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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난처 있으니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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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시편 46편 1절~11절
제  목 : 피난처 있으니 

1. 인생의 안전지대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는 안전에 대한 본능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동남아시아에 엄청난 해저지진으로 인하여 강력한 해일인 쓰나미가 오기 직전에 동물들은 그것을 미리 알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식물들도 자기에게 오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 대처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적인 안전에 위험이 닥치면 사람은 거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위험이 여러분에게 닥쳐올 때 어떻게 하십니까? 아니 그보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가장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분들은 보다 안정된 삶은 경제력, 즉 돈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퇴출을 당해도, 권력에서 밀려나도, 나이 들어 늙어도, 자녀들이 다 떠나도, 돈만 있으면 괄시받지 않고,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돈이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일까요? 옛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자기 마을에 온 나그네가 아주 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나그네로부터 그것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그 사람은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그 보석 때문에 불안해 진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이야기일 뿐입니까? 가질수록, 높을수록, 넓을수록, 그만큼 더 불안하고 더 편치 못한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닙니까?

뿐 만 아닙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들도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도버해협의 벨기에 국경에서부터 독일을 지나 스위스 국경지역까지 총 연장 약 750km에 이르는 대대적인 국경 방어선을 만들었습니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약 10년 동안에 걸쳐 세워진 이 방어선을 그들은 “마지노선”(Maginot Lin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마지노선은 우리의 군사분계선처럼 철조망이나 장벽이 아니었고, 요새를 서로 연결한 일종의 요새의 연결체였습니다. 이 마지노 요새에는 당시의 토목 축성 기술이 다 집약되었고, 지리와 지형을 잘 이용했으며, 완전한 지하 설비와 대전차 방어시설 및 최신식 무기를 갖추어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아무도 이 방어선을 넘을 수 없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 5월, 독일 기갑부대의 전격적인 기습작전으로 마지노선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통령 한 분은 말 그대로 안전하다는 궁정동의 ‘안가(安家,안전가옥)’에서, 국가와 국가 원수를 안전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자, 소위 ‘대통령의 사람들’인 육군참모총장, 대통령 경호 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해되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된 것이죠.

이렇게 역사는 인간이 만든 보호막이 아무리 강력하고 안전하다고 해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것, 그래서 우리를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고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드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는 곳은 없는 것입니까?

2. 가장 확실한 안전지대

1) 극도의 위험에서 구원을 체험한 사람의 노래

오늘 읽은 시편 46편은 ‘고라’라는 분의 후손인 어느 사람에 의해 쓰여진 시입니다. 이 시가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옛 이스라엘 국가인 유다 나라의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해 왔을 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역대하 20장). 적들의 공격을 받은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에게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기도 이후에, 적진에서는 아주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3개 부족의 연합군이었던 적들이 자기들끼리 분열이 일어나서 서로 죽고 죽이는 바람에 이스라엘과 제대로 전쟁을 치루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역시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 왕 때(역대하 32장),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 왔는데, 그때 역시 군사적으로 절대적 열세이었던 히스기야 왕과 그 나라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영문을 알 수는 없으나, 앗수르 진영의 사령관과 부대장들, 그리고 군인들끼리 역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편 46편은 이 두 사건 중, 어느 것과 연관이 되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가가 극한 위험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 위험을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을 물리친 일을 체험한 사람들이 부른 노래라는 것입니다.

2) 그의 노래의 내용, 보호하시는 하나님

그들이 부른 노래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환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큰 환난 중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환난"이라는 말은 강탈하는 적이 가까이 다가올 때 느끼는 극도의 공포심, 격렬한 내적인 혼란, 그리고 그것은 첫 아이를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비교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인은 사방에서부터 조여오고, 그리고 그 정도가 상상을 넘어서는 큰 어려움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과 3절에서는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라고 말하는데요. 이것은 엄청난 자연 재앙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현재 시인의 삶의 현실, 즉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뿐 아니라 가정적으로나 또 그의 내면적으로 ‘모든 것이 혼란, 무질서, 불안, 두려움의 상황’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적국의 공격으로 나라만이 아니라 한 가정과 개인까지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 가운데 있었고, 또 적군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어서 식량이 조달되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에게 유언장이라도 써야할 그런 상황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짐작이 되시지요?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도리어 안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두려워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절, ‘하나님이 피난처시며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7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피난처라는 것은 적이나 그 어떤 위험이 미치지 못할 안전한 곳을 의미합니다. 그가 이렇게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만큼 그의 체험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즉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적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포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들 가운데 자중지란이 일어나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성경은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의 크기보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님의 힘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여러분의 현재 상황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아무리 큰 환난이나 위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람이다.’ 이것이 지금 그의 고백이고 확신입니다. ‘내 인생길의 인도자가 되신 하나님, 내 삶의 목자가 되시며 빛이 되시며 구원이 되신 주님, 나의 피난처요 힘이신 하나님, 이번에도 제게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처럼 이번에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지금 시인의 고백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은 분명 지금 그가 당하는 위기를 넘어서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게 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4절에 보면,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시냇물이 흘러 그 주변 땅을 옥토로 만들듯,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는 백성들의 삶의 자리와 가정을 축복하여 번영을 이루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또한 5절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중에 계시면서 자기 백성의 삶의 자리, 생활터전을 지키시고 번창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의 분위기는 5절부터 앞부분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용한듯하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사랑이 표현되기도 하고, 9절처럼 아주 격정적인 사랑도 표현됩니다.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그러고 나서 10, 11절에서 이 시의 결론이 나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너무나 바쁘고 급하게 살아가며, 그러면서도 현재와 미래와 돈과 건강과 자녀 등에 대해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그 모든 것에 대해 ‘안심하라, 편하게 마음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힘들지? 쉬어라. 내가 있잖아. 내가 너와 함께 한단다. 내가 너를 지키고 인도하지 않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경험한 사람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그대로 믿은 사람들도 그의 경험 그대로 체험했습니다.

3)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키십니다!

우리 교회를 처음으로 찾으신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백성의 곁에 서서 그들의 힘이 되어 의지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환난을 당할 때에 큰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다른 부분에도 보면 “하나님이 피난처이십니다”라는 표현이 8번 나오고,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도 ‘피난처’라는 단어가 26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는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이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사25: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3-4)."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 2)."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란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시32:7)."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큰 환난을 당했던 ‘프레더릭 놀란’이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사람들로부터 피하여 언덕과 골짜기로 쫓기고 쫓기다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친 나머지 붙잡힐 각오를 하고, 한 쪽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그 거친 땅에서 피할 곳은 그 동굴밖에 없었고, 그 동굴은 그를 쫓는 자들도 잘 아는 곳이었습니다. 동굴로 들어간 그는 곧 자신이 붙잡힐 것이고, 그리고는 죽게 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거미 한 마리가 동굴 입구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조그마한 거미가 동굴 입구에다 멋지게 거미줄을 쳐버렸습니다. 잠시 후, 그가 당연히 동굴 안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쫓아왔던 사람들이 동굴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굴 입구에 쳐진 거미줄과, 그 거미줄이 뜯겨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란이 그 동굴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가 이 위험에서 구출 받은 뒤, 동굴에서 나와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가는 거미줄도 두터운 방벽이 되고,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두터운 방벽도 한갓 거미줄일 뿐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자에게는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 저희 교회를 처음으로 찾으신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더 이상 이 땅이나 사람의 것에서 안전한 곳을 찾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만이 가장 안전한 곳임을 알고 그 신앙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한 사람은 소망이 있고 해답이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은 고생을 자초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안전지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은 어디나 안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곳은 아무리 튼튼하고 완벽한 장치가 있다고 해도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피난처 있으니 ․․․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피난처는 어디일까요? 육신이 안전하다고 전부가 다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안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자녀들까지 안전해야 합니다. 또한 그곳은 이 땅의 일과 인간사와 전혀 별개로 떨어져있는 이상촌도 아닙니다. 이 땅에 이상촌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인간사의 모든 일이 오고 가지만, 때로는 시련도, 질병이나 사고도,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도 일어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안전을 느끼고 또 실제로 안전한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피난처를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거기서는 여러분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육신도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과 어린 자녀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여러 문제들, 난관들, 시련과 아픔들, 그리고 인생의 여러 도전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가운데 있다면 손 하나 대지 않고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여러분의 피난처로 삼아 알 수 없는 것이 많은 미지, 불안, 그리고 위험이 도사린 여러분의 삶이 안전할 뿐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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