에 사는 한 과부에게 유일한 소망인 외아들 청년이 죽어 상여에 메여 공동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과부는 유일한 소망인 아 들을 묻으려 가면서 얼마나 탄식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겠느냐 하는 것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줄 안다.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 관에 손을 대시니 머물러 섰다. 이때 예수님께 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실때 죽은 청년이 일어나 앉 아 말도 하므로 그 어머니에게 주셨다는 가사가 눅 7:11이하에 나온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해 줍니까 예수님께는 가장 절망적인 죽음까지도 소망의 주님이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참된 위로는 하나님 의 말씀에 있다.

바울과 함게 로마로 가는 죄수들이 탄 배에 큰 태풍이 몰아쳤다. 그들 은 살 소망이 다 끊어 졌다. 배에 있는 모든 기구와 상품들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렸다. 여러날 동안 태풍이 계속되므로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여러분들이여 내 말를 듣고 그런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 심하라 너희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 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곁에 서서 말하되 바 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 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안심 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 그리하여 그들은 음식을 먹게 되었고 소망을 가지고 행선하는 중에 멜리 데라는 섬에 상륙하여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망과 절망중에 있는 우리에게 유일한 위안과 소망 을 주어 용기와 기쁨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방언보다 예언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24절-25절에서 예언의 유익에 대하여 몇 가지를 더 첨부하고 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 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 에 숨은 일이 들어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너 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왜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탐내어야 할 지를 몇 가지 더 설명해 주고 있다.

 (4) 예언은 듣는 자들이 책망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양심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도 하시지만 인간의 양심은 죄의 오 염으로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언 즉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모든 죄가 모두 다 들어 나자 그는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깨닫고 무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에 들어가 외치기를 "나의 행한 일을 내게 말한 이를 와 보라 "증거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였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서나 설교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멸망받을 죄인 임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구주 나의하나님으로 모시는 자가 소망이 있고 말씀을 바로 받는 자이다.

이렇게 예언이 중요한 것이다.

 (5) 예언을 들을때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듣기 전에는 우리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그날 그날의 충동과 쾌락을 위해 살며 삶의 목적이나 종말을 생각지 않고 살아 왔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므로 나 자신의 소행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할 하나 의 심판대가 있음을 깨닫게 되어 모든 일에 판단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 이다. 그러므로 예언이 남에게 덕을 세우는 놀라운 은사이다.

 (6) 마음에 숨은 일이 들어나며 라고 한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 벗은 것 같이 들 나느니라. " 말씀을 들을때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죄를 깨닫게 한다. 어떤 죄 를 지었을 경우 어느 성경의 말씀을 들어도 혹은 어느 성경을 읽어도 자 신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며 생각나게 하신다.

이것이 말씀이 하는 첫째 역활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죄를 깨닫고 구원 얻는 것은 오직 예언 즉 말씀으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책만 보아도 죄를 깨달았 을 것이다.

헤라의 알씨비아데스가 소크라라테스에게 "나는 너를 미워한다. 그 이 유는 내가 너를 만날때 마다 너는 나의 죄를 보게하기 때문이다. "

(7) 예언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하나님께 경배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분을 바 로 알게 될때 우리는 그 분뉼에서 무릅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나님앞에 무릅을 꿇 게한다. 하나님앞으로 나가는 문은 낮아서 무릅을 꿇지 않고는 들어 갈 수가 없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나 자신을 바로 아는 자는 무릅을 꿇고 "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하지 아니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할때

1, 덕을 세우며 2, 권면하며, 3, 안위하며 4, 책망을 받게되며 5, 판단을 받고 6, 마음에 숨은 일이 들어나며 7,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신자가 된다.

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나는 너희가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이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론 바울은 방언을 금지하거나 무용하고 가치없는 것으로 단정하지는 않았 다. 질서를 지키지 않을때 오히려 어지럽힐 수가 있으니 조심토록 경고 하며 (39-40), 통역이 없을때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므로 하 지 말아야 한다(5-6,23).

교회는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므로 덕 세우는 일에 특별히 유염해야 한다. 모든 은사는 다 남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위한 것이 니 (12,26), 교회의 덕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면 어떤 은사도 사용해서는 안된다.(26-)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고 너희가 모일때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 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 그러므로 지나치게 하지 말고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40),하나 님은 어지럼의 하나님이 아니고 화평의 하나님이시다(33).

우리는 교희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을 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잘 들으며 읽고 묵상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모든 성 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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