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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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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槪觀)

 

221-317.

 

221-2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해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만든 여자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셨다. 깊은 잠이 들었을 때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인간은 누가 내 아내가 될 런지 모른다는 의미다. 깊이 잠이 들었을 때는 자기의 갈비뼈를 떼어서 여자를 만드는지, 발가락을 하나 떼어서 만드는지 모른다. 인간 내 편에서는 나의 아내감을 하나님께서 어디에 만들어 놓았는지를 모른다. 나를 도울 자, 협조자가 있기는 있는데 나는 모른다는 거다. 이 말은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은 내 몸이다이런 사상이 들어있다. 부부가 이런 정신으로 세상을 산다면 그 어떤 일도 이겨나갈 수 있고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나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보는 순간 하와에게 달려가서 덥석 안았는지, 아니면 하와가 아담을 보는 순간 아담 품에 와락 안겼는지, 아니면 둘이 서로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는지?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이 하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았을까? 갑자기 자기와 비슷한 한 사람이 자기 앞에 서 있으니 참으로 신기했을 거다.

 

오늘날 세계적인 미녀를 뽑는 대회가 있는데, 여기에서 뽑힌 세계적인 미녀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와 중에 누가 더 예쁠까? 하와는 마음도 예쁘고, 생김새도 예쁘고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아담이 아무리 하와를 쳐다봐도 실증이 안 나고, 또 두 부부가 어떤 얘기를 나눠도 행복한 것뿐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나온 아기도 그렇게 키우도록 되어있는 거다.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여기서 뭘 보고 간교하다고 하는 걸까? 뱀을 볼 때 뭐가 간교한 것처럼 보이느냐? 혀 놀림? 기어 다니는 모양새? 자기들끼리 싸울 때 고개를 치켜들고 흐느적거리는 것? 무슨 틈만 있으면 기어 들어가는 것? 그리고 또 쥐 같은 게 있으면 가만히 숨어 있다가 가까이 오면 콱 물어버리는 것? 뱀이 사는 생태를 보면 영리한 것처럼, 꾀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표범이나 사자나 호랑이를 보면 노루나 사슴이 있으면 자기 생각이 그런 건지, 본능이 그런 건지 자기의 발자국 소리가 안 나게 하느라고 살살 기어간다. 그런데 뱀은 살살 기어가면 소리가 안 나지만 큰 뱀이 지나가면 바람 부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뱀이나 지렁이는 뒤집어 놓으면 꿈틀거리면서 다시 몸을 뒤집고 기어가는 걸 보면 발이 있다는 말이 된다.

 

뱀은 담을 넘어갈 때도 무슨 표시가 없다. 그리고 쥐나 개구리 등을 먹을 때는 머리부터 통째로 먹는다. 이걸 보면 지혜로운 것 같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는 말씀은 있어도 뱀에게 가서 배우라는 말은 없다. 그러면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는 했다.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에게 네가 제일 간교하단다라고 하면 뱀은 난 안 그런데. 나는 내 맛으로 산다라고 할 거다. 이런 것을 기록한 것은 믿는 우리로 이 뱀의 생태를 보고 구원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거다. 뱀만이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도 만들어 놓고 우리로 구원도리를 깨달으라고 그들의 생태를 보여주는 거다. 즉 우리가 짐승의 생태를 보고 사람 중에는 어떤 짐승과 같은 성질 성격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거다.

 

사람을 보면 미련한 사람이 있느냐? 아주 미련한 사람도 있고, 아주 간교한 사람도 있고, 성격이 아주 고약한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우리가 짐승을 놓고 사람들의 이런 성격을 볼 때 아이고 저 사람은 꼭 어떤 짐승을 닮았구나라고 한다. 성경도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인간이 타락되기 전에는 뱀이 말을 했느냐?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기운으로 사는 존재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거짓 종들이 교회에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마귀가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을 보고 거짓 종들이나 이단자들의 수법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을 하라고 짐승을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뱀이 아담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한 이 말과, 216절의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한 말을 대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하는 것은 동산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먹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고,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라고 하는 것은 선악과만 먹지 말고 다른 모든 실과는 먹으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중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서 자기도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같이 먹게 되었는데, 아담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했는지, 아니면 하와가 잘못 알아들은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만 먹지 말고 다른 모든 실과는 먹으라고 하셨고, 2:17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뱀이 동산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라고 물으니까 하와가 3:3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 라고 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대답하는 걸 보면 하와는 구별을 바로 하지 못한 거다.

 

그리고 하와가 뱀의 말에 대답을 할 때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말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뒤에 덧붙이기를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는 말씀은 하셨어도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하와가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 자기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아담이 하와를 볼 때 선악과를 따먹을 것 같아서 따먹지 말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지지도 말라는 말까지 덧붙여 말을 해 줘서 하와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인지? 어쨌든 하와는 죽으리라가 아닌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을 하는 순간 뱀에게 자기의 허점을 노출시킨 거다.

 

우리는 이단자들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듣는 면에 구별이 돼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면 상대가 나의 허점을 알고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 여기에다 한국사람들은 감정적인 게 많아서 감정적으로 나가게 되면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나의 허점과 약점의 다 드러나기 때문에 욕을 얻어먹는 일을 하게 되고 나의 인격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구별을 못하면 허점이 잡힌다. 목사님들 세계도 듣는 것에 구별력이 없으면 허점을 잡히게 되고, 잡히고서도 모르기 때문에 사단이 이런 목사를 잡아먹으면 그 다음에는 뱀이 먹이를 머리부터 통째로 삼켜버리듯이 그 교회 교인들은 사단에게 통째로 잡아먹히게 된다. ‘죽으리라라는 것은 탁 끊어지는 마침표의 말인데 비해 죽을까 하노라라는 말은 뒤에 물음표가 붙는 느낌의 말이다. 이렇게 말을 한 하와는 결국 뱀에게 허점을 잡혔다.

 

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이게 무슨 뜻이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의 수준과 같아지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아지는 게 싫어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어떻게 들으면 이런 말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안 믿는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면 이걸 귀로 달게 먹느냐, 아니면 세상에서 뭘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부자로 산다라고 하는 말을 더 달게 먹느냐? 안 믿는 사람들이 천국복음을 더 잘 듣느냐. 세상복음을 더 잘 듣느냐? 세상복음이다. 사상과 중심이 그렇다. 이런 게 다 하나님과 같아져 보려는 정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소리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물질적인 소원 목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 쪽으로 열심을 내다보면 물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세상적으로 발도 넓어지고, 권력과 권세도 가지게 되니, 이렇게 되면 설령 감옥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곳의 간수장보다 더 왕초노릇을 하다가 나오는 거다. 그런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이 될까마는 세상권을 많이 가지게 되면 마치 하나님과 같은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온통 이 쪽으로 치닫고 있는 거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하와가 5절에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뱀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의 시선을 선악과로 돌렸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인간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 쪽으로 시선을 돌린 거다. 자기의 시선을 돌린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 그 쪽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보는 순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니 하와의 온 정신이, 온 삶이 거기에 다 붙는 거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된 거냐? 앞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뱀의 말에 수긍이 갔기 때문이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둘 다 선악과를 먹었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선악과를 따먹으니 어떤 면에 눈이 밝아진 거냐?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선악과를 따먹으니까 부끄러움이 쓱 들어온 거다.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불순종이고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 되면 자기의 양심 속에서 부끄러워진다. 꼭 남이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집에서도 아이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해 놓으면 자기 양심이 부끄러워서 스스로 잘 보이려고 부모님에게 아양을 떤다. 그러면 자기와 상대가 벗었다고 하는 것을 자기만 아는 거냐, 상대도 아는 거냐? 서로가 안다.

 

그 전에는 벗었는데도 벗은 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을 서로가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뜻인데, 부끄러운 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서로가 벗은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이는 서로의 허물을 찾고 정죄하는 타락된 상태를 말하는 거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은 것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꾸 변명을 하게 된다는 걸 말해준다. 자꾸 변명의 옷을 입는다는 거다. 즉 인본주의를 쓴다는 거다.

 

무화과나무가 아무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울지라도 한나절 햇볕만 쬐면 시래기를 널어놓은 것처럼 스러진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온 인격 소원 목적이 다 들어간 표현이다. 인간의 모든 인본주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한나절 볕 앞에 있는 잘려진 초목과 같은 거다.

 

사람이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덮으려고 또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 말이 자꾸 또 다른 사람에게까지 소리 없이 나가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덮으려고 또 다시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러다가 결과에 가서는 그 거짓말들이 다 들통이 나버린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이 왜 덥석 받아먹었을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을 거다. 그리고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의 모양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를 거다. 어떻게 다르냐? 좀 보태서 말을 하면 생명과는 좀 높이 달려있을 거고, 선악과는 지나가면서 손만 내밀면 바로 따먹을 수 있는 높이에 달려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담이 덥석 따먹은 걸까?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힘이 오르고, 정신이 맑아지고, 지혜가 생기는 반면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기운도 빠지고, 부끄러워지고, 근심 걱정이 찾아오는 거다. 분명히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이 사실을 느꼈을 거다. 따먹은 후에 알게 된 느낌이었겠지만 왜 아담이 덥석 따먹었을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명과와 선악과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오른쪽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고 왼쪽에 있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면 하나님 앞쪽에서 이 말을 듣는 아담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선악과나무이고 왼쪽에 있는 것이 생명과나무가 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생명과와 선악과를 착각을 해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자기에게 줄 때 그것이 생명과인 줄로 알고 받아먹은 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서로가 방향과 목적이 같아야 바로 알아듣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안 그러면 반대적으로 나가게 된다. 사람들은 입만 벌렸다 하면 말을 하게 되는데, 이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말을 듣느냐. 아니면 자기 기준에서 듣느냐?’에 따라 말을 하는 사람의 말뜻을 바로 알아 듣든지, 잘못 알아 듣든지 하게 된다. 믿는 우리 입장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세상적 일반적인 말을 할지라도 이걸 일반적인 차원으로 듣느냐, 이룰구원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입장에서 듣느냐?’에 따라 선악과와 생명과로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그런가 하면 예수 믿는 나는 일반적인 말 같으나 그 속에는 천국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건데 듣는 사람은 세상적인 생각으로 듣고 내 말을 자기 생각처럼 해석을 하며 듣기도 한다. 듣는 사람이 내 말을 천국기준으로 들어야 그 뜻이 통할 텐데 내 앞에서 내 말을 아무리 열심히 듣더라도 이 사람이 진리본질을 모르면 내 기준에서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뜻이 안 맞는 거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이런 점을 잘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세상의 생각으로 들으면 하나님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나가게 되는 거다.

 

하와가 선악과를 남편에게 주니까 아담도 이 선악과를 먹었는데,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 사왔느냐, 누가 주었느냐, 자기가 선악과나무로 가서 따온 거냐? 분명히 하나님께서 먼저 아담에게 생명과 모양은 어떻고 선악과 모양은 어떻다라는 것을 다 알려주셨을 텐데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먹었다. 이건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 번 돈을 여자에게 주니까 여자가 그걸 받아 쓴 후에 나중에 문제가 되니까 나는 모른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이 후에 보면 아담이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하와에게 탓을 돌리는 것을 보면 이걸 알 수 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눈이 밝아졌다는 게 무슨 뜻이냐? 예를 들면 깊은 물속에 고기가 몇 마리가 노는 것을 안다는 게 아니라 경험을 하고 나서 , 그렇구나하고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거다.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그 전에는 빛나는 것인지, 영광스러운 것이지,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었는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이런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인격 면에서 추해져 버렸다는 걸 말한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는 것은 인본주의 사상을 말하는 거다. 즉 자기의 미련하고 어리석고 부끄러운 면을 감추기 위해서 소원과 목적적으로 물질에 속한 것으로, 세상에 속한 것으로 자기를 자꾸 가꾸는 것이 옷을 입는 거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본주의 옷을 입어도 속사람은 바로 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부끄러움이 들어있다.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할 때란 저녁때를 말하는 거냐? 날이 서늘하다는 것은 해가 기울어지면 으스스해지듯이 그런 느낌을 말하는 건데, 그 앞서서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신들의 벗은 몸을 가리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자꾸 뭔가가 마음에 께름칙한 상태를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어서이거나 바람이 불어서 서늘하다는 게 아니라 이런 매개물로 통해서 아담과 하와의 마음상태를 표현해 주는 거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거니시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난 거냐? 하나님께서 혼자 거니시면서 노래를 불렀나?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라고 했는데 거니신다는 이것이 느낌적으로 다가오는 게 기분이 좋은 느낌이 안 드느냐? 안 그러면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앞으로 어떻게 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니신 건지? 에덴동산은 날씨도 좋고, 꽃은 만발하고, 오염도 전혀 안 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인데, 이런 곳에서 거니신다면 어떤 기분이겠느냐?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자기들의 행실이 부끄럽게 생각이 되면 하나님 앞에 와서 내가 선악과를 먹었나이다해야 되겠는데 이들이 하는 짓이 숨어버렸다. 자기를 숨겨버렸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데, 우리가 율법을 통해 죄를 알았다면 이것을 회개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가야 하느냐? 하나님께로 가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숨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리새교인들, 유대 율법주의자들, 성문계시로 주장하는 자들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율법을 보면 자기의 죄가 기억이 나는데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의 죄는 모르고 행동적으로 하라는 것을 안 하거나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죄가 되는 것으로 자꾸 말을 한다. 그러니 매 안식일마다 자신들의 죄 사함을 위해 열심히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 속에 들어있는 근본적인 죄는 해결이 안 되는 거다. 예수 믿는 것은 근본을 가르쳐 주는 거다. 근본을 알면 예수 믿기가 편하지만 근본을 모르면 힘들다.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의 낯을 피해서 동산 나무에 숨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거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심은 같이 있고 싶어서이고, 같이 얘기하고 싶어서이고, 아담과 하와를 앉혀놓고 천국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인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들이 안 보인다. 둘이서 어디로 간 거냐? 둘이서 숨바꼭질 하느라고 숨은 거냐? 날씨도 서늘한데 꽃동산에 있지 않고 어디로 간 거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하나님은 이들이 어디 있는지 다 아신다. 그럼에도 부르시는 것은 인간 우리 편에서 보면 보고 싶어서 찾으시는 거다.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대문이 열려있다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데, 집안에 들어와서 보니 한 사람도 없고 방안도 어질러져 있다면 무언가 척 들어오는 느낌이 있는 거다. 그런데 가족들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두 번 불러도 아우 응답도 없으면 뭔가가 마음속에 중압감이 온다. 그래서 집안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아무도 없으면 이웃집에 가서 물어보고, 그래도 없으면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것을 신앙적인 의미로 생각을 한다면 얘들이 다 어디 갔지? 아이고, 마귀가 잡아갔구나. 거짓 종이 와서 잡아갔구나이렇게 되는 거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실 때 숨어있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면서 무슨 소리를 한 거냐? 사람이 방안에 들어오면 이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들어오는 어떤 기척이 있듯이 하나님이 임하시는 어떤 기척, 어떤 느낌이 있다는 표현이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시는 소리는 어떻게 나느냐? 아무 소리도 안 나느냐? 우리는 주님이 찾아오심을 자기 자신만이 아는 사건 환경적으로 듣고 인식할 수 있는 거다. 우리는 이런 것도 빨리 빨리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나 술 안 먹었어라고 해도 아내는 느낌적으로 술 먹은 것을 알 수 있느냐? 남편이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오면서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살금살금 들어오면 이상하게 느낌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내가 자다가도 남편이 들어온 것을 금방 아는 것도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게 어떤 소리냐? 하나님의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거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벗었으므로라는 게 뭐냐? 죄를 지으니 그냥 벗겨졌다는 거다. 죄를 지으면 부끄러움이 즉시 온다는 거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오는 것은 벗었구나. 벗으면 부끄러움이 오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안 해도 자기 스스로 부끄러워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가지를 못한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사람이 어떻게 된다는 걸 다 아신다.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말을 보면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이 선악과를 아담에게 줄 때 그것이 선악과라고 하는 것을 아담이 알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아담이 여자에게 핑계를 댄다. 자기가 죄 지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댄다. 이게 타락된 인간의 모습이다. 어떤 이유로 죄를 지었건 알고 보면 다 자기가 몰라서, 못 깨달아서, 미련해서, 욕심으로 인해서인데 타락된 세상은 남에게 핑계가 들어간다.

 

아담이 처음에 하와를 볼 때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하고서 여기서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누구에게까지 핑계를 대는 거냐? 하나님이다. 이렇게 되면 괘씸죄까지 포함해서 징계를 받을 수 있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에게 물으니까 여자와 하나님께 핑계를 대고, 여자에게 물으니까 그 이유가 뱀에게로 간다. 아담 하와의 후손인 사람들도 이 습성이 들어있어서 너 때문에 내가 그랬다하고 있다.

 

아담이 하나님의 첫 말씀에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나에게 벌을 주십시오이렇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와를 또 하나 만들어 주셨을까? 그러면 다시 만들어 준 이 하와는 선악과를 안 따먹을까? 다시 하와를 만들어 준다고 할지라도 아담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상태니까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는 되지 않는 거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뱀이 하와를 꾀는 방법이 앞의 대화에서 나왔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뱀이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은 증거가 배로 다니는 거다. 그러면 그 전에는 도마뱀처럼 발이 있어서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타락이 되어서 그 다리가 점점 없어져서 배로 기어 다니게 된 거냐?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뱀이 흙을 먹느냐? 뱀만이 아니라 다른 짐승들도 흙에서 나왔다.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라고 하신 것은 타락된 우리 인간의 깨달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이다. 배로 다닌다는 것은 먹고 마시고 배부른 것을 하나님으로 삼고 사는 인간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라고 하는 것은 흙으로 돌아갈 세상의 물질을 소원 목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것을 먹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하늘의 것을 먹으면 하늘로 돌아간다. 땅의 것을 먹으면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 주격의 사람으로서 땅으로 돌아갈 육신을 의의 병기로 쓰면 쓰는 것만큼 영능의 실력화 자체화로 되어서 이룰구원이 되어나간다. 예수 믿는 것이 참 신비롭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소원 목적이 하늘의 것, 안 죽는 것, 영생,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정신이어야 하는데 이게 아닌 땅의 것으로 소원 목적을 하며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면 이것은 창조의 목적관에서 볼 때 참으로 비참한 거다. 예수를 믿는다면 바로 믿고 영능의 실력화 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자기에게 들어있는데 이걸 모른 채, 이게 없이 살다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기의 삶이 완전히 무효화 되는 거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뱀을, 마귀를, 죄를 이긴다는 거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뱀이 여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했는데, 뱀이 사람의 발뒤꿈치를 물면 뱀에 물린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니까 마귀는 사람들이 천국을 향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고, 자꾸 세상 것을 주어서 정신과 사상에 세상독이 오르게 해서 세상정신으로 살게 한다는 거다.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들은 잉태하는 고통이 크다는 것은 진리의 자녀로 키우는 것이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처럼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했고, 주님도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고 진리신앙으로 키우는데 여자가 잉태하는 고통을 겪으셨다. 십자가 고통을 당하셨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하는 것은 진리생명을 죽이지 않게 하는, 신앙생명을 죽이지 않게 하는 그 애씀, 또 하나님의 눈에 합격이 되게 하고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게 길러내는 것도 여자의 해산과 같은 고통이 있다는 거다. 이게 없으면 스스로도 신앙이 안 된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씀은 여자는 남자보다 아래의 계급이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영의 눈으로 보면 성도는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은 진리로 성도를 이끄신다는 뜻이 밑에 깔려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인간의 삶인데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이게 아닌 잘못 다스리고 잘못 순종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이냐?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농부는 열매가 나기까지 논밭에 가서 얼마나 수고를 하느냐? 그러나 이런 수고 뒤에는 가을에 알곡을 거두듯이 영적인 면에서도 이와 같은 수고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죄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고, 자기에게 닥치는 사건 환경 가운데서 마찰과 충돌을 겪으면서 진리를 붙잡고 참고 견뎌야 만이 진리생명의 소산을 먹게 되고, 영능의 실력이 되어 나오는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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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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