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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신앙 (사 25:6-9 고전 15:1-11,요 20:1-18)

첨부 1


본문은 1-5절의 ‘감사’ 시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6-8절은 만민을 위한 잔치에 대해서, 9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 이루어질 만민의 구원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연관된 것입니다.

 .6절(만민을 위한 잔치):만민을 위한 구속의 잔치가 시온산에서 베풀어집니다.

이것은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은혜요 특권입니다.

 .8절(사망을 멸하심):“멘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고전15:26)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사망의 권세는 깨뜨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계21:4)

.9절(구원에 대한 찬양):그날 구원받은 백성들은 구원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1-11 고전15:0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15:0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0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0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0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고전15:06 그 후에 오 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고전15:0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0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0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서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본질과 내용을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 온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부 부활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자들에게 그 구체적인 증거를 내세웁니다.

주님은 게바에게보이시고, 열 두 사도에게, 오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그리고 바울에게 친히 보이셨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본 자들이 지금도 태반이나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의 순전하신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18 요20: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의 정황을 보다 분명하게 증거 하기 위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1-10절은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와 두 제자의 무덤 방문,

11-18절은 계속 동산에 남아 있던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주님의 무덤을 찾았으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에게 보고하게 되었고, 보고를 들은 이들은 곧장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무덤을 찾아가 봤을 때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묻자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등뒤에 예수님께서 계셨지만 그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요한의 이 기록 속에서 ‘부활’ 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경험과 이성 체계 속에서 얼마나 믿기 어려운 사실인가를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야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마리아는 ‘내가 주를 보았다“고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 자로서 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서론” 기독교에 부활 신앙이 없다면 다른 종교와 비슷하게 윤리적 차원의 종교로 전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존재 근거요, 타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기 정체성을 갖게 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기독교는 이 부활 신앙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로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정 의 보통의 인간들은 현세의 삶에 모든 가치와 기대를 두면서도, 그 이후에 대해서는 부정하려 듭니다.

 또한 자신의 경험과 이성적 틀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사실은 쉽게 믿으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능히 살려 내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능력을 신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분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 셨듯이, 우리도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살아날 수 있음을 믿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동기부여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 모두 배신하고 그 곁을 떠났던 것입니다.

고기잡으로가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문들을 닫아 걸고, 두문 불출 하면서 그리고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그들이 이제는 생명을 내어놓고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그들에게 이제 고난과, 역경과, 죽음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요 두려워할 것도 아니였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줍니다.

부활은 신앙적 용기와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죽음을 초월한 용기는 아름다움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그러기에 부활 신앙은 우리 믿음의 가장 핵심적 자리에 위치해야 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방법론1).부활은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는 것(죽음 이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2).부활은 예언의 성취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전15:3-4)“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은 이미 예언된 것을 하나님게서 이루신 것입니다.

 3).부활은 역사적 사실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20:29)“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4).부활의 소망으로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요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혹시 우리가 생활의 삶속에서 염려와, 낙심과, 절망이 있더라도, 오늘 이 시간 부할의 믿음 안에서 낙심과, 좌절을 버리고, 새 소망으로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결 론” 오늘의 현실 속에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외모로 볼 때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어미 닭이 계란을 부화할 때까지 품고 있는 계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21일이 지난 후 어떤 계란에서는 노란 병아리가 나오고, 어떤 것은 병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깨뜨려보면 그 속은 썩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쪽 계란에는 생병의 씨눈이 있었기에 부화되었지만, 씨눈이 없는 계란은 썩고 만 것입니다.

 오늘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겉으로 보아서는 별 다른 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눈을 가진 자는 생명의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사망의 썩어짐으로 나뉘게 된 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부활과 생명이 되신 주님 감사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오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의 나약한 믿음에 새 생명력을 주옵소서, 어두움의 빛을, 거짓의 진리를, 불의한 곳에 정의를, 그리고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들로 살게 하옵소서, 부활의 신앙으로 언제나 승리하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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