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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사신 주님 (요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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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처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온갖 찌꺼기와 함께 썩인 금과 은 같은 보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며 둘재로,땅 속에서는 보잘 것 없는 씨앗이 어느새 나무로 변하는 것이며 세째는,계란과 같은 것이 어미 닭의 품속에서 병아리로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도 처음에 어머니의 배속에 있을 때와는 젼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한 번의 태어남 즉 한번의 변화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 가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즉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하고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영원한 몸으로 변화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이용하며 생각해 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념적으로 될대로 되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죽을 극복하는 방법을 일찌기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거듭나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어머니의 배 속에 다시 들어가야 되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2.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

오늘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일으켜 세우시고 난 다음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나는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요 살아있는 살아있게 하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간 보석이 찌꺼기와 같이 있고 뜨거운 열을 받으면 모두 없어져버릴 것같지만 그 속에 믿고 들어갔을 때 아주 새로운 순수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과 같이 주님 안에 믿고 들어가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시앗이 땅속에 들어가서 큰 나무로 변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안에 들어가면 젼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란이 어미품안에 믿고 있으면 병아리로 변하는 것과 같다는 말인 것입니다.

3. 사랑의 씨앗인 우리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삼일만에 살아나신 부활절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부활이 정말일까 하는 의심을 하기 쉽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하면서 믿지 못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주 작은 꽃 하나조차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기적이 있을 수 있을까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린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보잘것없는 버릴 것으로 심는데 훌륭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을 심었는 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하지만 하늘 나라의 몸으로 살아납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요 여러분이 아는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이 말을 요약해 본다면 용광로 속에서 금을 빼어내는 것과 같이 땅속에서 나무를 내게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어미 닭의 품속에서 병아리는 만들어내시는 것과 가티 우리들 도한 주님의 품안에 용광로안에 그리고 땅속과 같은 곳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그런 눈을 갖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곡식이라든지 꽃이라든지 식물의 씨앗은 항상 우리가 뿌려 보았기 때문에 이 씨앗을 뿌리면 튜립이 나오고 이 씨를 뿌리면 옥수수가 나오고 이 씨앗을 뿌리면 과일나무가 되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몸은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한 번도 너희들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너희들에게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부활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5장 20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중인이 되었다고 본보기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정말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다고 믿으십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치 썩어버릴 작은 씨앗하나를 땅에 심으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속에 있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큰 나무로 자라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 또한 하나님이라는 땅에 심기워지기만 하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변화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씨앗이 땅속에서 완전히 썩어질 때 새로운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자신을 버리셨을 때 부활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모든 것을 맏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겼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께로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자란 것도 내가 이렇게 건강한 것도 내가 학교에가서 공부할 수 있고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것도 모두 주님께로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명의 왕이라고 불리는 에디슨도 고백하기를 내가 그런 많은 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매 머리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죽 하나님께서 인간의 편리를 위해 나에게 그런 생각을 주신 것입니다라고 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 나는 내가 영원히 사는 몸으로 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 주시니 내가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그럴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보잘것 없는 고백을 통하여 우리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몸을 영원히 변치 않는 몸으로 우리가 이해활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4. 사랑의 씨앗으로 준비되는 우리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 비록 초라하게 보일찌라도 초라하게 여겨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날마다 자신의 단점만 보는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어떤 신문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20회 동찬회에 가지 않을 작정이오 몸뮤가게가 그렇게 빨리 줄지가 않아" 그랬더니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 뉴만 당신 문제는 몸무게를 빨리 주이는 것이 아니예요 당신은 부정적인 데만 집착한다는 것이 당신의 진짜 문제라구요. 참나 당신 동창회는 500일도 더 남았단 말이예요"라고 말하니까 그 남편은 "다행이군. 그때는 머리가 좀더 빠져 쓸테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단점이라도 우리 주님의 땅에 심기워질때는 우리의 보잘것 없는 모습이 완전히 다른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 주님은 친히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변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고 희마을 갖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말씀하셨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십자가 조차 지지 못하고 쓰러지셨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런 저주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왜 하나님 나만 미워하십니까 왜 하나님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 때 우리 주님은 우리들을 주님과 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약한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비천한 것도 수치가 아닙니다. 보잘것없이 보여도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작은 씨앗을 땅에 심느냐 심지 가느가 하는 것과 가티 주님께 맡기느냐 맡기지 않느냐하는 것 즉 주님의 능력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그리고 내가 썩어지느냐 나그렇지 가느냐하는 것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몸이 작은 사랑의 씨앗이 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완전한 사랑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땅에 들어갔을 때 금방 사랑의 몸으로 변화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주님과 같이 작은 사랑의 씨앗이 될 때 우리들 또한 주님과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어떤 씨입니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 준비가 되어이
싶습니까 혹시 가라지 씨앗으로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가라지 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빨리 사랑의 씨앗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보잘 것 없는 몸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에서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몸으로 변화시켜가고 있으며 사랑의 몸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씨앗과 같은 몸을 날마다 주님안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주님의 말씀안에 기도안에 사랑의 교제안에 우리몸을 둘 때 우리의 몸은 사랑의 씨앗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작은 사랑의 씨앗으로 자라나는 여러분을 통하여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체워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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