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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의 뿌리 (약 0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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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지금 야고보서 연구를 통해 신앙의 생활화를 추구하고 있습니 다. 어떻게 하면 신앙이 생활 가운데 스며들어 우리의 믿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첫부분에서는 시련으로 훈련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련 에는 온갖 종류가 있으며 아무 때나 누구에게든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일평생 시련을 겪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인은 시련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 태도를 취해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종류의 시련이 닥치더라도 기쁨으로 시련을 견디고 인내하며 인생을 승리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살펴볼 문제는 어느 때 우리의 신앙이 표현(증거)되어야 하 느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이 찾아올 때, 죄에 대한 유혹이 생길 때 우리의 신앙이 표현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시련과 마찬가지로 유혹도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접근 합니다.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 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죄의 유혹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악에 대한 유혹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는 주 요 관건이 됩니다.

 <> 유혹의 출처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惡)에게 시험(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유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의 자녀가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시지 않습 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는 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악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 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악의 유혹에 넘어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외국 여행 중에 우리 동포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제게 하소연을 해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렇게 어 려운 시련을 주시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정말 사정이 딱하였습니다. 머나 먼 이국 땅에서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그의 처지가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나빠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관광 여행을 하다가 그 나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 관광 도중에 슬쩍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불법 체류자로 경 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직장도 구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공 부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공부할 양으로 외국에 나 간 젊은이인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왜 자신을 이렇게 시련당하게 하시냐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그 젊은이의 전공이 신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인 교회에서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한국에 서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불법 체류까지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 지 않는 일을 하고는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사리에 맞는 일인지 생각해 보 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행하도록 섭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관광 비자를 가지고 불법 체류를 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셨으 니 앞으로도 살 길을 열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는 무언가 대단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 시험받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도 않으시고 시험받을 수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십니다.

교인들이 털어놓는 고민과 어려움은 대부분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 닙니다. 다 본인들이 스스로 판 구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도 하나님을 핑계 삼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현재 상태에 대해 하나님을 핑계 삼거나 불평하거나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자녀가 악을 행 하도록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악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14절과 15절 말씀을 보겠습니 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기독교는 욕심을 전적으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욕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영적인 것과 선한 일을 위한 권장할 만한 욕 심이 있고 악한 일을 위한 욕심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욕 심은 죄가 되는 욕심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려 야 하겠지만, 죄를 낳고 종국에 가서는 사망을 낳는 욕심을 근절 해야 합니다.

 유혹의 뿌리는 바로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악한 욕심입니다. 영 어 성경에는 lust, 즉 욕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욕정은 다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합 니다라고 고백할 때 여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말이 진짜 사랑인지 아니면 욕정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가끔 자신의 욕정과 사랑을 혼동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스스로를 절제하고 조 심해야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는데, 욕정은 반드시 상대방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인 것이 욕정, 곧 욕심입니다.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욕심이나 욕정이 있습니다. 이 욕정이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표출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환경은 욕정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14절의 자기 욕심에 끌려라는 표현에서 끌린다는 것은 미혹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창 3:6)고 하 며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이 바로 욕심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 유혹에 빠지는 과정

첫째/유혹의 손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도처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온갖 네온 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의 밤 거리는 우리의 욕정을 부추기고 미혹합니다.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범죄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에는 국민학교 학생들도 악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학교 근처의 오락실이나 폭력이 난무하는 비디오가 어린아이들을 미혹하 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낚시 끝에 매단 미끼를 물면 잡히는 것처 럼, 우리도 악의 손짓에 미혹되어 일단 그 꾀임에 빠지면 15절 말씀처럼 종국에 가서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둘째/욕심이 죄를 낳음 입시 부정을 저지른 대학 교수나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은 모두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은 것입니다. 혹시 당신은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남에게 뒤진 적이 있습니까? 정직 하게 산 것을 감사하십시오.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공의로운 심판자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심판하실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악인들이 잘 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죄는 자손에게 이르러 삼사대까지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출 3 4:7 참조). 당신은 성실하게 선한 씨앗을 뿌리십시오. 당신이 그 열매를 수확하지 못해도 당신의 자손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며 사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타박하 지 말고 아내도 남편에게 불평하지 마십시오. 서로가 악을 행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현재 가난하다고 해서, 헛된 욕심을 부려 악을 행해서 는 안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 다.

 셋째/죄가 사망을 낳음 욕심이 죄가 되도록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일단 욕심을 내게 되면 그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 죄를 짓게 만듭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이 죄가 점점 자라 돌이킬 수 없는 상 황, 즉 사망의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죄악된 인간으로 하늘의 복락을 모른 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게 됩니다.

당신의 지금 형편을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욕심이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이미 죄에 빠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습니까? 사망의 문턱에 다다랐습니까?

지금 평안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그 런 시련이 지나갔다고 해서 면역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유혹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 은 죄의 근원인 욕심을 어려서부터 잘 극복해야 합니다. 욕심에 끌리고 있음이 자각되면 즉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신앙의 자세가 습관화될 때, 우리의 신앙이 생활화 됩니다.

 <> 유혹을 이기는 방법

16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 있 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속여서 유혹하는 손길들이 곳곳에 있고 우 리의 가정을 망치려는 위협이 산재해 있고 우리 자녀들을 그릇된 길로 가게 하는 악의 무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유혹이 평 생 끊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야 이 유혹을 극복할 수 있을지 두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면, 하나 님께서 그에게 꼭 필요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일을 할 때, 선악과를 먹었 을 때처럼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제외하고 에덴 동산에 있는 과일을 전부 다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악, 죄는 빼놓고 우리에 게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건강이나 기술이나 재능은 하나님이 주 신 것이므로 감사하게 받아 누리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대로 받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받은 것을 100% 투자하여 착하고 신실한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또 저 천국에서 복을 누려야 합니다. 당대에 열매가 안 열리면 후대 에 열매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심을 확 신하면서 얼굴 생김새나 키나 재능이나 가족이나 직장이나 무엇이든 지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 한 분을 바 라보고 그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욕심이 우리를 유혹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그 조물(造物)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까,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먹고 진리의 말씀으로 크고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 사단의 세력이 우리를 유혹하고 이 세상의 모든 화려한 것들이 우리를 미혹할 때, 말씀을 기억하여 곧 돌이키고 유혹을 뿌리쳐 죄가 잉태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 나는 욕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그 죄 는 사망을 낳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대로 하 루하루 살아갈 때, 하나님 가까이에서 그분께 순종하며 살 수 있 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유혹 대부분을 이길 수 있습니다. 큰 유혹을 만났을 때만 말씀에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 조그마 한 유혹부터 물리치며 주님과 가까이, 말씀과 더불어 살 때 이 땅에서 욕심 때문에, 욕정 때문에 죄와 사망에 이르지는 않을 것 입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삶으 로,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힘써야 하겠 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유혹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회개하십시오. 당면한 죄 문제를 해결하고 또 지금 다가오는 유혹 을 이길 수 있도록 힘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 도하십시오.

 번호:209/218 등록일시:96/03/18 11:03 길이:154줄 김상복 목사/다툼과 분쟁의 원인

당신은 확실히 순종하십니까

다툼과 분쟁의 원인 / 김상복 목사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 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 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 요 구 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 음하는 여 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 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 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 에 거하게 하신 성 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 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 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1-6).

 당신은 어릴 때 동생들이나 친구들과 싸운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형제 가 아홉입니다.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을 만큼 형제가 많았는데,제 기억에 는 제가 형제들과 싸운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들끼리는 종종 다투던 것을 보았는데 제가 어떻게 전혀 싸운 기억이 없는지 저도 잘 모르 겠습니다. 어떤 집은 형제가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데 장성하고 나면 형제들이 어찌나 친하게 지내는지,참 부럽습니다. 많이 싸워서 정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갖가지 사유로,아니 이유도 없이 다툽니다. 어려서는 친구들이나 형제들과 다투고 결혼하면 부부끼리 티격태격 싸웁니다. 자녀와 부모도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직장에서도 불화가 생깁니다. 지구촌 곳곳에 서는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세상은 다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느 한인 교회는 다툼으로 교회가 갈 라져서 여덟 조각이 난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교계도 그 동안 무수한 분쟁 이 있었습니다. 장로교만도 교단이 7,80개 된다고들 합니다.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온갖 다툼의 출처와 근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서를 공 부하면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 봅시다.

싸우는 정욕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 체 중에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다툼의 첫째 원인은 정욕 때문입니다. 정욕은 잘못된 욕심입니다. 기독교 는 욕심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위엣 것을 바라고 영적인 데 욕심 내라 고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잘못된 욕심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채우기에 바쁜 욕심을 말합니다. 모든 분쟁 의 근원은 인간 의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보다 내가 잘났고,내가 옳고, 내가 최고라는 의식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2절 말씀은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라고 단언합니다 . 이 욕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나 자신이 원하 는 것에만 몰두하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므로 분이 나서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욕 심이 나는 것은 많은데 실제 로 내 소유가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내 고 분쟁을 일으킵니 다. 이것이 다툼의 주요인입니다.

 당신이 탐내는 이 세상의 것들은 대부분 어느 누군가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들을 손에 넣으려면 다른 사람이 순순히 내놓지 않는 한,당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달려들어 빼앗아야 할 것입 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세상 권력이든 사람이든 말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자기 중심적 욕심이 이 사회에 다툼이 끊이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가 잘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 가려면 타협이 필 요합니다. 노사 관계도 정치적 사안들도 타협 을 통해 쌍방에게 유익한 결 과를 낳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의 욕심도 적정선에서 타협할 줄 알아야 합 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스 러워집 니다. 2절 말씀은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살인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셨듯이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나 마찬가 지로 중한 죄라고 하는 어조와 같습니다. 물론 욕심이 어린이를 유괴하고 부녀자를 인신 매매하고 강 도와 살인을 저지르게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를 짓고 나도 그 많은 욕심을 다 채울 수 없습 니다.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 우는 도다(2절).

미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악을 행해도 만족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을수록 그 인생은 고통스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8).

지금 이 순간에도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 어느 통계를 보니 하루에 35,000명이 굶주림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 다.

신앙인은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면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욕심 없 이 살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이며 복인 줄 알아 야 합니다. 여분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쓸까,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우리를 필 요로 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욕 심 없이 살면 참 평안하고,이웃을 도우며 살면 참 기쁨을 얻습 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을 찾아보 십시오.

 잘못 구함

싸움이 많은 두번째 이유는 잘못된 기도 때문입니다. 2절 하반절 과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기보다 내가 원 하는 것,내 욕심만 나열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 리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께서는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지 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가 중요합 니다. 우리의 모든 소원을 다 주 앞에 아 뢰더라도 마지막에는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원하시는 대로 하옵 소서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나 사업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 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견지하십시오. 남 과 비교하여 내 욕심만 구하는 기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과 벗함

다툼이 일어나는 세번째 원인은 나쁜 친구 때문입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 면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다시 보 십시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 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 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 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재(臨在)하 십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하 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 성령님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그분께 지혜를 구하여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셔야 합니다. 성령님과 사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인데,세상의 속삭임에 귀가 솔깃하여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과 벗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주일날 교회 오면 성령님과 친구인 척하고 월요일날 출근해서는 다시 세상 과 짝하는 삶을 살게 되면 마음 속에 갈등이 생깁니다. 마음에 분쟁이 생기 므로 대하는 사람들과 다투게 됩니다. 가정에서 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분란을 일으킵니다.

당신은 성령님과 함께 날마다 살아가십시오. 그분께 모든 것을 의 탁하고 고민을 토로하고 대화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

잘못된 욕심을 가지고 잘못된 기도를 하는 사람,잘못된 친구를 사귄 사람 은 분쟁과 싸움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이 런 사람이 아닙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 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 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중심으로 사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 으로 사 는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 중심 으로 살고 이웃 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하나님이 바라시는 것,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뜻을 따라 삽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여 기고 이 웃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면서 자기를 낮춥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상 상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첫째이고 이 웃이 둘째이고 내가 세번째 자리를 차지했 을 때,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이 겸손한 자의 대열에 서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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