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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로 나가라 (호 02:14-20, 엡 03:8-13)

첨부 1


호세아 예언자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을 시작하던 때는 여로보암 2세 통치 말기와 그가 죽은 주전 746년 이후에 계속 일어난 왕실내의 정치적 싸움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도에 달한 때였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앗수르와 애급같은 열강들의 위협이 뒤따랐고, 종교적으로는 바알숭배와 종교혼합주의 현상이 만연했고, 제사장들은 자기의 책임을 망각한채 타락하였던 때입니다.
호세아가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이스라엘의 죄는 야훼 하나님을 떠나 그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다른 우상에게 미혹되어 저지른 종교적 간음죄입니다.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4:12)

바알종교의 유혹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 매우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그가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이 풍성한 수확은 하늘과 땅의 접합(接合)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알 신당에는 성녀(聖女)들을 두고 매음행위를 일종의 종교의식으로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이 바알숭배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하였고, 오로지 물질 문명만을 추구하며 육체적인 향락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수확되는 모든 것이 다 바알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호 2:5). 이런 잘못된 신앙에 빠져 들어간 백성들을 보고도 이들을 바로 지도해야 할 제사장들 마저 타락하여 저들은 그저 제물 먹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절기를 따라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지만 그런 제사는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것이었습니다(6:6).
결국 이스라엘 자손들이 야훼 하나님을 떠나 바알에게로 기울었다는 것은 그들이 광야에서 배운 영적인 생활 대신에 물질 문명에 도취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보여주신 미래의 세계를 바라보고 나가는 대신에 현재의 달콤한 물질 문명에 몰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들이 거친 광야에서 배운 율법의 정신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결과 절제와 경건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미래의 구원의 역군으로 동참하여야 한다는 그 사명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와같이 달콤한 물질 문명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떠나버린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죄악을 범한 자에게 가차없는 응징과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자기 자녀들의 이름에서 "로루하마"와 "로암미"로 나타냈던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긍휼을 받을 수 없는 백성,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백성이 되어버리는 극한적인 심판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사실상 죄악을 저지른 자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세아가 본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응징과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그러면 범죄한 이스라엘을 무조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요 계약을 맺은 백성임으로 비록 저들이 배신을 하였다 할지라도 무조건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가 비록 사랑의 하나님을 증언한 예언자라고 하지만 그는 결코 야훼 하나님을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관념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때로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였습니다. 그 심판이 때로는 좀이나 썩음같이 서서히 임할 것이요, 때로는 덤비는 사자같이 갑작스러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칼과 전염병, 또는 기근과 불이 에브라임을 멸망시킬 것이며, 죄로 말미암아 옛날의 애급의 고통이 재현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심판하시지 아니하고 무조건 용서하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실까요 본문에 보면, "내가 저를 꾀어 내어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曠野)로 유혹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그 입에서 바알의 이름을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리고 나가면 저들이 지금 빠져있는 바알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보셨던 것입니다.
광야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매마른 땅입니다. 뜨거운 태양만이 작열(灼熱)하는 곳입니다.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는 곳입니다. 이런 거친 광야로 나간다는 것은 현재의 모든 안락한 삶의 탈피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 광야로 이끌어 내시는 뜻은 저들을 완전히 회개하게 하여 새롭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몇가지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끌어 내시려 하는 것은, 저들이 빠져 있는 바알숭배, 곧 물질 문명의 삶에서 빠져 나오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물질 문명이 인간을 안락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잠들게 만들고, 육체적인 향락과 도덕적인 부패와 역사의식의 상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도시문명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심판은 바로 도시문명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의 심판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4백년 동안이나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게 하셨는데, 그 종살이를 통하여 애급 문명의 잔인함과 착취와 억압이 어떠한 것인지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애급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것이요, 물질 문명의 상징입니다. 그것을 쌓기 위해서 히브리였던 이스라엘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가를 회상한다면 이스라엘은 그런 물질 문명을 끝까지 거부하는 민족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급에서의 교훈을 따라 처음에는 왕국조차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변화로 왕국을 세우게 되면서 광야의 정신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화려한 성전과 자기의 궁전을 건축하는 대 토목공사를 완료하였을 때 이스라엘은 번영의 전성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민족의 분열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그후 그 화려한 모든 건축물들은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속 광야로 불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은 계속적으로 광야의 역사를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도 그는 물질 문명과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물질 문명이 몰락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 보다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물질 문명을 상징하는 바벨론의 파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극도에 달한 물질 문명은 이미 그 모순을 들어내고 있으며 그 문명의 결과로 이 지구가 파괴되어 가고 있을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세계가 황폐화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는 길은 다시 광야로 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로 광야로 나갈 것을 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절약과 검소와 절제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삶이란 우리가 가난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아끼고 재생하여 쓰고 버리는 것이 없는 삶을 상징합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광야로 나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 문명의 찌꺼기들로 인하여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유혹해 내시려는 것은, 저들에게서 도시문명의 모든 잔재(殘滓)들을 털어내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기억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거친 광야 한복판인 시내산에서 저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거친 광야에서 저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주시는 만나와 그가 주시는 샘물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거친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계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거친 광야 가운데서 문명에 물들지 않은 이스라엘은 율법이 지시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의미를 올바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와 도시 문명에 접하면서 그들의 정신은 흐려지고 율법이 지시하는 삶은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되어 거기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안락한 삶이 율법같은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광야생활에서는 서로가 평등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가 협력할 수 있었고, 서로가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경생활로 들어 오면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되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가 이루어지게 되자 율법에 지시한 이웃 사랑이라든지, 형제로 이웃을 만나라는 정신은 모두 지켜질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광야로 이끌어 내어 율법의 근본정신을 깨우치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곤고(困苦)하였던 시절에는 우리가 열심히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려고 힘썼지만, 그 때를 벗어나자 우리의 신앙은 점점 나태해지고 교만해지며,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도시문명은 우리의 신앙을 시들게 만듭니다. 물질 문명은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독소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안락하고 분주한 도시생활은 우리를 기도의 생활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부요한 삶은 우리의 겉사람만 살찌게 할 뿐이지 우리의 속사람은 점점 시들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 얼마나 열심이었고, 얼마나 간절했었는가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 좀 살기 좋아졌다고 해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또 얼마나 신앙과는 거리가 먼데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다시 광야로 나가지 않으면 이 물질 문명의 파멸과 더불어 거기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늦기 전에 광야의 신앙을 되찾으라고 우리에게 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끌어 내시려는 것은, 저들이 잃어버린 역사의식(歷史意識)을 새롭게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알숭배는 미래가 없습니다. 역사가 없습니다. 그저 오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대의 선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달콤한 유혹에 빠져 저들의 미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미래의 구원을 위해 오늘의 고난을 감수해 가야 한다는 가치관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렸습니다. 현실주의, 쾌락주의의 문화의 가치는 오늘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찰라적인 가치관을 깨시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미래를 보여 주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 내시어 다시 한번 그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시려 한 것입니다. 거친 광야에서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갈 때 역사가 무엇이며, 그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미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광야 생활의 고달픔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시려고 그들을 광야로 불러 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알신앙에 빠져 역사의식이 몽롱(朦朧)해지고 그래서 오늘의 삶에 만족하면서 그것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가는 자들인데, 오늘의 안락한 삶을 위해 미래의 이상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우리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미래의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마땅할텐데, 우리는 오늘 나의 배부름을 위해 우리 후손들의 미래까지 저당잡힌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광야로 불러 내시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시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알문명인 도시문명에 찌들어 있는 우리 자신을 한번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문명이며, 우리의 영혼을 시들게 만드는 마귀의 문명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마지막 날에 모두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이 물질 문명에 대해 비판없이 받아드렸던 잘못을 회개하고 거기서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광야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풍요(豊饒)하게 해 줄 수 있는 광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나태하고 안이해진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기위하여 고난당하여 울부짖던 그 옛날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던 광야의 시절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음껏 쓰고 마음껏 먹는 문명의 삶이 이제는 괴물로 변하여 우리를 삼키려는 때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는 생활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끝간데를 알지 못한채 사치와 방탕과 향락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사회를 볼 때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여기서 벗어나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광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이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광야의 신앙으로 영혼을 새롭게 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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