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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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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풍성한 여름 뒤에 단아 해지는 가을의 모든 모습이 다 아름답다. 추수의 계절이라 했던가. 이 몸도 뒷산에 심어 놓은 고구마 수확에 하루를 보냈다. 늦은 봄에 심은 고구마는 황토 흙에서 잘 자랐다. 고구마는 흙을 세자 간격의 둑으로 만들고 한자 간격으로 고구마 순을 심기만 하면 여름 내 뜨거운 태양을 양분으로 김 매주는 일 없이도 잘 자란다. 둑을 만들고 심는 것을 한 주일 하고 나면 가을이 되어 고구마를 캘 수 있다. 앞으로 삼일은 고구마 캐는 일만 하겠지만 한 둑 한 둑을 쓸 때 팔뚝만한 고구마가 수확의 재미를 더하게 한다. 황토 흙을 뒤적이다가 호미 끝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면 손으로 고슬고슬 흙을 쓸고 벌건 고구마가 “나 여기 있어요.” 하며 나온다. 불그스름하고 길죽한 고구마가 분만실에서 한참 만에 간호사의 가슴에 안겨 나온 아기의 첫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추수를 서두른 두더쥐란 녀석의 흔적도 여기저기 보였지만 흙도 내 것이 아니고 태양도 내 것이 아닌 이런 풍성한 수확의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남이 들으면 강원도 어디 쯤 되냐고 하겠지만 이곳은 광화문에서 삼십분 거리의 도시 외곽이다. 이곳에 온지는 벌써 이십년이 된다. 이곳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문화적인 시설은 미흡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배려를 피부로 느끼는 곳이다. 한참 사춘기 때는 우리 집이 다른 집들과 달라 친구조차 초청하기가 망설여졌을 때도 많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많이 오던 하교 길에 숲 이곳저곳에서 울어 대는 수백, 천의 개구리와 맹꽁이들의 합창이 귀를 가득 채운 적이 있다. 그 때 가슴이 얼마나 벅차 오는지 그 후로 저녁이면 초롱초롱한 별과 황홀할 정도의 황혼과 여름의 초록 등을 보면서 나는 늘 이렇게 말 해 왔다. “난 세상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아름다움 속에 살고 있다.” 오늘도 그러한 날이다. 고구마가 생겨서가 아니라 갓난아기처럼, 이 깨끗한 황토흙 속의 보물을 찾는 이 시간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들리는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에서는 마지막 번식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짝짓기라는 해설을 듣겠지만 이곳에서 나는 최고가의 오디오 흠향보다 몇 백배 뛰어나고 비발디의 사계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귀가 아닌 가슴으로, 이 피부로 느낀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이 가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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