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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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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역 하시던 김홍조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간경화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뵙고 왔는데 위독해 보입니다. 간이 완전히 굳어진 상태에서 이식수술을 받으려 하고 있지만 5000여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주위에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방법이 없나요”
“네.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보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메일이 도달했다. ‘예수 주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비록 현장에 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선교사의 헌신으로 인도전역에 더 큰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데….안타깝습니다.도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내용을 살펴본 즉,김홍조 선교사는 태권도 공인 7단으로 92년 평신도 선교사의 비전을 품고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건너갔다. 그러나 내전으로 2년만에 인도에 가서 정착, 태권도 선교 및 교회 개척 사역을 펼쳤다. 인도 뱅갈로에서 사모 우도선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개척, 인도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태권도 코치로 김 선교사는 인도 대표팀이 2001년 대만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내는데 기여했다. 인도팀이 금메달을 딴 뒤 김 선교사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간경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돼 최근에는 아예 부산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기자에게 연락한 친구 선교사는 “앞으로 2,3주 정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사는 하루빨리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신문사에는 이같이 도움을 요청하는 수많은 연락이 온다. 그러다보니 사실 “도와달라!”는 간절한 소리가 시급하게 들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둔감해진다. 그러나 선교사의 전화와 메일은 마음에 남았다. 인도 김홍조 선교사의 안타까운 소식은 6월4일자 신문에 보도가 됐다. 그리고 온라인 상으로도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빨리 익명의 독지가가 나서 김 선교사 가족에게 수술비 5000만원을 전해 줄 수 있기를 기원했다. 거뜬히 회복한 김 선교사가 도움을 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모습도 그려봤다.
며칠이 지났다. 예장 합동 교단 출입을 하는 기자가 올린 내용이 기사판에 떴다. ‘인도 김홍조 선교사 5일 소천’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간경화로 결국 김 선교사가 소천됐으며 7일에 발인예배를 마쳤다는 소식이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김홍조 선교사의 소천 소식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아,늦었구나. 조금 빨리 보도됐더라면…”
사실 다른일 제쳐놓고 즉각적으로 보도했더라면 이틀 정도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 이틀 사이에 익명의 천사가 나타나 김 선교사를 구했을 지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아,늦었구나’라는 탄식을 할 지 모른다. ‘너무 늦기 전에’ 주위를 돌아보자.너무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용서해 달라”고 말해보자.
/국민일보 에서(2005.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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