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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듣고(2) (느 0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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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하루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 마련된 나무 강단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을 때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에스라가 책상을 치며 옷을 찢은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백성의 잘못을 지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을 듣고 있던 백성들에게 변화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아멘,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6절을 보면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멘”이란 말의 뜻은 “진실로”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동의와 동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성이 아멘,아멘 한 것은 “에스라,당신이 읽은 그 말씀이 우리는 진실임을 믿습니다”라는 뜻이며 “당신이 송축하신 하나님을 우리도 송축합니다”라는 뜻입니다.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을 크고 높으신 분으로 믿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아멘 하는 태도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의 긴 설교가 끝나자 그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취한 반응이 나옵니다.
특히 2:37을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찔림 때문에 회개하고 자신을 교정하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둘째는,저항하는 태도입니다.
사도행전 7:54을 보면 스데반의 긴 설교를 듣고 난 사람들이 취한 태도가 나옵니다.“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렸고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어찌할꼬”라고 회개했고 후자는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중요한 것은,말씀을 듣고 아멘 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고 이를 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라의 말씀 낭독 소리만으로도 아멘을 외쳤던 백성의 아름다운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2.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6하반절을 보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을 송축하는 말씀이 낭독되자 백성들은 모두가 아멘,아멘으로 화답했으며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는 것은 종이 주인을 경배할 때(노예가 주인을 경배할 때) 취하는 태도입니다.
경배의 대상 설정이 중요합니다.누구를 믿고 따르고 경배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 불교 조계종 이성철 종정(宗正)이 석탄일 법어(法語) 가운데서 “사탄이여 어서 오소서.우리는 사탄을 숭배합니다.부처는 사탄이십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그러니까 불교는 사탄 숭배 종교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년 석탄일을 맞으면서도 역시 이성철 종정이 발표한 법어 가운데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천상 천하에 독존 무비한 부처님의 처소는 험악하고도 무서운 저 지옥이니 지옥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신음하는 모든 중생들의 그 고통을 대신 받고 그들을 안락한 곳으로 모시며 그들을 돕기 위하여 부처님은 항상 지옥에 계신다.”
부처는 사탄이고 사탄은 지옥에 항상 계시다는 이론은 틀림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누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영원한 존재와 처소의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 고백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누구를 경배하느냐에 따라 천국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려 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학 교실의 곽동일 교수팀이 최근 종교적 증상을 가진 신경정신과 입원 환자 57명(남자 18명,여자 39명)을 대상으로 종교 망상과 환각에 대한 특성을 조사 분석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종교적인 망상과 환각에 빠져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첫째,신앙의 대상을 자신과 동격으로 놓는 경우
둘째,신앙의 대상이 자신에게 접근한다고 보는 경우
셋째,자신이 신앙의 대상에 접근하는 경우 등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성령을 받았다”,“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목사의 설교는 필요없다”,“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내 뜻대로 비가 오게 할 수 있다”,“내가 하나님이다”,“내가 예수이며 미래를 알 수 있다”,“하나님과 결혼해서 천당에 간다”는 등의 종교적 망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종교 망상 환자 모두가 자신을 신앙의 대상이나 그 위에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를 믿으면 결국은 환각이나 망상에 빠지는 정신 질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보다 정신병 환자가 더 많아지는 이유는,인본주의 사상의 팽배와 물질 만능주의 때문에 인간의 능력을 절대 평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풍조가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대상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과 경배의 대상은 천년 만년의 세월이 흘러도 오직 한분-하나님뿐입니다.
요한계시록 5:13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3.모든 백성이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9절을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날 에스라가 낭독한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에 자신들의 죄가 밝혀졌고 허물이 드러났고 잘못이 노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밝혀지고 허물이 드러나고 잘못이 노출됐다고 해서 다 통곡하고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더 완악해지고 발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 성에 들어가 40일 후에 이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그의 외침이 떨어지자마자 왕과 대신들과 모든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습니다.그래서 니느웨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는 노아가 아라랏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어 놓고 홍수가 나 멸망할 것이니 방주로 들어오라고 외치고 다녔지만,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 가고 향락을 즐길 뿐 단 한 사람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그러다가 모조리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비슷합니다.먹고 마시고 즐기고 향락에 빠진 채 지내다가 롯의 말을 무시한 그의 사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였던 백성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설명도 없이 모세의 율법책을 그대로 낭독했습니다만 그 말씀을 듣고 백성이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옷을 찢고 회개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이유는 민족적 대시련기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정치가 흔들리고 경제 기로가 흔들리면 그 동안 피눈물 나게 이룩한 성장이 조만간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이대로 사상적 혼란을 방치한다면 공산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염려의 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누가 누구를 탓할 순 없습니다.먼저 우리 기독교인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내 가슴을 치고 내 옷을 찢고 내 머리에 재를 뿌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내 가슴은 치지 않고 남의 가슴을 치고 내 옷은 찢지 않고 남의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내 머리에는 재를 뿌리지 않고 남의 머리에 재를 뿌리려는 데 있습니다.
회개란 좋은 것은 하고,나쁜 것은 안하는 것입니다.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것입니다.
참회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때 성립됩니다.

4.즐거워했습니다.
12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백성들의 통곡이 심해지자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을 진정시키며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회개함으로 화평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순간,그들의 심령에는 화평이 찾아왔습니다.
회개하면 화평이 찾아옵니다.
죄는 불안을 떠나지 않게 하지만 참회개는 심령을 평안해지게 합니다.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소유하려면 진정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는,그날이 성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날입니다.
그날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맡겨 버리고 참기쁨을 소유하는 날입니다.
근심과 걱정,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왔더라도 주의 제단 앞에 모조리 내어 놓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소유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일은 안식의 날이며 평화의 날이며 복된 날인 것입니다.
즉,주의 전에 나올 때는 근심 어린 모습으로 나왔더라도 영광의 주님 앞에서 예배드리고 찬송하다가 우리들의 얼굴이 평화의 얼굴로 변해야하는 날인 것입니다.
셋째는,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2하반절을 보면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조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유는 그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하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깊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어떻게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듣기는 들어도 깨달음이 없으면 멸망할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날그날 주시는 말씀을 깨달읍시다.그래야 기쁨이 넘치고 삶의 의미가 깊어집니다.
오늘 이 말씀을 왜 나에게 주시는가를 깨달읍시다.
말씀을 듣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이구 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그것은 “어쩌면 그렇게도 내 사정을 낱낱이 아시고 말씀으로 일깨워 주시는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 변화됩시다.
말씀을 듣고 힘을 냅시다.
말씀을 듣고 기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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