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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주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가?

  • 안창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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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왜 주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가?

누가복음 9장 37-43절

 2016.7.3 


오늘 본문에는 귀신들린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와 고침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들린 과정에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를 책망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귀신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 종종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귀신을 꾸짖으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나 귀신을 꾸짖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것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다른 곳에서는 제자들이 책망을 받은 것과 귀신이 책망 받은 것을 따로 기록하고 있는데 본문에는 동시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제자들과 귀신을 동시에 책망하시는 것을 보면서 순간 제자와 귀신이 동일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자입니까? 마귀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 칭찬을 받아야하지 귀신처럼 책망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읽어서 알지만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리고 갔지만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예수님께 나아와 쫓아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불특정 다수에게 하셨기 때문에 다소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 사람에게 답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따라서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찾아와 부탁했기 때문에 그에게 대답을 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신 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책망하신 것에 대한 대상을 크게 셋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문자 그대로 당시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셋째로, 제자들입니다. 물론 이 셋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예수께서 책망하신 대상은 그의 제자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께서는 뭔가 의도를 가지시고 기적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에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기적을 위한 기적은 결코 행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특별한 목적을 가지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를 의도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자기계시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게 사역의 본을 보이시고 그들을 교훈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신 대상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일로 제자들을 책망하셨을까요? 그것은 누가복음 9장 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왜 제자들을 책망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40절).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주님께 책망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주님께 받은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런 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고 그런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받았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못했을까요? 우리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평행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8-20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본문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믿음이 작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9장 27-29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그들의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구절을 통하여 제자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이 적고 기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어마어마한 능력과 권세를 받았지만 기도하지 않음으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물질문제입니까? 질병문제입니까? 갈등문제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문제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교회 건물은 저마다 커지고 웅장해지고 교인들은 더 많아졌지만 영적인 능력은 점점 쇠약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큰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3장과 19장에서 주님이 주신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운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매일 성전을 드나들면서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구걸하고 있던 앉은뱅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동전 몇 잎만 던져주었을 뿐 그 이상의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난 후였습니다. 그들이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충만을 받자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가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하자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행전 19장에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다가 망신을 당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 대었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갖다가 병든 자에게 얹어도 병이 떠나고 귀신이 나가자, 옆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귀신들린 자를 만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명하여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리고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자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했습니다. 왜 스게와의 일곱아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는데 오히려 악귀들린 자에게 조롱을 당하고 도망을 쳤습니까? 그것은 귀신을 쫓아낼 권세가 없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신앙을 흉내 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두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받은 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기적이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자가 사용하면 망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이미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귀신을 제어하고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영적전쟁에 승리할 수 없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능력과 권세로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경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절)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권세와 능력을 사용할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귀신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42절을 읽겠습니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본문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기 전에 꾸짖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꾸짖다’를 “아랫사람의 잘못한 일을 지적하면서 나무라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신 것은 귀신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예수께서 꾸짖으셨을까요? 주님께서 모든 인생의 주인이신데 자기 마음대로 사람에게 들어가서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귀신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들어가서 괴롭히는 것은 불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신 것처럼 귀신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 꾸짖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와서 간청을 했을 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간청을 하시기전 미리 귀신을 쫓아내실 수는 없는가? 물론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부러 귀신을 좇아내시기 위해 귀신을 찾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실 상황에서만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에 귀신을 쫓아내실 상황이 생기면 쫓아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우선시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입니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자마자 아이가 즉시 나았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질병과 귀신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종종 아이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고, 그의 몸이 크게 상하게 된 것은 모두 귀신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들린 자의 아버지도 자기 아들이 종종 괴성을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고 자해를 한 것이 귀신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39절). 사실 귀신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요 10:10).


따라서 우리는 어떤 질환에 걸렸을 때에 우선적으로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말고 먼저 귀신의 역사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병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그에 상응하는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현상이 비슷합니다. 둘 다 자해행위를 하고, 사람을 회피하고, 고립하여 살려하고, 옷을 벗고, 소리를 지르고, 혼자서 중얼거립니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귀신들림과 정신병은 다릅니다. 첫째로, 귀신들린 자는 초자연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지만 정신병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로, 귀신들린 자는 이야기에 논리성이 있지만 정신병자는 횡설수설합니다. 셋째로, 귀신들린 자는 예수의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신병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상태가 귀신들림에 해당한다면 귀신을 쫓아야 하고 정신병자라면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귀신이 각색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모든 병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귀신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많은 곳에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에 사람들이 병을 고침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귀신을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질인지, 간질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것 때문에 성도들이 시험에 들 수도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을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간질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갈 4:14). 그런데 성경은 그것의 원인이 귀신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지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 12:9). 또한 마가복음 16장 17-18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성경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것을 각각 별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모든 병이 귀신 때문에 말미암는다면 굳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라는 것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사실은 요한복음 9장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제자들과 함께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제자들이 소경을 보고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한 것은 당시 유대인들은 모든 질병의 원인을 죄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맹인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은 맹인이 된 것을 귀신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불행은 마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질병 역시 마귀로부터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가운데 질병을 허락하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났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못함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기도함으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늘 기도에 힘쓰므로 믿음을 갖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여 각종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기에 우리도 귀신을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을 쫓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우선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에 힘쓰므로 큰 믿음을 갖고 이미 받은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므로 주님께 칭찬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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