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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위대하다 (마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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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에서는 먼저 어린 아이와 천국에 관해 적혀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는 어린 아이를 보통 욕심이 없다든지 순진하 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욕심 이 없다기 보다는 빈욕이라 할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순진한 것만은 아 닌 것이다.

 본문에서는 어린 아이를 '작은 자, 자기를 낮추는 자, 숫자 속에 헤 아리지않는 자'로서 해석해야 함이 적절하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이가 순진한가 아닌가가가 아니고 작고 낮은 자로 서 예를 드신 것이다. 마음을 바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이와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이것이 천국으로 가는 조건이라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제자들에게 부족했던 점이 바로 자기를 낮춘다는 일이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는 지금 신 앙생활을 하고있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된 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신앙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풍부하다는 교만에 빠지기 쉬운 것도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 확실해질 때이며 바로 이러한 때에 더욱더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불신앙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하면 그 존재 의 의미는 이미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앤드류 마레의 겸손 이라는 책에는 인간이 얼마나 방만해지기 쉬운 동물인가 하는 것에 대해 여러모로 쓰여있다.

 우리들은 보통 영적인 교만이라던가 우월감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하 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알 게되는 것이다.

 12절 이하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도 방황하는 한 마리의 양을 더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현실의 생활에서 작은 자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도록 간구해 나 가는 것을 의미한다.인권이 존중되는 것은 그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 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일곱 번씩 칠십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4백90회까지는 용서하고 그 이후는 보복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고 용서해야 함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즉,자기 자신이 용서받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이 사 실을 망각함으로 다른 사람까지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으 로부터 용서받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임을 알아야한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위하여 소중한 독생자를 내려 주셨듯이 우리 인 간도 가장 중요한 것을 바칠 때 그 가르침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헌금이라는 것도 그것의 한 형태이다. 보통 교회에서는 이 만큼의 예산이 필요하니 여러분 헌금 좀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기가 쉬운데, 오로지 교회의 예산때문에 우리들이 헌금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교회에서의 헌금은 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께의 응 답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바치고 있는 헌금이 자기의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 는 정도의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니라고 하는 쪽의 편의주의에 더 기울이져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당신의 손으로 십자가에 매달 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편의주의를 찾는 차원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에수의 십자가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해야한 다는것이다.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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