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서 (호 14:1-3)

첨부 1


성경은 “돌아온다”는 것을 회개와 회복의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돌아온 사건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만에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사건을 들 수 있고,70년 만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도 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의 아내였던 고멜이 남편의 품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건이 호세아서에 기록되어 있고,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둘째 아들(탕자)이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사건도 있습니다.

특히 고멜이라는 여자나 둘째 아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품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거나 떠나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모든 인간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멜은 호세아라는 남자의 아내였습니다.그러나 다른 남자의 유혹에 빠져 집을 나갔고,그러한 그녀를 남편인 호세아가 찾아가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둘째 아들의 경우는 세상 향락을 찾아 집을 나갔고,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고멜과 둘째 아들의 경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발적으로 선택한 유혹이었고 타락이었습니다.

둘째는,집을 나간 이후로부터 불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멜은 인신 매매단에 의해 유흥가에 팔렸고,둘째 아들은 환락가를 맴돌다가 결국 돼지만도 못한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셋째는,둘 다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멜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며 찾는 남편이 있었고,둘째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넷째는,두 사람 다 용서받았습니다.

고멜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 잘못이오.내가 당신을 잘 돌보지 못한 탓이오 우리 이제부턴 딴 맘 먹지 말고 사랑하며 잘살아 봅시다.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두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이다.목욕을 시키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그리고 살진 소를 잡아 환영 잔치를 열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지난날의 잘못이 일체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일을 미주알고주알 낱낱이 따지면서 용서하겠다는 것은,심판하겠다는 것이지 용서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란 정죄나 심판은 유보해 놓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두 사람 모두 타락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녀를 사랑하는 좋은 남편을 배신했던 고멜처럼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제 남편의 품을 떠나 다른 남자의 품을 전전했던 고멜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 신을 섬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좋은 집,넉넉한 가산,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놔 둔 채 환락가로 뛰쳐나가 거지가 된 둘째 아들처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향락이 더 좋다면서 그 품을 떠나고 있습니다.

고멜과 둘째 아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자화상이며 그림자입니다.

여섯째는,제아무리 몸부림치며 하나님의 품을 떠난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도망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찾아가십니다.

힌간은 외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면하시고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도망치든 인간,쫓아가시는 하나님,어떻게 승부가 결정 나겠습니까 고멜과 탕자의 이야기는 결국 죄인이라도 용서하시고 기어이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을 설명해 줍니다.

호세아서는 호세아 선지자가 기록한 책입니다.

호세아는 이사야,아모스,요나,요엘,나훔 선지자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약 65년 동안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호세아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두 큰 조류가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꾸짖고 심판을 예고하고 있는가 하면,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회복시키겠다는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가 드러나 있습니다.

호세아서 14장은 책 전체의 결론으로,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타락과 방종,불신과 배신을 용서하신다는 것과 그 전제 조건의 제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와 돌아오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왜 돌아와야 합니까 본문 1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로”라는 말은 “하나님에게까지”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로 돌아가느냐,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려면 하나님의 품에까지 돌아와야 합니다.마치 집 떠났던 탕자가 아버지가 계신 집에까지 돌아왔던 것처럼,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방향을 잘못 정한 나머지 다른 데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엎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엎드러졌다는 것은 실패,절망,고통,좌절을 의미합니다.

남편을 떠났던 고멜이 죽을 고생을 다 겪은 뒤 결국은 유흥가에 팔린 신세가 된 것이나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방탕으로 삶을 탕진하다가 결국 비렁뱅이가 되었던 것처럼,하나님을 떠난 인간들 역시 그 덫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넘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곳 저곳 깨지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인간이란 넘어지고 넘어져 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이란 질그릇과 같아서 깨어지고 깨어져 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여기저기 넘어진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높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흐느끼고 있는 한 중년 부인을 만났습니다.그녀는 정신 착란 증세로 입원한 고3 딸을 면회하고 나온 엄마였습니다.

그녀의 말이 딸의 병실에 들어갔더니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더랍니다.그래서 다가가 딸의 손을 꼬옥 쥔 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얘,미희야! 나야,엄마야”라고 해도 반응이 없더랍니다.

다시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얘,미희야! 엄마라니깐,엄마가 너 좋아하는 것 사 왔다구”해도 여전히 무표정으로 천정만 바라보고 있더니,실날 같은 웃음을 흘리며 순간 엄마를 바라보는데 그 표정이 딸이 엄마를 바라보는 표정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젊은 청소년들이 그 어떤 이유 때문에 넘어지고 깨어져 가는 신음 소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치 일선에서 밀려나 야인(野人)이 된 어떤 명사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계나 매스컴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잘 지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잘 지냅니다”라면서 내쉬던 그의 한숨과 그 어두웠던 얼굴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그 깊은 한숨과 그늘진 얼굴 표정의 뜻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워 담기로 하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본문은 말합니다.그러기 때문에 돌아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넘어졌기 때문에,네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기 때문에,그리고 너 자신의 힘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고 본문은 말하는 것입니다.

 2.어떻게 돌아와야 합니까 2절은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고 밝힙니다.

솔제니친은 “지구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산더미처럼 불안하게 닥쳐오고 있는 마당에 인류의 존폐(存廢)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있고,그 인간의 마음이 선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악을 선택하느냐에 있다.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열쇠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악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선입니다.

선을 선택하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을 선택하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1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고백과 기도를 의미합니다.

2절을 보면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입술은 고백과 기도를 의미하고 수송아지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 뜻은 형식적인 겉치레보다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자기 죄를 낱낱이 그리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한1서 1:9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둘째는,신앙을 정립하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즉,지금까지 세상 것들을 믿고 우상을 믿고 섬겼던 것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믿고 의지했지만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배신했고 공격을 일삼았습니다.

또 말을 키우고 사랑하여 그 말을 탔지만 그 말이 날뛰는 바람에 떨어져 깨지고 부러졌습니다.

손으로 새기고 만든 우상을 섬기고 그것에게 절했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은 섬기는 자들을 도와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하라는 것이 본문의 웅변입니다.

본문 3하반절을 보면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결론은 드러났습니다.

엎드러진 사람들은 그것이 건강이든 경제 문제든 지식이든 세상이든 명성이든간에 그런 것들을 절대 가치로 의지하거나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지금 방향을 바꿉시다.

바로 지금이 당신의 삶의 방향 전환점(turning point)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