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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자와 거지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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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거지

눅16:19-31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쳐대지만, 사실 우리는 가장 풍요롭고 살기 좋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점은 있겠지만, 일찍이 지금처럼 소득이 높았던 때가 없었고, 지금처럼 문명이 발달하고 편리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살기 좋아질 때 나타나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질수록 사람들은 물질과 세상 쾌락을 더욱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과 세상 쾌락을 추구하는 삶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상대적인 빈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질 때 나타나는 더욱 심각한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재림신앙이 희미해지고 천국 소망을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재림신앙과 천국 소망이 희미해지면 내세에 대해 준비하는 것도 소홀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단지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고 세상 것을 최대한 즐기려고 합니다.

 

내세를 준비하라


그러나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길에 불과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결산하실 것이며, 거기서 우리의 영원한 내세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재물을 잘 사용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대한 사용해야 하며,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며,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에서 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재물에 대한 탐욕과 사람의 칭찬과 명예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은 내세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시면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부자와 나사로 비유’입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살펴봅시다.

 

부자와 나사로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할 것을 교훈하시기 위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인생이 영원한 내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매일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19절) 자색 옷은 부자나 왕족, 신분 높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특별한 날에만 좋은 옷을 입고, 특별한 날에나 잔치를 엽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부자는 매일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잔치를 즐겼습니다. 이러한 부자에 대한 묘사는 그가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부자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족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대문 앞에는 비참하고 불쌍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20-21절)


나사로는 아무도 보살펴주는 사람 없는 병들고 비참하고 불쌍한 거지였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부자의 집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라도 주워 먹고 연명하도록 그를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데려다 주었을 것입니다. 나사로의 몸은 헐고 염증이 심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여기 나오는 개들은 사람들이 기르는 개가 아닙니다. 주인 없이 떠도는 개들인데, 어디서나 이런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개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는 것은 이 거지가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죽음과 내세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와 나사로 두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자의 장례식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호화롭게 치러졌을 것입니다. 나사로의 장례식은 어땠을까요? 나사로는 죽은 후 장사되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이렇게 죽은 사람은 매장되지도 못했고 골짜기에 버려졌습니다. 부자는 사치스럽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다가 호화로운 장례식과 함께 인생을 마쳤습니다. 나사로는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의 인생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내세가 있었습니다.

이 비유는 두 사람의 죽음과 동시에 그들이 들어간 내세를 보여줍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2-23절)


이 말씀을 보면 나사로는 죽어 천국에 들어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영원한 지옥에 던져져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그처럼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즐기며 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비참하고 불쌍한 삶을 살았지만 지극히 복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부터 나사로는 영광스럽고 지극히 복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로 살면 지옥에 가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는 이 두 사람의 믿음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살았던 모습과 이들의 내세를 보면 이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매일 사치와 호화로운 삶을 즐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청지기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이웃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는 거의 매일 자기 집 대문 앞에 버려진 불쌍하고 비참한 거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부자는 너무나도 절박하게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이 거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부자도 혈육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며, 구약성경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처럼 이 부자는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풍요롭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 영원한 지옥에 던져졌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한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나사로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나사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과 지옥


이 비유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음부 중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3-24절)


부자는 지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지옥에서 천국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면서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부자의 간청을 거절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살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나사로는 위로를 받고 부자는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절)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오직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 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난과 궁핍을 당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 지킨 성도는 천국에서 큰 위로와 상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또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26절) 천국과 지옥은 왕래가 불가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에서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지옥에 멸망을 당한 자들은 영원토록 그곳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내세는 한 번 결정되면 절대로 변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내세를 잘 준비해야만 합니다.

 

부자의 두 번째 간청


부자는 또 다시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7-28절) 부자의 간청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그러자 부자는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세상에 돌아가 증언하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 부자의 형제들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부자처럼 내세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본 나사로가 다시 세상에 돌아가 자기 형제들에게 증언하면 그들이 회개하고 믿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31절)


기적과 믿음


모세와 선지자는 율법과 예언서, 즉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부자도 세상에 사는 동안 구약성경을 알았을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내세도 전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옥에 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자는 자기 형제들이라도 고통스러운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부자는 만일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그들에게 가서 내세에서 보았던 것들, 특히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면 그들이 회개하고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말씀을 듣고 잘 믿지 않던 사람들도 기적을 보면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아무리 기적을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그러나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 쫓아내신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왜곡하기까지 했습니다. 부자는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 그의 형제들에게 가서 증언하면 그들이 믿고 회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금 세상에 있는 사역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증언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요12:9-1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이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믿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볼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생긴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내세를 잘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으며,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잘 받아 즉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내세를 준비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에게 해고당한 후 살길이 막막해질 것을 생각하고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줌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대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롭게 미래를 대비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아는 세상 사람들도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열심히 준비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내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성도는 얼마나 내세를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내세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며,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영원한 내세에서 하나님께서 크게 상을 주시며 갚아주실 것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혀 재물을 사랑하고, 오직 자신의 만족과 쾌락만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받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부자는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영원토록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아마 조만간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내세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가 되어 맡겨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한 성도는 칭찬과 상을 받으며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은 부자처럼 무섭고 고통스러운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조만간에 반드시 닥쳐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내세를 잘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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