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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으로 세운 신호등 (마 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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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육체의 생각과 방법으로 구합니 다.그러나 육체를 따라 생각하고 요구하는 것은 썩어질 것밖에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갈 6:8). 육신의 생각과 마음의 생각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 (롬 7:25)고 할 때 마음은 곧 속사람으로서 성령께서 친히 함께하십니 다(롬 8:16). 그 속사람이 성령님과 함께 행하는 일의 결과는 영생과 평안입니다. 그러나 죄를 섬기는 육신의 일의 결과는 영생과 평안입니 다. 그러나 죄를 섬기는 육신의 일의 결과는 사망이외에 다른 것이 없 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중 설교를 들을 때 육적인 겉사람의 지식이 나 감정에 맞으면 말씀이 좋다고 하나 실은 속사람과 관계가 없을 때 도 있습니다.이와 같은 경우 겉사람의 사상이 더 강하여지므로 속사람 을 위한 영의 말씀을 이해하기에 더 힘이 드는 경우가 되어 버립니다.

겉사람의 지식 때문에 영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영적인 것을 거역 함으로써 외식하는 사람, 회칠한 무덤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겉사 람이 후패할질다도 우리의 속사람이 소생하고 자라서 그 속사람이 겉 으로 나타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 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요3:6)이기 때문에 육 과 영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그리스도인 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죽어야 할 육신과 함께 일하시지 않고 영과 더불어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 8:16).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통해 증거하고 속사람은 성령을 좇아 행합니 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영적 승리를 가져오게 되므로 육적 욕심을 이기는 승리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 리라"(갈 5:16).

 육신의 욕심은 사망입니다 (약 1:15).근심,걱정,괴로움,눈물,애통은 육신을 따라 옵니다. 육은 사탄이 와서 죄와 더불어 장난을 치는 곳이 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고전 15:50). 우리가 거 듭날 때 외모,체질,성격 등 겉사람은 바뀌지 않은 채 속사람이 탄생합 니다.

 속사람은 하나님께로 탄생되었고 성령님과 함께 일하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 희가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4:4).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의 속사람과 함께하는 역사가 겉사람보다 더 크 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원수 마귀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합니다.

속사람이 성령과 함께 겉사람을 이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 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롬 8:2).

그런즉 예수와 함께하면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속사람은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사람은 영원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속사람이 성령과 대화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속 사람이 성령과 함께하며 겉사람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이 길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읽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중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타고난 천성은 세상적인고로 죄를 범하기 시우 며 이럴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막아버리므로 내 심령속 에 말씀이 새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내 속사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 있지 못하고 육적인 우리의 생각의 바탕위에 하나님의 말 씀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판에 새겨질 때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속사람을 통하여 응답의 기쁨을 주십니 다.그러므로 속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의 신호등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말씀을 묵상하며 신호등을 세우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나의 속사람이 주님과 교통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것이 주님과 교통하는 속사람의 반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 까 자동차가 달릴 때 신호등이 빨간 불이면 서고 파란 불이면 달립니 다. 우리의 속사람에도 이런 신호등을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세웁니 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신호등 에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계속 묵상하면 그 말씀이 내 영에게 새겨지므로 신호등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 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1)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그저 "믿습니다!"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면 마음이 시원해지 고 진리가 솟아남을 알 수 있스니다. 내 영을 통하여 내 생활에 열매 를 맺습니다.입술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잎사귀가 시들지 않듯이 늘 생기가 있습니다. 또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 형통은 내가 잡 으려고 해서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따라오게 되 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믿음이 생깁니 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성경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하신 후에 성경구절을 놓고 묵상해야 합니다. 읽다가 마 음에 닿는 구절은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 여호 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에게 형통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방법을 따르면 "네가 밟는 땅은 모두 너 와 너의 후손의 것이 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톄하리라"(수 1:8).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실천할 때 그가 밟은 땅 은 다 그와 그의 후손의 것이 되었습니다. 능력받는 방법은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주야로 묵상하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하면 만사가 평탄해지면 형통합니 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은 양말을 신고 신을 신는 것 과 같습니다. 말씀을 뒷전으로 하고 행위가 앞서는 것은 신을 먼저 신 고 양말을 신는 격이 됩니다. 항상 여호와의 말씀 묵상이 앞서야 하고 행동은 그 다음입니다. 레위기 11장에는 되새김질 못하는 동물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말씀을 되새김질하여 묵상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 신다는 뜻입니다.

 2) 말씀을 묵상하면 평안과 기쁨의 생수가 솟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내 속에 신호등이 생깁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 응답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이 신호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 기 마음대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신호등을 세워 놓고 기도하면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은 내 속사람의 양식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양이 푸른 초장에서 풀을 먹고 살이 찌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마음은 쉴만한 물가가 되기에 그 마음에 평안이 깃들 뿐만 아니라 속에서 생수가 흘러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르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푸른 초장이 되고 쉴 만한 물가가 되기 때문 에, 내 영혼이 그 말씀의 꼴을 먹고 물을 마시면 평안해집니다. 말씀 이 푸른 초장이 되고 푸른 신호등이 될 때 내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 안과 기쁨이 솟아납니다. 기도 중이거나 기도후 이 평안함이 오면 파 란 불이 켜졌으므로 "주여, 믿습니다!" 하고 달리게 될 때 그 일이 형 통합니다. 마음에 평안과 생수의 기쁨이 나타나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 까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내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 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겔 36:2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 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3) 마음에 파란 불이 켜지는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주위 여건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속사람에 파란 불이 켜지면 마음이 평안할 뿐만 아니라, 악착스런 생각이 없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마음에 파란 불이 켜지는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응답이 왔을 때 주저하면 안 됩니다. 갈까 말까,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며 망서리다가 는 오히려 사고가 납니다. 이때야말로 "주여, 믿습니다!"하고 자동차 의 액셀러레이터를 힘있게 밟는 것과 같이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하 지만 운전은 어디까지나 겸손하고 온유하며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양털 방석이 깔린 푸근한 운전대에 앉아 평안한 마음으로 운전하십시

오. 이렇게 믿고 가시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기로 약속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사도 요한이 말씀하기를,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 를 내가 가구하노라"(요삼 1:2).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간증하였습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4) 파란 불이 오면 믿음으로 전하십시요.

이것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믿음이 이때 필요합니다. 파란 불이 켜졌을 때 주저하면 사고가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심중에 파란 불이 들어올 때는 믿음으로 지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 전케 되었느니라"(약 2:22).

 예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실 때의 그 믿음이 이때 필요합 니다. 이 믿음은 흔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파란 불은 어떠한 것일까요1) 속사람에게 부드러움이 오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계획도 하지 않고, 막연히 "주여, 믿습니다!"라 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한 처녀가 하나님께 아무라도 좋으니 신랑 감 하나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코 없는 사람도 괜찮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처녀는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라고 대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아무라도 좋으니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느 냐"하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대로 달라고 원해 놓고 정작 하나님께서 주 시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도 계획은 내가 하고 응답 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획을 하고 하나하나 세밀 하게 기도할 때 내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편안하고 온유해지면 그 길 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길이요, 이것이 바로 파란 불임을 아는 첫째 방 법입니다.

 속사람에게 부드러움이 오는 것은 마치 솜방석 위에 앉은 것과 같습 니다. 기도, 찬양, 및 예배시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것은 육적인 소욕 이 죽으면서 영적 관계 속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파란 불이 켜 주 시고 전진하리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내 속사람이 일치가 될 때 내가 가야 할 길이 성 경말씀과 일치가 되는 것이며, 이때 파란 불이 켜진 것입니다. 이때에 는 "주여, 믿습니다!"하고 힘차게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주신 꿀과 젖이 흐르는 땅과 같은 복을 우리 에게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되기를 결정했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기 위하여 늘 기도해야 합니다.

 속사람의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졌을 때 우리 생각과 다르다고 다른 길을 택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이기 때문에 겉사 람의 두뇌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도 예수 를 잘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속사람으로 믿 는 것이지 겉사람으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사람을 통하여 믿는 믿음은 속사람을 통하여 오므로 속사람이 역사할 때는 에 수께서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2) 속사람에게 깨달음이 옵니다.

속사람에게 깨달음으로 응답이 옵니다. 속사람이 깨닫는 것은 육적인 감각, 지적인 생각 또는 심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19에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리라"한 말씀에서 깨달은 마음이란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영적인 체험은 겉사람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을 통해 시작되어 겉사람에게 영향이 가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깨닫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되는 것이기에 속사람을 통하 여 깨닫는 체험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할 때는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듣는 자 에게 감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자기 말로 즉 자 기도 깨닫지 못한 말로 수천 마디 설교를 하여도 별로 효과가 없습니 다.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 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4)한다고 했습니다.

 전도할 때 지혜의 권하는 말, 즉 인간의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 남과 능력으로 하여 내 마음에 깨달은 말로 증거할 때에 성령께서 역 사해 주십니다. 이런 깨달음은 인간적, 지적, 육적인 것이 아나요 속 사람의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진 것이니 파란 불인 것을 믿고 달리면 됩니다.

이 속사람은 깨달은 것대로 행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 어 자라는도다"(골 1:6)

머리의 지식이나 인간의 의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열매를 맺어 자라는 것입니 다. 목사님들이 예배 마지막에 축도할 때 성령의 감화 감동이란 말을 합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은 육적인 것도, 심리적인 것도, 지적인 것 도 아니요, 오직 성령께서 내 속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속사람의 깨달음을 성령의 감동이라 합니다. 육적인 자기의 느낌, 자기의 생각과 맞으니 성령의 감동이라 하고 그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감동은 속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며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진 것이므로 이때는 힘차게 전진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파란 불은 성령께서 우리와 동업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는 "교통 한다, 동업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겉사람인 지식, 지혜와 동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과 동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령과 교통이 없 기에 즉시 악한 자가 빼앗아갔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 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마13:19).

 길가에 떨어진 말씀은 새들이 주워먹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는 사단을 뜻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속사람에게 가지 않고 육에 떨어지면 육은 죄를 섬기기 때문에 사단이 주는 죄가 즉시 말씀을 빼앗아 갑니 다.

 말씀이 돌밭에 떨어지면 들을 때는 기쁘나 뿌리가 없어 즉시 말라버 립니다. 돌밭의 돌은 세상적인 것이며 미움, 질투, 시기, 불안,초조 등입니다. 마으목에 이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도 곧 뿌리가 말라버립니다.

 가시밭에 떨어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라기는 해도 세상의 염려가 뿌리의 영양가를 흡수해버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이 옥토에 떨어지면 삼십배,육십 배, 백 배의 열매 를 맺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 씀을 들을 때 육신적인 소욕이 막으므로 속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성적, 육적 두뇌로 해 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영감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또한 성 령의 감동으로 깨달음의 와야 열매를 맺습니다.

 옥토란 무엇입니까 그러면 옥토란 무엇입니까 옥토가 무엇이기에 성령께서 함께 일하시 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파란 불이 잘 켜져서 형통의 축복을 받게 하는가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여기서 옥토는 좋은 머리, 좋은 생각이 나이라 좋은 마음, 즉 우리의 속사람에게 말씀의 씨가 떨어져서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합니다. 겉 사람이 아닌 속사람이 옥토입니다. 옥토에 떨어지면 분명히 삼십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왜 나는 일을 하더라도 약속한 만 큼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자꾸 어려움에 부딪칩니까 바울 사도는 결 실치 못하는 이유를 사도행전에서 자세히 말했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시하는 절기가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깨달으니) 이번 행선이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 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행 27:9-11).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재판을 받으려 배를 타고 가던 중에 파도 때문에 미항에서 배가 멈추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 이 어떤 환상이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백부장에게 출항을 연기할 것 을 요구했습니까아닙니다. 그의 속사람으로 "보니" 속사람으로 "깨달 아" 출항 연기를 부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깨달은 바 있어 출항 중 지를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인간적인 경험이 많은 선장의 망 를 듣고 출항했다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나 모든 화물을 바다에 버 렸을 뿐만 아니라 배도 파손되고 열나흘 동안 바다 가운데서 헤맸습니 다. 인간의 지혜로는 항해에 경험 많은 선장의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인간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속사 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수가 허다합니 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혜롭고 타산적인 겉사람에 의지해 왔기 때문에 속사람이 둔해져 있습니다. 우리 겉사람의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속사 람의 깨달음으로 형통하는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때에 내 속사람의 신호등에 불이 켜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내 속에서 생기가 솟아납니다.

파란 불이 켜지면 내 속에서 생기가 솟아나면서 피곤했던 육체도 가 벼워지며 힘이 납니다. 이런 것들은 내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사람으로부터 올라옵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힘의 역사는 인간의 지혜와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속에 생기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성경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새 힘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 치 아니하로다"(사 40:31).

 이때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안될 것 같아 "주여, 믿습니다!" 하고 전진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내 속에서 생기가 솟아나면 몸에 힘이 생기고 머리는 갑자기 맑아집 니다. 이런 경우에도 인간의 머리로 계산을 하기 쉽습니다. 육의 생각 을 버리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이것을 깨달은 마음에 오는 하나님의 복이지 깨달은 머리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이 진리를 세상살이에 잘 적용하면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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