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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삶의 지경을 넓히라 (대상 0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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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저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이준 열사의 추도예배에 참석했다가 바다를 메꾸어 국토를 확장시켜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공사는 1927년에 착공되어 1932년에 완공되었는데 제방의 높이가 6m이고 제방의 길이가 무려 30Km나 된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75리나 되는 제방 위를 달리면서 보니 제방의 한 쪽에는 이미 담수가 되어버린 에이젤호가 있었고 반대쪽은 바다였습니다. 앞으로도 120Km나 되는 넓은 국토가 확장될 것이라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육지가 바다보다 낮기 때문에 제방을 높이 쌓아 아름다운 국토를 만든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도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영토를 넓혀나가서 우리나라 지도가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이란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영적, 정신적으로 우리의 지경을 넓혀 나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 영적인 지경을 넓혀나가고 전세계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게 복이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저는 오늘 아침에 “내 삶의 지경을 넓히라”는 제목으로 4가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내 삶의 지경을 넓히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주위환경을 초월하는 사람이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 사람입니다.
원래 야베스라는 이름은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이름대로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어떤 불행한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대나라에서는 원래 아버지가 이름을 붙이는데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다”고 한것으로 미루어 보아 야베스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슬하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또 그는 신체 부자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또 질병으로 오래 고생하며 자란 것 같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란 뜻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탓하거나 그 환경에 항복하지 않고 위대한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삶의 지경을 넓혀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들여쓰시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이나 육체적인 조건에 항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약 요셉이 주어진 환경에 굴복했다면 그는 아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노예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에 끌려가면서도 자기의 환경을 초월해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나가고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겨 애굽전체가 요셉의 지경으로 변해나갔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오래 그 땅에 번져나갔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보잘것 없는 양치는 목자였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싸우게 되었을 때 골리앗이라는 블레셋장군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점점 사기가 떨어져 패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막대기 하나와 돌 몇개 가지고 골리앗 장수 앞에 섰습니다. 골리앗이 “넌 개를 잡으려고 왔느냐”고 코웃음을 치며 다윗을 조롱하자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매돌을 던질 때에 그 돌이 골리앗 대장의 미간에 정면으로 맞아 골리앗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웃은 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보잘것 없는 목자이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싸울 때에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입니다.
다윗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기의 신하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하는 큰 죄를 지었지만 그의 범죄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고 환경을 뛰어넘어서 용서함받고 다시 이르라엘왕으로 쓰임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야베스와 같은 환경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환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그의 삶의 지경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건국대학교 교수인 유태영박사가 간증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라도의 조그만 섬에서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머슴살이했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언제까지 이 조그만 섬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나도 이 세계를 향해 뜻을 펴리라’고 생각하고 엉뚱하게도 덴마크의 왕에게 덴마크에 가서 농사를 배워 한국의 농촌을 부흥시키고 싶다는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덴마크의 왕이 비행기표까지 사보내고 장학금을 마련해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말 한마디도 몰랐습니다. 그는 7개월 동안에 덴마크말을 마스터했습니다. 그는 덴마크에서 공부한 후 또 이르라엘에 편지를 내서 히브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전라도의 조그만 섬에 갇혀 있던 그가 자기의 삶의 지경을 확장해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사람은 영적, 정신적으로 자기의 삶의 지경을 확장해 나아가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2. 훌륭히 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참 크리스챤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이름 석 자를 남이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나님이 여러분을 알아주시고, 교회가 여러분을 알아주시고, 여러분을 명예롭게 살도록 축복해주시는 것이 우리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책임있는 생활을 합시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생활을 합시다.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명예롭게 살아갑시다.
저는 지난주간에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장이셨던 일가 김용기 장로님의 기념예배당 봉헌식에 참석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 가나안 농군학교야말로 우루과이 라운드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요새가 될 것이라고 얘기 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공식적인 학력이 없는 분입니다. 그는 한 손에 호미를 들고 한 손엔 성경을 들고 허리에 근면의 띠를 두르고 농민 살리기 운동에 일생을 바치면서 근면, 희생, 봉사정신으로 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교육시켰는데 그가 기도하던 기도실에 들어가면 “조국이여 안심하시오”하고 씌여 있습니다. 그는 별로 학력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이름이 지경을 넓혀나갔습니다. 그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존귀히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따르니 그 자녀들도, 손자들도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 부지런히 땀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존귀히 여길 때에 그가 존귀히 여김을 받고 교회를 존귀히 여길 때에 그가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다 훌륭히 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지경을 넓히는 사람은 남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3.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야베스는 슬픔의 사람,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시야는 저 지평선 너머로 멀리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챤은 무엇입니까
눈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가지고 멀리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영원의 세계까지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자기 조카 롯이 기름진 소돔 고모라 땅을 차지하게 될 때에 아브라함은 속으로 좀 섭섭했을지 모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눈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스스로 담장을 쌓고 그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멀리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창조적인 생활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자기가 만든 이기주의에 붙잡혀 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전세계로 우리의 뜻을 펴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나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야요, 안목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요 천문학자인 스터브 호킹 박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전신마비 환자입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야베스와 같은 운명일지 모릅니다. 야베스처럼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 나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4. 하나님께 구하는 삶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재주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내 손을 붙잡아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의 삶은 헛됩니다.
야베스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에게 재물을 주소서,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여 내 손을 붙들어 주옵소서. 환란을 벗어나게 하옵소서. 죄를 짓지 않게 하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마치 주기도문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 노라 팰릭스라는 교회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관원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산 속에로 들어가 어느 굴 속에 숨었습니다. 관원들은 그를 뒤좇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굴 속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을 받아주옵소서.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굴 앞에 당도한 수색대원들이 왔다갔다만 하고 굴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그들이 다 철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알아보니까 그가 굴 속에서 기도할 때에 거미 몇 마리가 쏜살같이 그 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놓았습니다. 수색대원들은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이 굴 속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게 하지 않으시면 돌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
야베스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오늘도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내리셔서 여러분의 삶의 지경을 넓히시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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