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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언자들의 고통 (사 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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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등장하고 있는 <예언자> 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특별한 소명을 가 지고 백성들에게 보내어진 하나님의 사자들이었습니다.하나님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예언자들의 삶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음직 합니다.그러나 성서의 예언자들은 지도층과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으며 그들의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수가 있습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언자들의 고통> 입니다.그들은 고통과 번뇌의 사람들이었습니다.어떤 의미에서는 성서의 예언의 역 사는 <고통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예언자들의 삶은 고통의 삶이었습니다.우 리는 오늘 이 시간에 예언자들이 당한 고통을 함께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누가 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언자들은 고 통에 직면해서 어떠한 반응을 보였으며 또한 자기에게 닦치는 고통을 어 이해하 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가하는 점들입니다.

 예언자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의 첫단계는 ;비방과 혹평 =입니다.(예레미아12:6) 에 ;그들까지도 뒤로는 너를 큰소리로 헐뜯으며 배신하지 않았느냐 =고 기록하고 있 습니다.비방이나 혹평은 받은 사명을 실천에 옮기려는 예언자를 시시로 실망에 빠뜨 렸습니다.그러나 비방이나 혹평으로도 예언자의 사명감을 좌절시키지 못할 때에는 좀더 강한 조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은 곧 <함구령>입니다.(예레미야 11:21)에 ;네가 우리 손에 죽지 않으려거든 야웨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아라 = 함구 령을 내렸습니다.그러나 함구령으로도 예언자들의 사명을 막을 수 없게 되자 권력층 들은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을 막기위해 <추방>을 하였습니다.(아모스 7:12-13)에 ;계시를 보는 사람아 너는 여기를 떠나 유대나라로 피하라 베델에서는 더이상 예언하지 말 것이니 여기는 국왕의 신전이자 왕국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 그 러나 추방에 불응하고 추방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을 때,드디어 폭력을 사용하게 되 는 것입니다.먼저 예언자들에게 권력자들이 휘두른 것은 <체포령>입니다.(열왕기상 13:4)에 ;여로보함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베델제단을 거슬려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듣 고 제단에서 손을들어 그를 가리키면서 체포하라 고 = 명령하였습니다.(22:26)에는 ;미가야를 체포하라 =고 했고 (26:8)에는 ;예레미야가 야웨께서 온 백성에게 전하라 고 명한 말씀을 마치자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그를 체포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38:6)에 ;그들은 예레미야를 체포 =하였습니다.체포당한 예언자들은 무죄한 자로 서 <법정에 출두>하여야 했습니다.(열왕기상22:26)에 ;이스라엘왕은 명령했다 미가 야를 체포하여 그 성읍의 통치자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 넘겨라 = 법정에 고발한 뒤,범죄를 고백시키기 위해 무죄한 예언자들에게 <고문>이 가해졌습니다.(열왕기상 22:24)에 ;그때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미기야에게 다가와서 빰을 치고 호통을 쳤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37:15)에보면 대신들은 예레미야에게 진노하며 매를 때리고 나서 국무대신 여호나단의 관전에 있는 구치소에 가두었습니다.고문을 당한 예언자들은 길고도 험한 옥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열왕기상22:27)에 ;너 희는 이 자를(이 자는 미가야입니다)감옥에 가두고 내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빵과 물을 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바스홀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차꼬를 채워 야웨의 성전 윗쪽에 있는 베냐민 대문에 가두어 두었습니다(예레미야20:2) 대신들은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줄에 매달 아 근위대 울 안에 있는 왕족 말기야의 집 웅덩이로 내려보냈습니다.그 웅덩이는 물 이 없는 진흙 구덩이 였습니다.예레미야는 그 진흙 구덩이에 빠졌습니다(예레미야 38:6) 그 때 왕궁의 내시였으며 외국인이던 에디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은 이렇게 간 청하고 있습니다. ;임금님,예언자 예레미야를 그렇게 대잡하시다니 그것은 잘못입니 다.구덩이에 쳐넣어 굶겨 죽이시다니 그럴수 없습니다.이미 성안에는 빵이 떨어졌습 니다 =(예레미야38:7-13) 이처럼 예언자들의 감옥생활은 비참했고 잔인무도한 <인권유린>이었습니다.그 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감시 받았으며 아사를 면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물만 제공되 었습니다.(열왕기상22:27;예레미야37:21)그들은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지하감옥의 기 둥에 소나 말처럼 매여 있었습니다(예레미야40:1) 그들중에 어떤 이들은 속죄의 양 처럼 아무런 죄도 없이 <사형언도>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그들은 하나 님의 메시지,곧 진리를 선포했다는 댓가로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역대 하24:21)에는 ;그러자 사람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스가랴를 고발하고 왕명에 따라 그를 야웨의 성전 마당에서 돌로 쳐죽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26:23)에 는 ;그들은 에집트에서 우리아를 붙잡아 여호야킴왕에게 데리고 왔다 왕은 그를 칼 로 쳐 죽여 서민 공동묘지에 그 시체를 묻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언자들의 삶 은 그야말로 고통의 삶이었으며,예언의 역사는 한마디로 고통의 역사였습니다.그들 은 이러한 고통외에도 때때로 먼길을 떠나면서 당하는 맹수와 강도,추위등 험난한 여정이 예언자들을 위협하기도 하였습니다.험하고도 먼 길을 떠나는 예언자의 모습 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열왕기상13:23-24)에 ;그는(그는 하나님의 사람,예언자입 니다)먹고 마신 뒤에 사람들이 그가 타고 온 나귀에 안장을 얹어 주었고 그를 떠났 다.하나님의 사람은 출발하여 길을 가다가 도중에 사자 한 마리를 만나 죽었다.그 시체는 길 위에 버려진 채로 있었다.나귀는 그의 옆에 서 있었고 사자도 그 시체 옆 에 서 있었다 =

하나님의 사람인 예언자들,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이들은 고난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들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찾아 보아야만 합니다.먼저 우리는 성서 어느 곳에서도 예언자가 폭력으로 박해자들에게 대항 했다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고통당하는 여호와의 종들은 폭력에 비폭력 으로 대항했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본문 이사야 53장은 유명한 장인데 이 장의 주제가 ;고통당하는 여호와의 종 =의 노래입니다.7절 말씀에 보면 고통당하는 여호와의 종의 비폭력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 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또한 이사야 50:6절 말씀에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빰을 맡기며 수욕과 침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 니하였다고>말씀하고 있습니다.예언자들은 고통에 의연하게 대처 하였습니다.비겁하 지 않았으며 굴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 서까지 그들은 진리에 충실했고 그리고 하나님게서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2

고통당하는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깊이 명상하였 습니다.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한 고통이 주어지는 것인가 예언자들이 명상한 고통 의 의미를 세가지로 요약하여서 말슴 드리겠습니다.

 첫째의미는,사명에 대한 불성실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해 불성실 할 때 주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해석하였 습니다.욥의 친구들이 내세우는 이론에 따르면 고통은 죄의 댓가로 오는 하나님의 처벌이라는 것입니다.이러한 시각에서 예언자들은 자신을 반성하며 고통을 맞이하였 습니다.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요나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요나는 요나서1:12 에서 당신들이 이 폭풍을 만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자기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고통의 의미를 다 알수 없습니다.예언자들은 욥의 친구들이 내세우는 이론이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에 적용될 수없음을 알고 있었 습니다.그것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간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 이었습니다.

 둘째의 의미는,사명에 대한 충실함에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고통의 의미는 사명에 대한 충실함에 있었습니다.사명에 불충성할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고통을 받았지만 사명에 충실할 때는 인간들로부터 고통을 당 하였습니다.그들이 받은 사명은 인기도 없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의만 빚게 되었으 며 필연적으로 박해를 몰고온 것입니다.고통당하는 예레미야는 예레미야26: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이 죄없는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오 이 성과 이 성의 시민도 책임을 져야하오 나는 틀림없 이 야웨께 사명을 받고 온 몸으로써 이 모든 말을 여러분에게 전하여 주었을 뿐이 요> 만약 예언자에게 죄가 없다면 그 고통의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 하지 않겠는가 욥도 이와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그들에게는 사명에 충실한 죄밖에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그 렇다면 과연 예언자들은 자신들에게 닦치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아니고,예언자들도 아니라고 하면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에 게서 우리는 그 세번째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보낸 하 나님의 종이 당하는 고통을 통해, 아무 죄 없는 자가 당하는 고통을 통해 박해자들 이 반성하고 드디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을 희망했으리라고 우리는 생 각 할 수 있습니다.박해자는 예언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회개할 수 있겠다는 희 망입니다.예언자의 고통은 <회개에의 초대>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여기서 고통이 구원의 가치로 점차 전환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예언자들은 고통을 자 원하여 받아들임으로 이로써 이들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 입니다.요나는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요나의 아같은 결단이 뱃사 공들의 목숨을 구할수 있었고 이교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길을 열었습니다.즉,그들은 여호와를 두려워 하게 된것입니다.고통의 이같은 가치는 모세에게서도 나타나고 있 습니다.출애굽기 32:31-32에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3

<비옵니다.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하지만 이제 그들 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만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당신께서 손수 쓰신 책에서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요> 여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사 람의 구원을 가져온다는 사상을 옅볼 수 있습니다.이제 예언자들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가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그것은 <대속의 고통>입니다.본문은 바로 이 대속의 고통을 받는 여호와의 종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이 노래는 슬픔의 노래요 고 난의 노래이며 고통의 노래입니다.그러나 이 노래는 동시에 대속의 노래이며 구원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사순절 다섯번째 주간을 보내면서 이 대속의 고통을 기억하여야 합니다.하나 님께서는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리시고 그로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그가 고통받은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들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서 얻 고자 하는 것,그것은 우리의 회개입니다.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며,회개하고 나 의 가던 길을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께로 향하는 회개를 우리 주님은 원하고 계신 것 입니다.우리를 구원시키려는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 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3:16-18) 이제 우림는 이 사순절을 보내며 이렇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 나의 죄를 대속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당하신 주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내 죄가 모두 용서함받았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여 큰 은혜받으며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기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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