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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로 사신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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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1월 4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도행전 강해 12 피로 사신 교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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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2017년  10월 31일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었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황청의 면죄부 남발 때문이었다. 당시 면죄부는 1095년 1차 십자군 원정 이후부터 연옥 형벌을 탕감해주는 조치로 사용되어왔다. 교황청은 십자군 원정에 참여할 군인들을 모집하면서 면죄부를 발부해 주었다. 성전을 수행하다 죽을 경우 ‘하느님’이 그 영혼을 보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톨릭 교리에는 천당과 지옥 중간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고 가르친다.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한 영혼들이 이 연옥에서 주어진 형벌로 깨끗해진 후에 천국에 입성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면죄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교회는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면죄부 판매에 앞장 선 요한 테첼은 “금화가 헌금궤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연옥을 벗어나 천국 향해 올라가리라”고 설교했다. 루터는 이러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 이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약 2000년의 세월이 지났다. 사도 바울은 이방 세계에 초대교회를 세워나가면서 그 누구보다도 교회가 진리 안에 세워지기를 힘썼던 사람이었다.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바울이 세워가고자 했던 교회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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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마치고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온 여정을 살펴보았다. 안디옥에 잠시 머물렀던 바울은 곧이어 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1차,  2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웠던 교회를 더 굳건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돌아본 뒤, 에베소라는 도시에 이른다. 에베소는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물며 사역했던 도시다. 총 3년을 머물렀다. 에베소가 로마 주변 세계 복음화에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처음 회당에서 3개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있었고 그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바울이 전한 도를 비방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들을 떠나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따로 세운다.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한다.


지중해 지역의 나라에는 ‘시에스타’라고 낮잠 자는 시간이 있다. 한낮에 무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노는 문화가 발달했기에 낮잠 자는 시간이 지역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대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두란노 서원을 빌려 강론했다고 한다. 바울과 에베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는 그 귀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말씀공부에 전념한 것이었다. 이렇게 2년을 했다. 그 결과를 사도행전 19장 10절은 이렇게 말한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말씀 운동의 결과는 에베소라는 도시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당시 소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다. 당시 에베소가 마술과 우상숭배로 가득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능력대결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귀신도 나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행 19:17-19,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당시 은화 하나는 하루 일당에 해당되는 액수였다. 하루 일당을 10만원이라 하면 50억원 어치의 마술책들이 불태워진 것이다. 에베소라는 도시에 영적 부흥이 임한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말씀을 통한 부흥으로 묘사한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바울이 꾸준히 말씀을 나눈 결과 이 도시에 부흥이 임했고 그 결과 에베소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바울은 이후 고린도지역으로 건너가 3개월을 머문다. 거기서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그의 여정을 서두른다. 그는 빌립보와 드로아를 거쳐 밀레도에 이른다. 그런데 그가 탄 배가 밀레도항에 며칠을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급히 사람을 보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게 한다. 에베소는 밀레도에서 62km 떨어져 있었고 도보로 오려면 14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바울은 이것이 그들과 만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울이 3년 동안 그 어느 교회보다도 공들여 가르쳤던 곳이 바로 에베소교회였다. 바울은 그 교회를 맡은 지도자들에게 교회를 위한 마지막 당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 그런데 이 바울의 고별설교에는 이 땅의 모든 지역 교회를 세워나가는 사역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이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지를 나눈다. 행 20:18-21,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먼저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에베소 성도들을 섬겼다. 바울이 누구였던가?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운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지금의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는 산헤드린공회 회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처했다. 종은 철저히 주인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자기 중심적인 자아가 비워져야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세대에서 스스로 종으로 사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통해 겸손함을 배웠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해 사역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바울 역시 자기 추종자를 만들기 위해 사역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기에 그 분 때문에 가는 곳마다 멸시와 반대에 직면했다. 동족 유대인의 간계로 인한 시험이 끊이지 않았다. 주님께 헌신할 때 우리 역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방해자로 나설 때가 있다. 함께 가야 할 사람이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형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길 눈물로 기도했다. 그것이 그가 주님과 교회를 섬기며 드렸던 ‘모든 겸손과 눈물’이었다.


겸손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인정 받고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묵묵히 교회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가 쉽지 않다. 자기를 비워 겸손에 이를 때 우리는 비로소 교회와 사람들을 끝까지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행 20:22-23,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당할 것을 알았다. 그것도 성령께서 예언하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었다. 이쯤되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계획을 변경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참 멋있는 고백이다. 바울의 관심은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 남는 것이 아니었다. 죽기까지 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이었다. 그는 사명이 있었기에 그의 생명이 어떻게 될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이 다할 때 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아니 죽을 수 없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위험지역에서 죽음의 위협을 무릎쓰고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명이 있는 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위험도 불사하는 것이다. 교회를 섬기는 일, 직장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이 일을 맡겨주셨다는 사명이 있기에 손해를 감수하고 피 흘리며 교회와 직장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들의 사명에 대해 당부의 말을 한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교회를 하나님이 값주고 사신 귀한 곳으로 여기며 그렇게 대하고 있는가? 교회인 우리는 예수님이 대속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사신 존재들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생명을 드려 존재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 교회가 흠이 나고 문제가 생겨도 계속해서 보살피며 세워나가야 할 사명이 성도들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에 불어닥칠 위험에 대비하여 당부의 말을 전한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교회는 계속해서 진리를 지켜내는 싸움이 있어왔다.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 에베소 교회에 영적인 위기가 올 것을 알았다. 바울이 ‘사나운 이리’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초대교회를 위험에 빠뜨린 영지주의자들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들의 미혹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밖으로 항상 이단과 다른 종교의 위협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울은 교회 내부적으로도 발생할 위험을 예견한다. 행 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교회 안에도 자기 사람을 만들어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교묘하게 어그러진 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교회는 파당과 분열이 생기고 그 결과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가 파괴되는 것이다.


지난 주 10월 24-26일 미국 캔사스 시티에서는 2017 Kairos 집회가 있었다. 여러분이 알만한 미국 대부분의 은사주의 단체 리더들이 카톨릭과 공식 연합을 선포하는 집회였다. 종교개혁 500년을 기념하는 주간에 종교개혁을 역행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간적으로 ‘연합, 하나됨’이라는 취지는 너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에는 반드시 진리를 타협해야 하는 지점이 있기에 위험한 것이다. 특히 종교통합운동은 배교로 가는 지름길이다. 카톨릭은 성경의 권위보다 카톨릭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더 위에 있다. 성경적이지 않은 연옥의 교리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외에 7개의 외경들을 인정한다. 카톨릭은 또한 마리아를 숭배하고 성인들을 숭배하며 그들의 공덕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카톨릭 교회만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와 권위를 가지고 있고,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말한다. 행 20:31-32,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이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며 에베소교회가 오직 진리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져가기를 당부한다. 바울의 당부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이후로 약 30년 뒤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는 이단을 분별해 낸 것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다. 계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우리는 밀레도에서 행한 바울의 고별설교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원리를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첫째, 교회는 겸손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겸손으로 인내해야 모든 반대와 시험을 이기고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사명이 분명해야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명이 있어야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진리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이단과 분열 속에서 오직 흔들리지 않는 교회는 진리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것이다. 교회로 부름받은 성도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세우며 지켜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겸손과 눈물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 교회와 여러분을 부르신 삶의 현장에서 사명을 회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리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세워진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처럼 말씀 위에 세워지기 위해 기꺼이 다른 시간을 포기하며 댓가지불을 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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