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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 (눅 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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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를 지나 가실 때 두 배를 발견했습니다. 그 배에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여 허탈 에 빠진 베드로와 요한이 피곤과 실의에 젖어 낮아 있었습니다. 주께 서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나] 주님의 사랑의 말씀에 베드로는 주님을 올려다보며 대답을 합니다.

[내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이때 주 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깊은 곳은 영적인 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고 많은 고기를 낚아 올렸습니다. 베 드로는 주님의 실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 여 주님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꿈과 고난을 통해서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문제와 자연과 목사의 설교와 성경을 통해서 역사하십 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통하여 영혼이 신선하게 변화 되는 것이며 이런 삶이 성도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부리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 랑이셔서 인간의 죄를 벗게 하려고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인간이기 를 철저히 거절하는 가증된 교만을 꺾으시고서 말씀으로 역사하십니 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환난을 면케 하시려고 말씀으로 역사하십니 다. 죄 많은 인간들의 죄악을 씻어 즐겁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생명의 빛을 주시려고 하나님은 말 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창21:1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했는데 목적 지표와 행동 방향은 로고스 에서 출발함을 설명한 것입니다. 신앙중에 가장 위대한 신앙은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성도 중에는 말씀은 제쳐 두고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에 얽매어 전전긍긍합니다.

 1. 맡기는 것이다.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은 말씀에 매달리는 신앙입니다.

 베드로 신앙의 위대성이 여기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을 때는 밤새 수고했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주님의 말 씀에 의지했을 때는 그물이 찢어지게 낚아 올렸습니다.

 인간의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눈으론 실패 같이 보이나 성 공한 사업이 있고 성공한 것 같이 보이나 실패한 사업이 있는 것은 주님을 모셨느냐, 모시지 않았으냐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 씀에 의지했을 때 실패의 아침을 성공의 아침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2. 부요를 누리는 신앙이다.

베드로가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그물을 던졌을 때는 자기가 먹을 한 마리의 고기조차 낚아 올리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 물을 던졌을 땐 그 고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건너편에서 고기를 잡아 야곱의 배까지도 가득히 채웠다고 성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말 씀에 의지하면 삶의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부요로운 삶을 원하십니 까 말씀에 의지하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거 룩한 도전을 계속 하십시요. 사업하는 이들은 세상의 부를 쟁탈하기 위한 피흘리는 도전을 하는데 부요한 삶을 살려는 성도들이 거룩한 도 전을 포기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기 몸부림이 없다면 이는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부요의 주체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땅위 에 살면서 예수처럼 부요하지 못하고 왜 가난하게 삽니까 말씀에 의 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믿음을 생산하는 부요의 역 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을 얻게하고 지혜롭게 하며 부요를 선물하는 것 입니다. 영육의 축복으로 신앙인의 갈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떠나서는 결코 그 어떤 부요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지는 것이다.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죄인임을 고백하는 베드로는 참 자아를 발견 한것입니다. 양심의 눈을 뜨고 발견해 낸 자아는 죄인이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썩고 병들어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 베드로가 죄인 된 자아를 발견했을 때 그의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랍비라는 선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예수님이 인카네이션 된 하나님의 아들로 보여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를 압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예수는 하나님 의 아들 예수 우리 구주 예수, 우리 구주 예수가 아니라 4대성인 중 한 사람으로만 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고꾸라졌을 때, 평범한 지식층 선생으로 만 보이던 예수가 주로서, 아도나이로서 그의 전인격을 차지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무릎을 꿇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할 때 죄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주님의 구원이 참 필요한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할 때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말씀에 의지할 때 가득 가득 채움받는 축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 빈 곳이 없이 가득가득 채움을 받는 놀라운 축복이 넘치도록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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