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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보는 십자가 (사 53:4-6, 요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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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고난주일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의 고통을 기억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명상하며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 이 고난주간의 의미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 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다시보는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 런데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점차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만을 중요시 하여 십자가 대신에 예수님의 부활그 림을 걸어 놓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활의 중요성을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중요한 만큼 십자가의 죽으심 또한 중요합니다.

십자가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없는 십자가는 또한 의미가 없습 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며 기독교신앙의 핵심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은 다음 주일로 미루고 오늘은 십자가에 대하여만 생각하고자 합 니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 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잃어버린 것은 고사하고 교 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와 전혀 관계없는 신앙의 생활을 하기도 합 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자타가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와 관계없 는 신앙은 무익합니다. 마치 서울가려는 사람이 춘천가는 버스표를 10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서울가는 차표 한 장 없으면 서울을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졌다할지라도 십자가의 신앙이 아니면 하 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는 중에 십자가의 신앙이 여러분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세계에서 제일 높은 십자가는 미국 시카고교회에 세운 십자가입니다. 몇 년전 시카고교회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또한 지나가던 차 들도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관심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높은 십자가위에서 십자가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십자가를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았는데 사람이 올라가니 쳐다보며 관심을 갖 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잃어버리 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하여 무관심함을 말해 줍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십자가가 성도들과 멀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주님이 못박힌 십자가를 다시 바라봅시 다. 십자가를 바라보므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합시 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의 생명은 구원받고, 영적인 신앙이 성장하 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왜 중요합니까 십자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깨닫고자 합니다.

 일.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줍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두 가지 모습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왜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죄지은 사람이 용 서받기 위해서는 짐승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사람의 죄 를 대신하여 짐승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희생제물을 드려서 그 짐승이 불 에 탐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가 불살라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또 구약시대에는 1년에 한 번씩 속죄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속죄일에 제사 장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수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백성들의 죄를 염소 에게 지운 다음 광야로 쫓아 버립니다.염소는 광야에서 맹수의 먹이가 됩니 다. 이로써 백성들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였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종교행위 모습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미리 보여준 것입 예수님의이것을 미리 알았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인간의 역사는 죄로 관철되었습니다.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사망은 곧 인간을 지옥으로 이끈는 멸망입니다. 이 처럼 죄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가게 된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악을 등에 질머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 자가의 희생은 동물이나 사람의 희생과는 다르기 때문에 거룩한 희생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어린양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들의 무 거운 죄악의 짐을 벗겨 주었습니다. 광야에 장대위에 달린 구리뱀을 바라본 자가 죽음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못박힌 주님 의 십자가를 우리가 바라 볼 때에 죽음에서 벗어나 살 수 있습니다.

 이.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피와 살로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지셨을뿐만 아니라 그분의 살과 피를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신 것입니다. 북미 일대에서 사 는 고기 가운데 King Salmon이라는 연어가 있습니다. 연어는 매년 2월을 전 후해서 알을 낳고 분화하게 됩니다. 새끼가 부화하게 되면 어미 연어는 곧 죽어버립니다. 그 이유는 어린새끼가 어미의 살을 먹고자라 나게 하기 위해 서 어미의 한 생명을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어디에선가 어 미 거미의 잔등에 달라붙어서 어미의 살을 파먹고 있는 수십마리의 새끼 거 미를 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미물이지만 새끼를 위한 어미의 지극 한 사랑의 발로로서 거룩한 희생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당하셨습 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써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고, 그분의 살의 찢음을 인하여 우리는 마치 연어가 제 어미의 살을 먹듯이, 거미가 제어미 의 살을 파먹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서 영혼이 살찌고 자라고 사는 것입니다. 벧전2:24"제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 느니라"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최 후의 만찬을 나누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받아 먹 으라 이는 너희를 위한 내 살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잔에 포도주를 잔에 나눠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 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나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 하시기 위해서 살이 찢기셨고, 피를 흘리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서의 죽음이 나와 여러분의 영을 살리셨고, 지금도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보는 사람은 오늘도 그분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고 생 명이 구원받습니다.

 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보자란 중매장이란 말과 같 습니다. 처녀, 총각을 중매하여 연결맺어 주는 중매장이 처럼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매맺으신 분이시기에 중보자라고 합니다. 만약 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는 맺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을 관계 맺어 주셨습니다.

ex: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4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아래 층에서부터 물이 윗층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윗층에는 미쳐 피하지 못 한 여러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4층에 아버지와 세 아들이 살고 있었습 니다. 아들은 아래 층에서 불이 타 올라오자 여러번 탈출을 시도했으나 출 입구가 막혀 있고 불이 워낙 세게 타올라서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 아래 층에서 타올라 오는 불길과 연기로 세 아들은 질식할 것 같았고 기 침을 하며 견뎌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들을 데리고 옆에 있는 건물을 향한 창문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 창문에서 옆집 창까지 는 불과 1m밖에 되지 않았습니ㅏㄷ. 아버지는 아들들을 향하여 건너 뛰라고 재촉했으나 아이들은 건물 아래를 내려다 보고는 그 높이에 질려서 떨고만 서 있는 것입니다. 불은 자꾸만 타올라서 이제는 사층까지 번졌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자기 편의 창문에 발을 걸고 건너편 건물 의 창문을 향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창틀을 붙잡고 몸으로 다 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들아 어 서 내 몸을 타고 건너라 어서!" 아버지의 외침을 들은 아들들은 용기를 내 어 아버지의 몸을 밟고 무사히 옆집으로 옮기게 되었습니ㅏㄷ. 세 아들을 살리고 자신은 결국 희생하였던 것입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예 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다리가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몸을 밟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며 다리 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편의 기자는 일찌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9-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코 가롯 유다의 배반때문은 아니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은 우리 들의 죄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오래전에 이미 말씀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1)죄씻김을 받 았으며, 2)그분의 살과 피로서 생명을 얻고 3)그분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연 결되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 니다. 우리는 다시금 진정한 의미를 기억하면서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며 살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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