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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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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에 뒤이어 황제의 양위를 강요했고, 광무라는 연호를 륭희로 고치며 이번 기회에 한국인의 수족을 얽어매려고 소위 '7조'이라는 것을 체결하였다. 융희 황제의 즉위식 후에 만일을 염려하여 일본이 서둘러 시행한 것은 한국인 군대를 해산하는 일이었다.

해산 당시에 일본군의 경비가 삼엄했으나 서소문 안의 병영에 있던 시위(示威) 제 1대대장 박성환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본 군인이 무슨 면목으로 산단 말인가' 하고 자기 목을 칼로 찔러 자살하였다.
이것을 본 부하들은 상관과 같이 죽기로 결심하고 무기고를 깨뜨려 무장하였다. 이를 계기로 제2연대 제1대 대도 가담하여 무장을 하고 일본군을 공격하여 시가전이 벌어졌다. 웅전하여 오던 일본군들과 서소문에서 전추를 벌였다.
그때 전사한 가치하라 일본군 대위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내가 일청, 일러 전쟁에서도 죽지 않았다가 다 썩어빠진 한국병에게 죽다니 억울하다'하면서 쓰러졌다. 박성환과 가치하라는 같은 무렵에 죽었으나 그 의미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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