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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2) (요 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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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D90년대의 요한 공동체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만 지적하자면 첫째는 불신 유대인들의 비난과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헬라 철학적인 이단을 막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90년경부터 [셰모네 에스레]라는 그들의 십 팔 개 조항의 기도 가운데 열 두 째 항을 바꾸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면서, 신자들을 공격하였다.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지주의 가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됐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이셨던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요한공동체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그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가지고 예수의 기적들 일곱 가지를 뽑아 소개하였고 거기에 뒤따르는 예수의 긴 강론들을 첨가해 준 것이다. 그 표적들은 하나 하나가 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고도 남을 사건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은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예수에 대한 그릇된 인식들이 있어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무슨 하나님이냐고 하면서 그 신성을 부인한다.

예수는 하나의 훌륭한 사람이요, 고작 해서 성자의 하나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의 신성을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그의 인성을 말하려고 하지 않거나, 거기에 대해서는 희미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마르다는 나사로의 부활을 보기 전에 예수의 말씀만 듣고 예수를 바로 고백하였다. 예수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요20:29). 마르다는 복있는 사람이다. 베드로가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을 했을 때 '네가 복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마 16:17).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바로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사람만이 알 수 있기에, 베드로나 마르다는 복있는 자라는 말이다. 우리는 다 예수를 보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기에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3. 마리아와 그를 따라 온 유대인들 다수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서 예수를 믿었다. 도마가 예수의 못 자욱과 창 자욱을 보고야 믿었던 것처럼 그들도 보고 나서 믿을 수 있었다. 그것 역시 복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보고도 안 믿었기 때문이다.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결국 믿게 됐다는 것이 행복이다. 믿음은 결단이라는 말이 옳다. 같은 사건을 같이 보고도 안 믿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보고 믿든 안 보고 믿든 결국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께서 복주신 사람들만이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그들을 따라왔던 유대인들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 그들은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서 더 확실한 부활신앙을 가졌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다만 성경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을 읽고 믿는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는 다 보지는 못하고 믿는 자들이다. 우리에게 들려 오는 음성은 "너희야말로 복있는 자들이다" 하시는 말씀이다. 이 복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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