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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의 면류관 (벧전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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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2일과 27일 새벽에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릴레함메르에서 우리나라의 김기훈, 채지훈, 전이경, 원혜경, 김소희, 김윤미 등의 선수가 쇼트트랙에서 네개의 금메달을 안겨주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하늘 아래,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그야말로 영광의 면류관을 안겨준 것입니다.

삼천미터 출전 선수 네명 중의 김윤미 선수는 만 13살의 어린 선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3세의 소녀가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주었는데, 과연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청년의 때는 매우 소중한 시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생의 기초를 놓는 시기요, 성공이냐, 아니면 실패냐를 정하는 귀중한 시기인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움직이고 또 움직인 사람은 대개가 청년의 시기였고 청년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인의 이목을 놀라게 한 때가 24살이라고 하는 젊은 때였습니다. 알렉산더가 천하의 패권을 쥔 때가 17세라는 홍안의 소년기였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때가 32세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비텐부르크성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나이가 33세였습니다. 죤 칼빈이 “기독교강요”라고 하는 중요한 신학대전을 저술한 나이가 27세였고, 스펄젼 목사님이 런던에서 대집회를 인도한 때가 27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세계적인 부흥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가 25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윌리암 오슬로(William Osler)경은 “세계에서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25세에서 40세, 곧 40세 이하의 젊은 시절에 이루어졌으며, 이 15년 간의 황금기는 실로 건설의 때”라고 말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이란 너무나도 좋은 때입니다. 젊음은 신선한 꽃과 같은 시절이요, 그윽한 향기를 내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계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힘과 능력이 넘치며, 사랑이 넘치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바이런은 젊은 시절을 가리켜서 “영광의 시절”이라고 했고, 괴테는 젊음을 “생명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아니하는 소중한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므로 주님께 잘했다 칭찬을 들으시고 시들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젊은이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젊은이들이라고 한정해서 말씀을 드리면 장년들과 노년에 있는 분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이미 인생 황금기를 다 허송해 버렸고, 이제는 힘없는 노년기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영광의 면류관을 받도록 살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도 갖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비록 육신적인 나이는 많이 들었다 할지라도 속사람이 새로와지고, 또 주님을 앙망하므로 새힘을 얻어서 젊은이 못지 않게 놀라운 저력을 갖고 힘차게 주님의 일을 수행함으로 면류관들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본문 2절에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부득이함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부득이함으로”라는 헬라어 말은 아낭카스토스(αναγπαστ)인데, 그 말의 의미는 “억지로”라는 뜻입니다. 체면상,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라는 체면 때문에 억지로, 마지 못해서 주님의 일을 하는 척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좇아 열심히 일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목숨까지도 드려서 주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뜻, 내 고집, 내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내 뜻, 내 고집, 내 주장은 십자가에 못을 박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으로 여섯 가지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내 자신의 의지를 꺾어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내 마음에 나 자신의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 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려운 일의 십중팔구는 우리 마음이 주님의 뜻을 좇아 행할 자세가 갖추어져 있을 때에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자기 자신의 의지를 꺾을 때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첫째 방법인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킬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고,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분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분을 의지하면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기분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단순한 느낌을 따라가지 아니하게 되므로 신중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의 뜻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는 글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살 때에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어떻게 계시해 주시느냐 하면,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에 말씀에 부합되는 사실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 말씀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계시해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환경을 주시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주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가운데에 그 뜻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됩니다.
여섯째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난 다음에 우리 마음이 평온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번 세번, 거듭 기도해야 합니다. 거듭 기도함에도 마음이 평온하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뜻임을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하여 문제가 즉시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 길이 참고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네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축복을 약속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 기도가 응답이 되기까지는 25년이 흐른 다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조급하여 참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는 “자원함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해서도 안되고, 또 마지 못하여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자원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서 자원하여 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일꾼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시켜야 일하는 일꾼을 가리켜서 소같은 일꾼이라고 하고, 일등 일꾼이란 누가 한마디만 하면 두 세 가지를 자원해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특등 일꾼이 있는데, 이는 자기의 할 일을 자원하여 하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 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꾼 가운데도 노세와 같이 거듭 거듭 시켜야 겨우 일하는 일꾼이 있고, 기계적으로만 움직이는 기계적인 일꾼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매를 맞고서야 겨우 일하는 팽이와도 같은 일꾼이 있는가 하면, 기분에 따라서 일하는 달팽이 같은 일꾼도 있습니다. 팽이는 팽이채로 때려야만 잘 돌아갑니다. 이처럼 주님께 두들겨 맞아야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 나아가는 일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달팽이와 같은 일꾼이 되기 쉽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뭔가 주님의 일을 하는척 하고, 기분이 나쁘면 달팽이가 쏙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택하여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자원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특등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일에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흔히 몸을 드리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물질을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너희가 돈주머니를 회개하기 까지는 회개한 것으로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돈주머니를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돈주머니를 풀어 헤쳐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인 것입니다.

셋째로, 본문 2절에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한다”는 말을 오순절 신학자들은 “The Full Life Study Bible"에서 “not greedy for money"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돈을 위해서 탐욕을 내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위해서 탐욕을 가지고 일하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물질을 위해서 탐욕으로 일한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발람, 게하시, 가룟 유다 등이 돈을 위해서, 더러운 이(利), 잇권을 위해서 일하다가, 더러운 명예를 위해서 일하다가 결국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유익, 내 물질, 내 명예를 위해서 일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햐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1회용 컵과 같이 한번 사용되어지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어져서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즐거운 뜻으로 하라”는 말을 헬라어로 프로투모스(προθυμω)라고 하며, 그 뜻은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아름다운 직분을 허락해 주셨으니 목숨을 바쳐서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할 때 만이 면류관을 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3절에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장하는 자세란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직분이란 권세직이 아니라 봉사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세를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며, 권위(authority)를 소유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권세나 권위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누가 높으냐, 어떤 직분이 으뜸이냐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다스리는 것을 최고로 생각합니다만 성경에서는 다스리는 것을 우위에 두지는 않습니다. 남을 돕는 사람이 다스리는 사람보다도 위에 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남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이란 결코 남을 다스리는 직분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직분임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세로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 예배드리는 일, 예배에 참석하는 일, 봉사하는 일, 헌금하는 일, 전도하는 일, 주의 종을 섬기는 일, 성도들을 섬기는 일 등등의 모든 일들에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께 시들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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