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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악과를 따먹은 자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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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槪觀)

 

24-38.

 

24-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의 땅이 상당히 비옥한 것 같다.

 

그 다음에 7-1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라고 했다.

 

그 다음에 15-2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라고 했다.

 

이걸 가만 보면 땅은 상당히 기름지고, 강들은 사방으로 흘러서 모든 게 풍요로웠을 것 같다. 마치 너희들 마음대로 다스리고 통치해 봐라하고 멍석을 쌓아놓은 것 같다. 여러분들 마음 같으면 이런 곳에 살면서 그 땅을 일구면서 멋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 지금도 이런 땅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생명과를 먹으며 살고 싶지 않느냐?

 

25절의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라는 것이 무슨 말 같으냐? ‘벌거벗었으나라는 말을 새김질을 해 보면 죄를 짓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울 게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건데, 이는 두 부부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솔직함과 깨끗함과 허물이 없는 면을 표현하는 거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거다. 자기를 가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있다는 의미다.

 

3.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간교란 교활성을 말한다. 남의 것을 몰래 훔쳐 먹는 게 아니라 아예 눈을 띄워놓고 빼앗아 먹으려면 간교해야 한다. 즉 상대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야 한다. 돌리게 하려면 눈으로 보고 할 수 있는 시각과 시감성적으로 확 와 닿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중에 아주 미련하게 보이는 것도 있느냐? 곰이 미련하냐? 나무늘보는? 나무늘보는 땅으로 기어가는 것도 느리지만 나무로 올라갈 때도 한 번에 올라가면 될 텐데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매에게 잡혀 먹더라.

 

우리 인간들이 볼 때 뱀이 간교하냐? 뱀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꾀이겠다그러는 게 아니라 그 모양새와 하는 짓이 인간이 볼 때 간교하게 보이는 거다. 우리가 뱀을 보면 상당히 약삭빠르다. 그리고 구멍만 있으면 잘 들어가 버린다. 이런 면을 보면 영리한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인간입장에서의 표현이지 뱀으로서는 네가 아무리 나를 잡으려고 해 봐라. 나는 잘 도망간다하며 도망가는 건 아니다. 뱀의 생태가 원래 그런 거다.

 

그런데 사람들이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보면서 말을 하는 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게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게 혀를 놀려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해서 뺏어가는 간교하고 교활한 자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거다. 그리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도 있는데, 뱀이 지혜가 있느냐?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는 것은 믿는 우리로 뱀의 특성과 생태를 보고 신앙 사상적으로 깨달으라는 거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문자적으로 보면 뱀이 이 말을 한 거다. 뱀이 이렇게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어서 바른 길로 못 가게 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형벌을 받도록 마음을 빼내려는 거다. 이게 간교한 거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진리 길 생명 길을 가는 게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이고, 바른 길은 이것밖에 없는데 이게 아닌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가지고 와서 이게 더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간교하고 교활한 거다. 이런 일은 그 누구보다 교회적으로 목사님들 세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노리거나 물질을 노릴 때는 사람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야 꾀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생명 길로 가게 하면 지혜도 생기고 사람의 말과 정신과 사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꾀임을 잘 받지 않는다. 거짓 종이나 이단자들이 사람을 진리생명 길로 못 가게 하는 것은 전부가 간교한 거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진리생명 길 하나밖에 없다. 이를 위한 교훈은 마음에 정신에 중점을 둔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다.

 

뱀 중에는 쉭쉭하는 소리를 내는 게 있는데, 다른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뱀처럼 쉭쉭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걸 보지 않았느냐? 여러분들은 기도하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연습으로라도 하지 말아라.

 

그리고 간교한 소리란 구원이 안 되는 감정적인 소리, 남을 쥐어뜯는 소리, 이간질을 하는 소리들을 말한다. 이간질은 사단이 하는 거다. 마귀는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성경을 왜곡해서 성경을 세상 쪽으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사단은 말로써 사람을 찍고 쑤시고 깔아뭉개고 밟고 하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고 한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에덴동산에 있는 다른 짐승들도 간교하지만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말이다. 뱀은 사단을 상징하는데, 거짓 종들은 사단의 수종자들이다. 뱀이 씹지도 않고 통째로 먹어버리듯이 이 거짓 종들은, 마귀는 성도들을 통째로 먹어버린다. 통째로 먹는 방법은 세상이라는 독을 성도들에게 집어넣어서 꼼짝을 못하게 해서 통째로 먹어버린다. 이런 거짓 종들의 행태를 잘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성경이 비유적으로 뱀을 들어서 말을 하는 거다.

 

무엇을 들고 말을 해야 거짓 종들의 속마음을 우리들에게 알게 하겠느냐? 뱀의 생태나 모양이나 습성을 볼 때 이 뱀이 거짓 종들이 하는 짓과 가장 가깝다. 나일강의 악어는 살아있는 먹이를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뒹굴고 흔든다. 그러면 살점이나 뼈가 막 떨어진다. 그런데 뱀은 먹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이고 뭐고 다 먹어버린다. 거짓 종들이 성도들을 먹어치울 때도 이런 방법을 쓴다.

 

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뱀이 1절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물은 것에 대한 여자의 대답이다.

 

뱀이 여자에게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라고 한 것은 여자의 마음을 확인해 보려고 한 번 쿡 찔러본 건데 여자가 대답하는 것을 보면 생명과와 선악과가 나눠지지를 않았다. 아담이 바로 전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여자가 잘못 들어서인지 어쨌든 생명과와 선악과를 분명히 나누지를 않고 두리뭉실하게 말을 했다. 하나님은 생명과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여자는 생명과는 먹으라고 한 말씀은 쏙 빼버리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만 함으로써 생명과와 선악과를 분명히 나누지를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과는 먹지도 말라고만 했는데 여자는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는 영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거고 물질이다. 이 강대상도 성업을 위해 쓰여지는 물질이지 천국의 신령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귀의 말에 대답을 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먹으면 정령 죽으라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씀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켰다. 죽으면 죽는 거지 죽을까 하노라라고 하는 게 하나님 앞에 해당이 되는 거냐?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여자의 말에서 허점을 찾은 마귀가 이제는 장담을 하며 말을 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장담은 어떤 사람이 하느냐? 세상은 절대가 없는 것임에도 장담을 하는 것은 신앙의 눈을 가지고 보면 그 자는 자기가 하나님과 같다는 말이 되는 거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처럼 장담을 할 수 없는 거다. ‘나는 절대로 남을 안 속인다.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한다. 나는 절대로 실수를 안 한다이런 말은 네가 하나님처럼 말을 하는구나.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믿게 하느라고 그러는 거지만 그러나 그 사상성이 하나님처럼 말을 하는구나. 우리 인간은 자기 코 앞 일도 모르는 존재이니 하나님처럼 말을 하면 안 된다.

 

목사인 나도 여러분들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닌 말로 전쟁이 났을 때 목사님 집에는 폭탄이 안 떨어지겠지하고 우리 집으로 와도 나는 여러분들을 책임지지 못한다. 목사는 교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지도록 하나님 자랑을 해야지 목사 자기에게로 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이런 말은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거지 목사라고 해도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대전의 OO목사님이 총회장에게 차용증도 안 쓰고 많은 돈을 빌려줬는데 OO목사님 사모가 왜 그냥 빌려줬느냐?’ 라고 해서 에이, 총회장님이신데 뭘 그런 걸 쓰느냐?’ 라고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빌려준 돈을 달라고 하니까 그 총회장 목사님 왈 하나님께 바친 건데 왜 달라고 하느냐?’ 라고 했단다. 총회장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하는 존재냐?

 

여러분들 같으면 이런 일을 당하면 뭐라고 기도할 거냐? 자기 속에서 뭐가 치밀어 올라와서 잘 먹고 잘 살아라그럴 거냐? 아니면 총회장님이니 거짓말을 안 할 거고, 내가 잘못 기억을 하는 것일 테니 총회장님이 그 돈 가지고 잘 먹고 잘 살도록 복을 내려주십시오이런 기도를 할 거냐? 이 기도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다. 왜냐? 이 기도의 내용이 육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앞으로 바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를 할 거냐?

 

이럴 때는 상대편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며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기도를 해야 할 것이고, 앞으로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하라. 그리고 그런 상대편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한 게 아니라 그렇게 잘못을 하게 된 원인이 하나님의 진리말씀에서 빗나갔기 때문인 고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말씀에 바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라. 하나님의 진리말씀에서 빗나간 것을 바로 잡아주는 게 복이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 게 아니라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이걸 돌려서 말을 하면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뱀의 말인즉 하나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참으로 교활한 말이다.

 

예수를 믿다보면 교활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교활한 자는 자기가 교활하다는 것을 모른다. 일반적으로 남을 속여먹고 하는 것은 교활한 것으로 알지만 신앙 면에서 하나님의 진리본질에서 이탈된 것이 교활성이라는 것을 모른다. 물질을 가지고 와서 물질축복운운하고, ‘물질의 복을 받으려면 성령을 받아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들고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교활한 수법이다.

 

마귀는 거짓 종들이나 이단자들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세상의 것을 주게 해서 성도들이 진리생명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믿지 못하게 하고, 불신하게 해서 멸망 길로 유도를 한다. 이게 전부 간사성이다. 그리고 뒤로 가면 나오지만 남 핑계가 나온다. 자기가 사람들끼리 서로 대적하게 만들어 놓고, 아담과 하와와 뱀이 서로가 핑계를 대듯이 사람들을 싸움을 붙여놓고 자기는 빠져버린다. 이건 교활하고 간사한 거다.

 

그리고 자기가 한 일이 들통이 나면 자기는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자기의 잘못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을 저주를 한다. 남을 저주하면서 자기는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회개한 게 아니다. 진정으로 회개를 한 사람은 남 저주가 안 나온다. 이런 면에서 목사님들이 간교한 게 많을 수 있다. 이건 뱀처럼 혀가 둘인 사람이다. 사람은 혀가 하나이니 한 우물을 먹고 한 소리가 나와야 하겠는데 이 말을 하고 나서 금방 또 저 말을 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말을 하면 한 성경을 들고 세상을 말했다 천국을 말했다 하는 거다. 이것은 세상도 좋고 천국도 좋다고 하는 것이니 교활한 말이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나무를 쳐다봤다.

 

선악과가 나무에 딱 하나만 달려 있을까, 주렁주렁 달려 있을까? 하나만 달려 있는 게 보암직할까, 주렁주렁 달려있는 게 보암직할까? 주렁주렁 달린 거다. 나무의 열매는 주렁주렁 달린다. 그러니까 보암직하다는 것은 모양과 색깔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 주렁주렁 많이 달린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이 달린 열매 중에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따먹은 거다.

 

선악과를 보는 순간 탐이 났고, 이렇게 되니 눈은 그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발걸음은 그 초점을 향해 걸어가게 되었고, 결국은 손을 들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는데, 이 선악과 옆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을 텐데 왜 생명과로는 눈길이 가지 않았을까? 생명과는 색깔이 별로였나? 맛없게 생겼나? 생명과는 선악과처럼 주렁주렁 달리지 않았나? 오늘날 세상 속화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

 

옛날사람을 보면 얼굴이 각기 특색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겉을 깎고 베고 찢고 해서 거의가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이런 게 보암직한 것을 따라가는 정신들인데, 나는 이런 사람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꾸민 사람들의 마음속을 보시고 어떻게 인도를 하실까?’ 하는 염려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를 먹는 마음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시는지, 이런 사람에게는 제일 좋은 것을 뭐든지 주고 싶어 하는 분이다. 이게 사람의 중심이 아름다운 것인데 오늘날 교인들이 이걸 모른다.

 

밤이 익을 즈음에 밤나무 밑에서 벌어진 밤송이를 쳐다볼 때 그 속에 동글동글하게 잘 익은 밤이 보이면 나무나 돌을 던져서 그것을 따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밤송이가 자기 눈에 떨어지면 눈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걸 신앙 면으로 보면 눈에 확 들어오고, ‘, 먹음직스럽다하는 걸 쫓아가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남편이 아내로부터 선악과를 받아먹으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 얼른 생각이 안 났을까? 남편이 어째서 생각을 못했을까?

 

선악과를 여자가 먼저 따먹었다면 여자가 먼저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알았을 거다. 그러니까 여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 솔직성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면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영이 살았을 때인데, 이 때 아담이 어떻게 보였으며, 선악과를 따먹고 영이 죽은 후에는 아직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아담이 어떻게 보였을까?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아담을 보면서 저걸 어떻게 꾀어서 선악과를 먹게 할까?’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저건 선악과 맛도 못 본 바보다라고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아담을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자기가 부끄러웠을까? 성경에 보면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안 먹은 사람이 미련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가 선악과를 따가지고 왔을 때 남자가 당신 뭐 따왔어?’ 라고 물었다면 여자가 생명과를 따왔다고 했을까, 선악과를 따왔다고 했을까? ‘색깔도 좋고 보기도 좋으니까 이건 생명과다라고 했을까? 아니면 아담이 아예 묻지도 않았을까?

 

어쨌든 여자는 자기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양심이 부끄러웠을 거고, 아담은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이니 마음이 편했을 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 든 것은 부부라도 남은 잘 모른다. 그래서 아담이 여자에게 너 선악과를 따먹어서 부끄럽지?’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여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생명과를 먹은 사람은 사람이 선악과를 먹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먹지를 않겠지만 다른 사람이 선악과를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저주를 할까, 아니면 불쌍하게 보이고 측은하게 보일까, 아니면 잘 따먹었다고 복을 빌어줄까? 믿는 우리 마음속에서 이런 것들이 움직이는 거다. 우리는 불쌍하고 측은하게 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7절이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둘이서 선악과를 먹고 나니까 서로의 흉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 옷을 벗었다라고 하는 게 서로의 흉이 보이는 거다. 이렇게 되니 각자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게 되고, 서로가 남의 잘못만 보고 지적을 하게 된다. 이제 사람의 마음이 희한하게 돼버렸다.

 

서로가 남의 허물만 본다는 것은 나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못했다이런 거라든지, ‘자기도 그래놓고서 왜 안 그런 척하며 나에게도...’ 이런 건데, 어쨌든 남의 허물만 보이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은 안 보이는 거고, 죄를 지었어도 내가 죄를 지은 것은 너 때문이다라고 하는 거다.

 

이렇게 서로가 남의 허물만 보이는 것을 눈이 밝은 거라고 하는 건데, 그 전에는 어두웠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면에서 그 면으로 밝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 허물은 안 보이고 남의 허물만 보인다는 말이다. 이게 선악과 먹은 자의 상태다. 반대로 생명과를 먹은 자는 선악과를 먹었던 자기의 무능 무지가 보인다. ‘왜 내가 이렇게 어리석었나?’ 하는 자기의 무지 무능이 보인다.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할 때가 무슨 뜻이냐? ‘자기가 잘못을 해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이 말이다. 그 날 그 때 특별히 바람이 더 불었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느낌성을 말하는 거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무 사이에 숨었는데, 생명나무 뒤에 숨은 건가, 선악과나무 뒤에 숨은 건가? 믿는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쉽게 말하면 죄를 짓고서 누구 뒤에 숨는 게 제일 감쪽같을까? 어린아이가 동네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를 때려놓고 집으로 뛰어 들어와서 누구 뒤에 숨느냐? 엄마 뒤에 숨는다.

 

연애를 하는 처녀총각이 만날 때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과, 자기가 죄를 지었을 때 순경이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닌데 저 멀리서 순경이 걸어오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냐? 처녀총각이 두근거리는 것은 손을 잡고 싶어서일 거고, 순경이 올 때는 도망가고자 하는 두근거림일 거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은 것을 볼 때 사람이 죄를 지으면 숨는구나이걸 알 수 있다. 목사님이 죄를 지었을 때 어디에 숨는 게 교인들이 전혀 눈치를 못 챌까? 강대상 뒤냐? 성경 뒤에 많이 숨는다. 성경을 들고 자기의 죄를 합리화 시킨다.

 

진리본질의 말씀을 계시로 보지 않으면 자기가 안 보이는 거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지만 이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서 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그것을 죄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물질적인 생각이나 소유성을 가지고 이걸 자꾸 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보는 죄의 개념은 우리 입장에서 보는 죄와는 거리가 멀다.

 

성경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면 성경에 눈을 띄워져야 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해 주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볼 수 있는 눈을 띄워져야 한다. 이게 아닌 구원 받은 은혜를 갚으려면 일부터 크게 하라는 식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단자들은 이걸 모르기 때문에 자기 쪽으로 와야 구원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 쪽으로 와야 산다고 하지 않고 자기 쪽으로 와야 산다고 한다. 신앙의 본질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자기 쪽으로, 즉 교단이나 교파의 개념을 가지고 말을 한다. 이건 안 된다. 예수와 친하도록 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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