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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 우리의 왕 (렘 23:1-6, 골 1:11-20, 눅 23: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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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우리의 왕 (렘 23:1-6, 골 1:11-20, 눅 23:33-43)

1.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대부분 외국의 것 즉 18세기 영. 미 계통의 부흥성가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이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반역이 된다고 할 만큼 문제성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 찬송가 94장은 제목이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그래서 1절에는 설명하기를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 우리 기쁨 되시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찬송가에는 제목이 “예수 누구신고 하니”라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읽게 되면 엉뚱한 문장이 됩니다. 즉 “예수님을 누군가 신고했다.”는 말로도 읽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현재 제목처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오늘 나에게 누구이신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당신이 예수께 대하여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의 신앙을 판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매우 기뻐하시면서 “네가 복이 있다....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천국 열쇠를 주겠다.” 등등 엄청난 축복과 보장을 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여하에 따라서 제자들의 신앙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처음부터 예수님은 그 정체를 철저히 은폐하신 체 활동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거나, 병 고침을 받거나, 놀라운 이적기사를 접했을 때 사람들이 한결같이 물었던 것은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백하게 자신의 모습을 들어 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을 보내시면서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하기 까지 하셨습니다. 참다못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예수께 보내서 “언제까지 우리를 미혹하려느냐? 당신이 누구인가 분명하게 말하라.”고 다그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빌라도나 헤롯 또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결국 예수님을 체포하고서도 “네가 누구냐?”라고 심문하였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매우 예민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은 “내가 왕이니라.”고 대답을 하시면서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추장이 자기 딸이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자기 곁을 떠나 선교사로 가는 것을 보면서 “예수여! 내 사랑하는 딸을 빼앗아가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고 울면서 절규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의도하건 못하건 간에 이 질문 앞에 서야합니다. 그리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 대답에 따라 그의 영원한 운명이 좌우되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과연 누구십니까?


2. 아까 말씀드린 우리 찬송가 94장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제목아래 상당히 많은 것으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2절에는 “약한 자의 강함, 눈 먼 자의 빛, 병든 자의 고침, 죽은 자의 부활, 우리 생명 되시네.”라고 했습니다. 3절에는 “추한 자의 정함, 죽을 자의 생명, 죄인들의 중보, 멸망자의 구원, 우리 평화 되시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는 “온 교회의 머리, 만국인의 구주, 모든 왕의 왕, 심판하실 주님, 우리 영광되시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교회력 마지막 주일임과 동시에 “왕 되신 예수 주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처음에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와서 묻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베들레헴으로 가서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생애는 가난과 박해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결국 체포되시고, 재판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옛날 이사야 선지자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철저하게 외면당하시고, 버림 받으셨습니다. 왕이 될 성 싶었을 때는 “죽기까지 따르오리.”라고 맹세했던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는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왕은커녕 예수운동은 그로 끝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본문을 보십시오. 37절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 자신부터 구원해 보라.”고 하면서 조롱하는데 38절에는 이런 무력한 죄수에게 “유대인의 왕 예수” 죄 패를 써서 붙였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것도 당시 통용되던 히브리어, 그리스어, 로마어로 써서 붙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왕으로 태어나셔서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셨는가하면 마지막으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그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빌2:에 보면 이 예수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큐리오스)로 시인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마침내 계17:14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 주의 주, 만 왕의 왕”이라고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까 94장 찬송가 4절에 “온 교회의 머리요, 만국인의 구주요,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오늘 골로새서에 나온 말씀입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설명하기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몸인 교회의 머리, 만물의 으뜸”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1:에 보면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 중에 계시지만 세상 마지막에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그리고 주님도 성경 맨 마지막에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3. 그러면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 물어 보십시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분이 지금은 만 왕의 왕이시오, 만 주의 주이십니다. 그리고 장차 심판 하실 주님으로 세상에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십니까? 예수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모시고 사십니까?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누가복음 본문에 보면 왕이신 예수께 대한 이야기가 전혀 우리의 상식을 깨고 있습니다. 그는 화려한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는 왕의 보좌가 아니라 극악한 죄수가 달리는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디언 추장이 선교사로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십자가를 향하여 “예수여, 거기서 내려오십시오. 거기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달려야할 자리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처럼 내가 서야 할 그 자리, 심판의 그 자리에 주님이 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조롱하며 소리쳤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그렇다면 먼저 네 자신부터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네 자신부터 구원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믿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무력한 자의 모습으로 거기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제자들이 낙심천만이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들을 맡겼는데 이런 비참한 최후를 보고 버리고 도망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 제자들 사이에는 이제 예수께서 왕이 될 것으로 알고 미리부터 높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서로 “누가 더 크냐?”는 파워게임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타이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세상의 임금들이 “섬김을 받는 왕”이라고 한다면 예수 우리 왕은 “섬기는 왕”이십니다. 이것이 하늘나라 질서요, 구원의 질서요, 살리는 질서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섬김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요새 말로 예수님과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겼던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쉬운 성경에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며, 그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십시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두 사람의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한 사람은 그 와중에서도 예수님을 비웃으면서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도 살고 우리도 좀 살려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이 사람을 꾸짖으면서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참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자기와 함께 잠시 후면 십자가에서 운명하게 될 입장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과 꼭 같이 피를 흘리며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다른 죄수가 말한 것처럼 무슨 기적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께서 왕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죄수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바로 이분이 나중에 저 빌라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왕을 심판하실 만 왕의 왕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니 그에 앞서 지금 이 예수님은 자기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생명의 촛불이 꺼지기 전에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여!” 로마서에 뭐라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십자가 이후 최초로 구원 받은 사람이 이 죄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그런데 왜 부르지 않으십니까? 저 십자가의 죄수에 비하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왜 이 복을 외면하십니까? 어떤 어려운 경우에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넘치는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예수 이름을 불렀던 십자가 죄수의 소원은 너무도 소박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단지 기억이라도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소박한 기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나와 함께”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응답입니다. “낙원에 있으리라.” 바로 그 순간 십자가의 그 죄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우리 왕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여러분에게 샬롬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왕이신 우리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으심으로 형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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