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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 명의 나병환자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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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나병환자                                  

눅17:11-19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가장 기뻐하실 때는 언제일까요?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일까요?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있을 때일까요? 열심히 봉사하고 있을 때일까요? 힘을 다해 많은 헌금을 드릴 때일까요? 선한 일에 열심을 낼 때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이 모든 일에 더욱 힘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감사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진심으로 뜨겁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셔서 천국 소망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해주신 것에 대해 뜨겁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살아가기가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돌보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기억하며 뜨겁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얼마든지 부어주십니다.


  본문에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는데, 그 중에 한 명만 주님께로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돌아와 감사한 이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은혜에 감사한 이 사람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된 믿음


  제자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 주시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


  겨자씨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이라야 진정한 믿음입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원히 멸망당할 우리를 구속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위해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주시며, 우리를 가장 선하게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연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않으며, 자신도 다른 형제 때문에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특히 형제를 끝까지 용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하는 성도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됩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이렇게 순종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때에 겸손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인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의 종일뿐임을 잊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다 해도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용서와 겸손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한 믿음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 아니 절대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 유일한 구원자 메시아로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행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모여든다 해도,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단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들


  예수님께서는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는 도중에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11절)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던 곳이며, 갈릴리는 천대 받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멸시받는 자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멀리서 예수님께 소리를 높여 불쌍히 여겨주시라고 간구했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2-13절)


  나병은 균이 관절을 녹여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며, 바늘에 찔려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병은 부정하게 여겨졌고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레위기 13-14장에 나병환자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했는데, 이것은 지극한 슬픔과 애통을 나타냅니다. 죽은 자를 애통할 때 이렇게 했는데, 나병환자는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윗입술을 가려야 했는데, 이것은 극도의 자기 비애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진 밖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기 때문에 부정한 자는 그곳에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병환자들에 대한 이 규례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례들 때문에 나병환자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을 통해 알 수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고만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렇게 달려와 부르짖었습니다.


    제사장에게 가라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4절)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대개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시거나 치유를 선언하심으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나병환자를 진단하는 일을 제사장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제사장이 진단하여, 나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면 사회에서 격리시켰습니다. 만일 나병환자가 나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보기에 나병이 완전히 나았으면, 제사장은 정결예식을 행하게 하고 속건제와 속죄제를 드린 후 가정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들에게 나병이 치유되기도 전에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실 것이므로 제사장에게 가서 확진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로 가면, 제사장을 만나기 전에 이미 병에서 깨끗함을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고침을 받음


  나병환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기 위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만져주시지도 않았고, 기도해주시거나 병이 나았다고 말씀해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 말씀이 “내가 너희를 고쳐줄 것이니 제사장에게 가서 확진을 받으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나아만은 용맹스럽고 왕의 신임을 받는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아만은 많은 예물을 준비하여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나와서 만나주지도 않고, 사환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의 만류를 듣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은 후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서 병도 고쳐주지 않으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을 때, 의심하거나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는 도중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이었는데,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명하실 때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병을 꾸짖으시자 병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불러내시자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잔잔해졌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의 나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말씀이 먼저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문제로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기도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전에 언제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이 때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응답인 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놀랍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먼저이고, 말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


  나병은 불치의 병이었고 부정하게 여겨졌으며, 전염성이 강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비참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가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이제 제사장에게 가서 나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확진을 받고, 정결의식을 행하고 제사를 드린 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 사람들은 기뻐하며 제사장의 확진을 받기 위해 더 빨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나병이 낫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5-16절)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다 치유를 받았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머지 아홉 사람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나병에서 치유를 받고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돌아와 예수님이 발 아래에 엎드린 것이 바로 그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만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보시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7-18절)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고침을 받은 후 가던 길을 되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돌아왔을 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던지신 질문과도 같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그 자리를 이탈한 자에게 물으시는 질문입니다. 혹시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물으시지는 않겠습니까? 당신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홉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예수님 앞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로 돌아와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아홉 명은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모두 유대인들이었을 나머지 아홉 명은 자신들이 그렇게 치유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유대인이었으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으니 고침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하고 급한 것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정결하게 하는 모든 절차를 마친 후 속히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만 바빴던 이 아홉 사람은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에 바빠서 주님께 나오기를 게을리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도 세상에서 열심히 모범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 보좌 앞으로 힘써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빠서 말씀묵상과 기도를 쉬고 있는 성도, 다른 일로 예배를 소홀히 하는 성도는 본문에 나오는 아홉 사람과도 같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다시 돌아와 감사한 이 사마리아인에게 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처음에는 이 사마리아인도 예수님을 단지 무슨 병이나 고치실 수 있는 위대한 선지자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로 믿는 신앙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나병을 고침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나병을 고침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병에서 벗어나 그토록 그리던 가정과 사회로 돌아갔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은혜인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당신이 은혜를 받았습니까?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까? 병이 나았습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거기서 멈추는 성도는 얼마가지 못해서 은혜가 식어지고 은혜를 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주저 않고 침체되고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 은혜는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더 큰 은혜를 받게 하는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더욱 열심을 다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 더 큰 은혜를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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