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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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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세계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곧 영의 세계는 인간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신앙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리워져 있고 따라서 영의 세계 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무지하며, 무관심하기 때문에 자신 이 마귀에게 영적으로 도적질과 죽임을 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애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모든 일을 인간이 처해있는 환경과 조건에 비추어 이해하며 또 이해되지 않는 일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의 배후에는 악한 영 들이 있어서 조종하고 역사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 서 보면 우연한 일이고 또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처럼 보여지나 그것이 마귀 의 짓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마귀의 모든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얻아야 하며 그 행위를 분별하여 대적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떻게 역사하며 우리는 어떻게 대적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 대 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여러가지 생각을 주입시키고 사람들이 그것 을 받아 들일 때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여 역사하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릇된 생각이 다가올 때 그 즉시로 그것을 물리치고 집 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문득 문득 다가오는 그릇된 생각에 집착하게 되 면 마귀의 유혹에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격언에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는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있 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그릇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릇된 생각이 둥우리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자기의 생각을 조절하지 못하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바로 바울의 생각을 조절하지 못하여 실패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2을 보면 "마귀가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 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가롯 유다는 그릇된 생각이 다가올 때를 밀치지 못하고 집착하여 스승 예수를 팔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8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칭찬 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육적인 성품에서 비롯되는 생각들은 거짓되고,경건 하지 못하며, 미워하며, 시기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 에게 적극적으로 사도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 만하여 칭찬할만한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3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곧 생각이 난잡해지고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생각이들 때 집착하지 말고 즉시 그 악한 생각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악한 생각을 가져다 주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 니 물러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때 마귀는 틈을 얻지 못하고 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대 적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할 뿐 아니라 육체를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질병의 원인은 여러가지인데 그것을 성서적으로 분류하면 인간의 연약함과 실수와 부족 죄값, 하나님의 징계, 겸손하게 하기 위한 채찍, 또는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질병은 마귀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그 예로 누가복음 4장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앓을 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열병은 인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인격체를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 모가 열병으로 꾸짖으셨고 꾸짖은 결과 열병은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열병 은 단순한 질병이아니라 인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 다. 다시 말하면 그 열병은 마귀의 역사였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아 책 망하셨고 그로써 마귀는 떠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같은 예를 우리는 마가복음 9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릴 때부터 벙어리되고 귀먹은 아이를 고친 일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예수님 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정상아로 회복되었스빈다. 그 병도 역시 악한 영 때문에 일어난 병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질병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면 약국으로 병원으로 갑니다. 물론 약국에도 병원도 가봐야 하지 만 그것만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한번쯤은 질병의 원인에 대해 신앙적으 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병도 무조건 생리적인 것으로 불가피 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병이 마귀(귀신) 의 역사라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행한 것이 아니라 초자 연적인 것이며 따라서 약이나 의술로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었을 때 병의 원인을 생각해 보아야 하며 만약 마귀의 역 사로 판단되면 예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더러운 병마야 예수 이름 으로 명하노니 몸에서 떠나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마귀는 더 붙어 있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우리는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여 대적하여 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과 육체를 괴롭힐 뿐 아니라 양심까지도 괴롭힙니다.

곧 마귀의 참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마귀의 역사로 인한 양심의 괴로움을 성령의 책망으로 착각하여 대적하지 못하고 깊은 죄책감에에 사로 잡혀 하 나님 앞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양심을 공격하여 약화시킵니다. 약화된 양심은 전 인격으리 약화시키고 결국에는 무력한 인간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참소와 심령의 책망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책망은 성도들의 죄를 분명히 깨닫게 하며 성도들의 인격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 시

킵니다. 성령의 책망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 앞에 서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참소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의 참소는 성도들의 심령을 괴롭게만 하며 결국에는 불평으로 이끌고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회개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의 속삭임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도비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너는 죄가 너무 많 고 무익한 존재이며 회개해도 소용이 없다"라고 속삭입니다.그리고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양심을 죄책감으로 약화시켜 하나님 앞에 서지 못 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조의 약속을 붙잡고 용서를 구하지만 확신이 없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이미 고백한 죄를 고백하고 또 고백하며 반복해서 회개하는 결과를 초래케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죄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양심의 죄 의식의 무거운 짐에 눴려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잘못에 대해 양심의 비난으로 기도하지 못하게 될 때 반복해 서 죄를 자백할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참소를 물리쳐야 합니다. "양심 을 괴롭게 하며 보혈의 능력을 의심케 하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마귀의 역사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을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과 육체, 양심 뿐 아니라 환경을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다라 지방을 가시기 전 게네사렛 호수를 지나가실 때 호수에서 큰 놀이 일었습니다. 그때 심상치 않게 여긴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롸바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주게 되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쫓아 버려야 할 귀신들이 있으며 그 귀신들이 예수님을 바다에 침몰시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 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는 곧 잔잔해졌습니다. 바람과 바다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책망에 복 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 면 이면에는 마귀가 있었고 또 마귀는 책망하면 듣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괴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혹시 나의 잘못으로 인한 하 나님의 징계는 아닌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환경을 괴롭게 하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라고 예 수 이름으로 대적할 때 괴로움을 주던 환경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 며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육체,양심,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는 마귀의 모든 활동을 분별할 때 우 리는 능히 대적할 수 있고 예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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