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시 100:1-5, 살전 05:16-18, 눅 17:11-19)

첨부 1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저는 그 동안 듣지 못하던 말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최근에 아내가 들려준 속담입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듯 싶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손발뿐이 아니라 온몸이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헛수고만 하다가, 나중에는 아주 불행하게 되어 인생을 비극으로 마치게 됩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입을 걱정은 아예 할 필요가 없었고, 먹거리도 사방 천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손을 들어 따먹을 수 있는 과일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잠자리 물론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디서든지 누우면 안방이고, 일어나 앉으면 응접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하고,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다가 그만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서 손발이 고생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보다는 마음에 품은 욕심이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큰 고생을 하게 합니다. 정말입니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나, 그 욕심이 조금만 지나쳐도 갖가지 재앙과 불행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감사와 감격하는 마음은 별로 없이, 계속 욕심만 부리며 살게 될 경우, 진실로 불행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구원받지 못하여 죄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의 모습이 되고 말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나병 환자 열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자신들의 병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아무 주저 없이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가 나았다는 것을 보여라”하고 말씀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병환자들에게 있어서, 정작 고침 받아야 할 부분은 육신적인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의 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고침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는데,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의 예(禮)를 올린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한 사람에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고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눅17:19)』 그러니까, 육신만 온전케 된다고 해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은혜를 입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에 걸려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의 말씀인 누가복음 17장에서, 읽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께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어야,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이며 사람다운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ㄱ.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고
ㄴ.우리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며
ㄷ.우리는 그의 백성으로서, 그가 기르시는 양떼들이기 때문이라고, 시편 기자는 100편 1-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ㄱ.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며
ㄴ.감사한 마음으로 찬양 노래를 부르고
ㄷ.감사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송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도 살전 5:18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지으시고 늘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감격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특히, 죄 중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그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얼마나 고마워하고 감격하며 살고 있는지요

1.참된 감사와 감격이 부족한, 불완전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눅 17장의 말씀을 보면, 열 명의 나병 환자가 병 낫기를 청했을 때, 그들 모두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명만이 주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열 명이 모두 나음을 입었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하건만, 그 중에서 한 명만이 주님께 찾아와 감사의 예를 드렸으니, 이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 감사의 예를 드리는 일이, 무엇이 그리 힘들다고 마다했을까요 병 낫기를 소원하며 몸부림쳤던 것에 비하면, 그 노력이란 ‘새 발의 피’에 불과했을 텐데 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고, 육적인 일에 치우쳐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몸도 건강해야 하고, 어느 정도 지적 수준도 있어야 하며, 물질적인 여유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영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인간의 특성인 것입니다.
①그런데, 사람들이 그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까닭에, 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드린 <고백의 기도>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에 은혜인 줄 몰랐고, 그 긍휼하심이 넘치기에 감사조차 잊어버렸노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돈 주고 얻는 것이 아니고 땀 흘려 일해야만 얻는 것이 아니기에, 그 고마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ㄱ.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모든 것은 그의 것임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ㄴ.그리고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근모 박사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작 과학자들은 과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비과학자들이 ‘지금은 과학 문명 시대’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 박사의 말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어찌 부모의 은혜인들 기억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인간을 어떻게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먼저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데,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인 우리를 고마워할 줄 알겠습니까 자식을 아무리 잘 가르쳐도, 내가 먼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그 가르침이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이웃에 대하여 고마할 줄 모른다면,
ㄱ.그 인생은 참으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심령이 병든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심으로써 온전케 된 사람은, 주님께 찾아와 사례를 드린, 그 한 사람뿐입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도 분명히 육신의 질병은 고침 받았지만, 그 영혼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약 2:26 말씀에서『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몸은 죽은 몸』이라고 했으니, 육신만 멀쩡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마음에,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그는 죽은 영혼입니다.
ㄴ.사실 그렇습니다. 감사와 감격이 없는 삶은 죽은 목숨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으니, 무슨 살맛이 나겠습니까 그리고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간의 도리도 다 하지 못할뿐더러,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니,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산들, 도대체 이 세상에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했습니까 그러나 너무 기분 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 앞에 나아 와 앉았으니,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이 순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인 줄 알고 감사를 드리는 이 순간만큼은 성령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게서 떠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물질을 찬양하며 세상 학문을 더 높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변덕을 부리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지, 하나님께서는 변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성실하게 따르면, 그야말로 만사가 형통입니다. 탈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 진리를 거역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0편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①여호와는 선하시고 자비하시며, 진리와 사랑이 영원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ㄱ.그의 선하심과 자비하심, 그리고 그 진리와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ㄴ.그 모든 것이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 그리고 내일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그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이론을 펼지라도, 하나님은 변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 진리를 부정하려 드는 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인 고로, 아예 그런 미련한 장난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이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②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ㄱ.여러분도 알다시피, 하나님은 인간을 가장 거룩하게 지으셨습니다. 만물보다 으뜸가는 존재로 창조하시고 모든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한다고 해서, 무슨 해로운 일이 생긴다고 말이지요.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 그만큼 인간은 더 큰 복을 누리게 됩니다.
ㄴ.하나님은 우리를 늘 변함없이 돌보십니다. 자식을 낳기만 하고 버리는 부모가 있다던데, 그리고 배속에 있는 아기가 딸이면 끊어 버리는 부모들도 있다던데, 하나님은 결코 그처럼 무책임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지으셨기에, 끝까지 돌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를 저버린 채, 제 멋대로 살겠노라고 고집 부리면, 주님께서도 어쩌지 못하십니다. 돌아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시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내하심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만드신 후에 계속 돌보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도망갔던 사람들이 죄 짓고 돌아올 때에는
③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온전케 하셔서,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이런 하나님께 어찌 감사와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주의 말씀을 듣고 새롭게 되어,

3.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셨으니, 우리 또한 조건 없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가 어느 해에 무우를 밭에 심었더니, 농사가 잘 되어서 거의 사람 몸뚱이 만한 무우를 수확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잘된 무우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는 원님의 선정(善政)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우를 잘 포장해서 원님께 갖고 갔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최근 들어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 온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우 한 개를 바치고, 그 대신에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우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이번에는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택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하인을 불러 요즈음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하는 말이,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님은 그 무우를 이 농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농부는 별 수 없이 무우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①하나님께 대하여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회복해야, 온전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바로 깨닫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는 온전한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ㄱ.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으신 분이고, 지금도 우리를 돌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ㄴ.더군다나, 하나님의 돌보심과 그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②주님 앞에 나아 와 예배 드릴 때에,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ㄱ.주의 날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소홀히 여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 날은,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아주 귀중하고 복된 날임을 기억하고, 참 감사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 와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ㄴ.예배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③범사에 주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살전5:18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고난과 시련이 불행일 수밖에 없으나, 믿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결코 불행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여 온전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보호하심과 그 은혜 안에서 살게 되면, 무엇이든지 헛될 게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쪼록, 믿음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