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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과 하나 되라

  •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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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하나 되라 (요한복음 1장 4-8절)


< 말씀과 하나 되라 >

 말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격이다. 본문 앞 1절에 나오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표현은 말씀이 살아 있는 인격임을 잘 나타낸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라는 표현도 말씀이 인격임을 잘 나타낸다. 말씀의 인격성과 능력을 믿으면 창조성과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왜 말씀이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는가? 말씀에 대한 상투적인 태도가 문제다.

 요새 교회 부흥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묘안과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시행되고 교회성장 세미나에는 목회자들로 넘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말씀에 집중하라. 상투적인 말씀생활을 지양하고 깊은 묵상으로 말씀을 받으면 심령도 살아나고 교회도 살아난다. 상투적인 말씀생활은 말씀을 살아있는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것이기에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한다. 상투적인 말씀생활을 피하고 말씀과 하나 되는 삶을 살라.

 참된 믿음이란 ‘말씀’과 ‘자신’이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현재 자신의 삶에서 실체화시키는 것이 믿음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을 입어 예수님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처럼 말씀이 육신을 입어 실제 삶 속에 나타난 것이 참 믿음이다. 말씀과 하나 되면 내 안에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때 창조적인 지혜와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말씀과 하나 되도록 말씀을 가까이하며 붙잡고 살라. 마귀가 낙심과 두려움을 심으려고 찾아올 때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선포하라. “이 늙은 사기꾼 마귀야! 너는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예수님의 승리는 내 승리가 되었다.” 그래도 마귀는 쉽게 물러가지 않는다. 마귀는 영혼을 넘어뜨리는 전략의 천재다. 특히 에덴동산에서 하와까지 꾀어 넘어뜨린 경험이 있기에 계속 갖가지 방법을 통해 찾아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 사실을 깨닫고 더욱 말씀 안에 거하기를 힘쓰라.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고 깨달은 말씀대로 살라. 말씀 안에 있는 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그때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 사실을 알기에 마귀는 집요하게 말씀과 하나 되는 삶을 방해한다. 그런 마귀의 전략을 깨닫고 나도 집요하게 말씀과 가까워지려고 하면 창조적인 지혜와 능력이 생기고 어떤 역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

< 생명과 빛과 사랑 >

 말씀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3대 단어가 있다. 그것은 영어로 3L, 즉 ‘Life(생명), Light(빛), Love(사랑)’이다. 첫째, 생명의 개념은 4절 전반부에 있다. “그 안에 생명(Life)이 있었으니.” 둘째, 빛의 개념은 4절 후반부에 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Light)이라.” 셋째, 사랑의 개념은 9절에 내포되어 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구절들을 통해 예수님이 생명과 빛과 사랑임을 늘 기억하며 살라.

 예전에 피곤한 상태로 밤늦게 귀가하면서 입으로 다음 말씀을 수백 번 중얼거렸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말씀에 너무 감동되어서 집에서 누워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그 말씀에 특별한 의미나 기발한 해석은 따로 없어도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소화하면 심령 속에 엄청난 힘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아침에 신선한 빛을 뿌리는 햇빛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오늘도 새 날이 되었구나.” 그 생기를 느낌과 동시에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예수님이 참 빛이란 사실은 동트는 새 날에 대한 찬란한 약속이 담겨있다. 대낮에 강렬한 빛을 봐도 뜨거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 감탄과 함께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또한 저녁노을에 지는 태양빛을 보면서도 주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성도의 삶에 희망이 넘치는 것은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예수님의 빛과 세상 빛은 차원이 다르다. 그 사실을 창세기 1장도 암시하고 있다. 창조 첫 날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했다. 그때 창조된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고 ‘참 빛’이다. 현재 사람들이 인식하는 물리적인 빛은 햇빛과 달빛과 별빛에서 유래하는데 하나님은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참 빛’과 ‘물리적인 빛’의 차이를 인식하며 늘 예수님이 참 빛임을 기억하라. 참 빛이 비춰도 어두움이 금방 물러나지 않고 때로 더 강하게 반발하지만 결국 빛이 승리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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